심장을 울리는 베이스라인, 보컬의 절규 섞인 열창… 펑크 록 리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 시작합니다. 다리로 까딱까딱 박자를 탑니다. 온몸이 들썩입니다. 신호가 떨어집니다. "뛰어!"
이야, 죽여주는 공연에 어깨동무를 걸고 춤을 추려는 순간, 누군가 막아섭니다. '대체 누구야?' 아니, 입장료를 걷어갔던 라이브 클럽의 주인장입니다. "안 됩니다!" "아니, 왜요?"
판을 깔아준 주인장이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찬물을 끼얹는 상황, 황당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 아래라면 상당수 지자체에서 '모범 사장'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고, 이래야만 존속할 수 있습니다.
오방가르드에 붙은 '춤 금지' 안내문 (출처 : yeonja_busan 인스타그램)
공연은 열되, 춤추진 말라
실제 춤췄다고 처벌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26일, 부산의 라이브 클럽 '오방가르드'에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이 떨어졌습니다. 왜 처벌 대상이 된 건지 부산 남구청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8월 7일에 현장을 확인해 보니, 공연이 앞에서 이뤄지고 있고, 공연을 보면서 손님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확인하고 저희가 위반으로 적발했거든요. (춤의 기준이 뭔가요?) 손님들이 몸을 흔드는 행위죠. 자리에서 잠시 서서 춘 게 아니고, 테이블을 다 치우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서 춤을 추고 있었거든요." - 부산 남구청 관계자
춤 좀 췄기로서니, 영업정지라뇨. 하지만 현행 제도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삼세번, 첫 번째는 영업정지 2개월, 두 번째는 영업정지 3개월, 세 번째는 영업허가 취소 또는 영업소 폐쇄라는 '철퇴'입니다. 공연장에서 춤추면 안 된다니, 대체 왜 이런 규제가 생긴 걸까요?
'감성주점'이 만들어낸 '춤 금지' 규정
발단은 20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홍대와 신촌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별X', '밤X사' 같은 감성주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등록한 업종은 일반음식점. 상대적으로 막대한 세금을 내던 유흥업소들은 집단 고발과 시위에 나서게 됐습니다.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처)
지자체가 감성주점을 '무허가 유흥주점'으로 간주해 영업정지를 내렸지만, 이어진 행정소송에서는 지자체가 잇달아 졌습니다. 당시엔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이 춤추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식약처가 '춤 금지' 조항을 신설하게 된 이유입니다.
감성주점 규제에 인디 공연장은 왜?
그런데 일반음식점 규제와 인디 음악가들의 공연이 이뤄지는 라이브 클럽이 무슨 상관일까요? 놀랍게도, 내로라하는 라이브 클럽, FF·빵·헤비·에반스… 십중 팔구는 일반음식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동네 24시 순대 국밥집과 고깃집, 횟집과 라이브 클럽이 같은 업종으로 묶여 있는 겁니다.
오방가르드와 치킨집은 완벽하게 같은 업종입니다. (제공 : 오방가르드)
이것도 역사가 있습니다. 1990년대 '드럭'과 같은 홍대 라이브클럽들이 생겨나며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을 필두로 한 인디 록 문화가 폭발했습니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상 술을 팔며 공연하는 곳은 유흥주점만 가능했기 때문에, 당국이 '무허가 유흥주점'으로 대거 단속에 나섭니다.
1997년 크라잉넛 '말달리자' 라이브 현장 (출처 : 크라잉넛 인스타그램)
이에 음악가들과 라이브클럽 업주, 팬들은 연대해 반발했고, 결국 1999년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개정됩니다. 가수와 악기 연주자를 '유흥종사자' 범위에서 삭제해서, 일반음식점에서 공연할 길을 열어준 겁니다. 그 뒤 2007년에는 식품위생법에서도 가수와 악사 등이 유흥접객행위 범위에서 명시적으로 빠졌습니다.
특히 홍대가 있는 서울 마포구를 중심으로 일부 지자체에선 별도의 댄스 플로어만 만들지 않는다면 객석에서의 춤은 허용하도록 별도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라이브클럽이 '완전 불법'이던 상황과 맞서 싸워 인디 음악 공동체가 얻어 낸 타협점이 바로 일반음식점 등록을 통한 우회로였던 셈입니다.
다른 업종은 안 되나?
꼭 일반음식점이어야 할까요? 공연을 들으며 춤 출 수 있는 다른 업종도 있습니다. '유흥주점'과 '공연장' 업종입니다. 하지만 따져 보면 둘 다 선택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게 라이브클럽 업주들의 입장입니다.
"룸살롱, 카바레, 나이트 등으로 정의되는 유흥업소는 저희와 수익 체계도 아예 다르고, 그 공간에 부과되는 세금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언가를 저희가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또, 공연장으로 정의되는 수백 석 규모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공간이 바로 라이브클럽이라고 생각해요." - 김채현 / 라이브클럽 '채널1969' 총괄매니저
김채현 / 라이브클럽 '채널1969' 총괄매니저
유흥주점으로 등록하는 순간, 매출 13%에 해당하는 세금이 추가 적용됩니다. 더구나 유흥주점이 들어선 건물주에게도 재산세가 중과세되는데, 세입자에게 되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청소년 관객이나 음악가는 출입이 막히고, 입지에도 제약이 생깁니다.
공연장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들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연간 90일 이상, 또는 30일 연속으로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관이나 주말 공연 위주인 라이브클럽들은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죠. 무엇보다 술을 팔려면 공간을 쪼개서 일반음식점으로 따로 신고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서 객석에서 공연을 즐기는 건 금지됩니다. 수입 상당 부분을 주류 판매에서 충당하는 라이브클럽으로서는 치명적입니다.
라이브클럽에 걸맞은 '소규모 공연장' 업종이 필요하다
인디 음악 공동체에서는 '소규모 공연장' 업종을 새로 만들자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인디 음악을 즐기면서, 술 한 잔 하고, 신이 나면 춤도 추는 '동네 공연장'을 법적으로 따로 정의하자는 요구입니다.
"저희는 (라이브클럽이) 백반집이자 동네 체육관이라고 생각해요. 창업의 문턱이 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규모 창작자들과 그에 딸려 있는, 라이브클럽 종사자들과 음악 공연 기획자, 음향엔지니어 등 많은 사람의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보거든요. 누구나 자기 동네에서 나온 음악을 손쉽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김채현 / 라이브클럽 '채널1969' 총괄매니저
인디 음악인들에게 라이브클럽은 일상이자, 생활 공간입니다. 음악가 단편선의 이야기도 들어보겠습니다.
"라이브클럽은 생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전개하고, 다른 음악가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자신도 성장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확산을 시키는 요체라고 할까요? 많은 사람이 직장이나 학교나 소속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왜 중요하냐고 물으면 그게 왜 안 중요해? 라고 반문하게 되죠." - 단편선 / 음악가
단편선 / 음악가
누군가에게는 동네의 사소하고 작은 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안전한 법적 테두리가 필요합니다. 영업정지를 받은 라이브클럽의 대표도 누구보다 뼈저리게 법제화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법적 지위가 제자리걸음이라면 다음 공간이 또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문화 생태계의 풀뿌리가 짓밟히고 자라나길 반복한다면 생태계는 제자리일 수밖에 없죠. 이미 저희 같은 문화 공간이 전국 각지에 있으니 정부가 문화로 인정해주고, 보호해 달라는 겁니다." - 이승철 /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 대표
'변종 영업' 우려? 해외 사례 살펴보면
보건 당국이나 지자체에서는 소규모 공연장 업종으로 앞서 말씀드린 감성주점 같은 변종 영업이 다시 횡행할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록 페스티벌·라이브공연 관객 모임 '락장놀'이 해외 선진국 사례를 검토해 본 결과는 좀 다릅니다. 이들은 '춤'으로 업태를 가르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관객모임 '락장놀'은 국회에 정책제안서를 냈습니다. (출처 : 락장놀 인스타그램)
일본이나 미국 뉴욕시에선 '춤'을 금지하거나 유흥업소의 기준으로 삼는 규제가 있었지만, 2010년대 모두 폐지됐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유흥업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유흥종사자가 있는지, 설비와 정산은 어떻게 되는지를 보면 됩니다.
미국 연방정부나 영국에서는 소규모 공연장의 요건으로 전문 음향과 설비를 갖췄는지를 봅니다. DJ 부스나 스피커만 설치한 감성주점과는 구분할 수 있죠. 음향감독이나 무대감독 같은 인력이 있는지도 살피고, 무엇보다 대부분 공연에서 입장료를 받고 공연자에게 제대로 된 출연료를 주느냐를 봅니다.
대신 막는 것은 유흥 행위입니다. 접대를 위한 유흥종사자 고용을 금지하고, 합석이나 만남을 알선하는 '부킹 담당'을 둘 수 없게 하면 됩니다. '춤'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변종 유흥업의 기준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인디 음악 공동체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대로 된 법제화가 이뤄질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소규모 공연장' 업종 신설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s://buly.kr/Ga0E2kW)
라이브클럽 제도개선 촉구 국회 국민동의 청원
물론 '신중론'도 있습니다. 과거 '애견카페'가 법제화되며 각종 규제가 더해지면서, 업장들이 줄폐업해버린 사례도 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춤추는 게 불법인 상황은 이상하다는 점만큼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라이브클럽이 궤도 위에 오를 수 있을까요? K컬처의 위상을 자랑하면서 정작 그 뿌리가 되는 공간을 27년째 '밥집' 취급하는 나라. 라이브클럽 무대 앞에서 관객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음악에 몸을 실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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