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하철 화장실에 비너스 조각상? 직접 가봤습니다 [여기잇슈]

2026.09.11 오후 04:17
서울 독산역 화장실에 설치된 비누 조각상
1년 동안 설치한 뒤 변화 지켜보는 프로젝트
작가가 설명하는 비누 조각의 의도
미술 시간에 보던 조각상이 화장실에??

찾으러 갔습니다.

한동오 기자
"독산역에 도착했는데요. 이 앞에 화장실 있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화장실 앞에는 이렇게 안내판이 있습니다."

정말.. 있네요.

미술 석고상의 대표적 모델, 줄리앙인데요.

석고상 모양의 대형 비누가 지하철 화장실 세면대에 있다니.. 신기하네요.

"보시면 머리 윗부분이 가장 많이 닳아있고요. 설치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얼굴 부분은 상대적으로 윤곽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코도 아직 오뚝하고요. 살짝 끝이 조금 닳은 거 같기도 하고. 입술, 눈, 귀, 턱, 목. 아직까지는 닳은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 비누로 손도 씻어봤습니다.

거품이 잘 안 날 것 같았는데요.

조금만 문질러도 엄청 잘 납니다, 거품.

뽀득뽀득하게 씻기고요.

신미경 / 비누 조각상 작가
"굉장히 좋은 비누예요. 실제로. MP 비누라고 해서 녹여서 부을 수 있는 비누거든요. 글리세린 비누, 천연 비누여서 근본적으로 굉장히 질이 좋은 비누예요."

"이 비누상 옆에는 일반 비누를 썼던 (비누)대도 있는데요. 지금 일반 비누는 다 없어진 상태입니다."

"물 묻으니까 울고 있는 거 같아요. 흐엉흐엉"

"설치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는데 거뭇거뭇한 자국들이 있긴 있네요."

비누상 밑에는 비눗물을 흡수하는 규조토 받침대가 있어, 흐르는 비눗물을 줄여줍니다.

"이번엔 비누상이 설치된 다른 화장실을 가보겠습니다. 다 이 근처에 있어요. 네 곳인가 있대요."

"가는 길에 이런 벽화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보인단다.'"

가는 길 곳곳에 있는 이런 조각들 덕분에 골목길이 더 생기 있어졌는데요.

이번에 처음 설치한 '금천미술벨트'라고 하네요.

지역 전체를 예술 현장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래요.

(2번째 화장실 방문)

"여기도 안내문이 있습니다"

"화장실이 보입니다"

아까 지하철에서 본 조각상과 다르죠.

여기는 비너스 상이네요.

아까 줄리앙 상과 함께 석고상의 대표 모델이죠.

"손을 씻어보겠습니다."

비너스 석고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대표작인 밀로의 비너스를 본뜬 건데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줄리앙 석고상의 원형은 르네상스 3대 거장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상인데요.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라는 사람을 본따서 만들어졌고, 줄리아노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줄리앙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소변을 볼 때 조금 등 뒤가 따가울 것 같습니다"

(3번째 화장실 방문)

"여기는 일반 기업인데요. 직원의 동의를 받아서 여기 촬영 협조를 받았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기도 지하철 화장실처럼 윗부분은 닳아있고요. 밑에 얼굴 부분은 그래도 아직 윤곽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4번째 화장실 방문)

"화장실이 설치된 곳은 이 표지판이 다 있습니다."

여기는 비너스네요.

"이 건물 관계자분(여성)께 허락을 받고 여자 화장실 밖인데요. 여자 화장실에 지금 아무도 안 계시고. 여자 화장실 밖에서 안에 있는 비누상을 촬영하겠습니다."

여기는 줄리앙입니다.

줄리앙과 비너스는 남녀 화장실 구분 없이 배치됐네요.

이 비누 조각상들, 대체 왜 화장실에 설치된 걸까요?

작업실에서 작가를 직접 만났습니다.

Q. 작품 의도
신미경 / 비누 조각상 작가
"예술이 가장 멀리 있는 곳에서부터 가장 의외의 공간이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는 이게 비누로 만들어지다 보니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그게 이제 화장실이었죠. 화장실에서 쓰여지고 나중에 그게 미술관에 전시가 된다고 했었을 때 진폭이 가장 넓은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예술가가 다양한 재료로 자신만의 질감을 나타내는데요.

왜 비누로 처음 조각을 하셨나요?

Q. 비누 조각을 떠올린 이유
신미경 / 비누 조각상 작가
"제가 제일 어렸을 때, 한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 빨랫비누를 이렇게 깎는 거가 저한테는 조각이라는 거에 가장 처음 했던 작업이었어요. 6학년이 돼서 그거를 깎을 수 있다는 걸 굉장히 어릴 때부터 기대를 했을 정도로….
거의 한 30년 전에 영국 유학을 가서 어떤 작업을 할까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했었고요.
서양 미술사 책에 나와 있는 서양 조각상들이 굉장히 정교하고 하얗던 대리석상을 유럽에 가서 그걸 보면서 아 이게 이렇게 곱고 하얗고 굉장히 정말 비누 같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동양에서 온 작가로서 거기서 무슨 작업을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서양 대리석이 비누로 보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방인의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때 빨랫비누 조각의 경험이 지금의 비누조각 예술로 이어진 건데요.

어렸을 때의 경험과 외국에서 동양인으로서의 시각이 색다른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네요.

봉준호 감독이 가슴에 새겼다는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걸까요.

봉준호 감독 (2020년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소감)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Q. 예술이 된 비누 조각
신미경 / 비누 조각상 작가
"독산역에 있는 그런 조각상 같이 생긴 그런 서양 조각의 형태를 가진 것들을 가지고 저희는 미술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거를 굉장히 잘 만들고 잘 그렸어야 됐었거든요. 그런 조각상들이 굉장히 동시대성이었는데 사실 서양 작가들에게는 그거는 완전히 고전이고 과거였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석고상은 이미 이제 그게 한국적인 것이 된 것이고 오히려 서양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 된 전복적인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거여서요."

화장실의 비누 조각상이 화제가 된 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였는데요.

일부 댓글에 대한 생각도 물어봤습니다.

신미경 / 비누 조각상 작가
"(기자: '내가 열어둔 '타인의 손바닥'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 예측 불가능한 쓰임과 흔적이었다')
미술 평론가가 계셨나 봐요.
작품은 하나로 있는데 그걸 보는 되게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작품을 볼 때 작품 자체가 100%가 아니고 보는 사람이 예술에 대한 어떤 기본 지식, 관심도, 여러 가지에 얹어지는 거잖아요, 사실. 그 줄리앙 하나를 보고 아는 그 정보의 양이라는 거는 그 사람의 숫자만큼 다를 거예요.
(기자: 작가 님의 의도 가운데 하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주먹질을 하더라도 그런 인간의 군상을 보기 위한 그런 의도는 사실 아니라는)
그거는 아니죠."

화장실 조각상 작품이 전시되는 기간은 내년 8월 31일까지, 1년인데요.

그동안 중간중간 작품을 찍어 변화하는 모습도 담고요.

마지막에 놓여진 비누상은 다시 전시장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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