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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연기가 곧 종교"…배우 조진웅의 지론(持論)

2018.06.09 오전 08:00
영화 '독전'을 말하는 조진웅의 얼굴에 상념이 스친다. 오프닝 장면 속 락(류준열 분)을 찾아 GPS를 쫓는 잔뜩 날카로운 눈빛도 그대로다. 인터뷰 차 만난 조진웅은 스크린 속 형사 원호 그 자체였다. 영화가 원호에게 던진 질문이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고 했다.



◇ "'독전'은 불친절한 영화"
조진웅에게 '독전'이 남긴 후유증은 상당해 보였다.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한참을 뜸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와, 똑같네요. 매번 그 질문을 받는데도 망설여집니다. 결말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어떤 단어부터 끄집어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재미난 내용이니까 봤으면 좋겠다' 한 가지 정도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저에겐 영화가 상당히 불친절했어요."

그가 독전을 "불친절한 영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분명했다. 엔딩 장면을 찍고 난 후 풀리지 않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는, 60편 이상의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던 물음이었다.

"처음 스크립트를 보고 생각했어요. '이거 답 나오는 영화야, 살 좀 빼고 몸이 부서지도록 달리면 되겠다.' 그런데 역으로 질문을 받았어요. 이해영 감독한테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웃음) 우리는 엔딩신(scene)을 차치하고 작업했습니다. 언젠가는 맞닥뜨리겠지만 당장은 모른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한장면씩 찍다 결국 엔딩 장면인 노르웨이 설원을 만났죠."



하얗게 눈이 드리워진 노르웨이 설원, 그 어떤 것도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찍을게요' 혹은 '할게요'가 아닌, '저는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였죠." 해당 장면에선 캐릭터에 이입된 배우들이 내뱉는 말이 곧 대사가 됐다.

"이제 어찌하실 거예요" "너는 행복한 적 있어?" 락과 원호가 묻고 답하는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뚜렷한 답이 내리지 않은 채 그렇게 '독전'은 막을 내렸다.

"이해영 감독한테 물었어요. 우린 상업영화인데 '빵'하고 세게 끝내면 안 되냐고. 심지어 그렇게 결말도 찍었죠. 하지만 감독이 픽업을 안 한 이상 의미가 없는 장면이에요. 중요한 건 '답이 없는 자체가 우리 삶이구나'라는 것. 분명한 건 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졌어요. 그게 좋았습니다. 찝찝함도 안고 가고 싶을 정도로."



◇ 조진웅이 추억한 故 김주혁
결말과 함께 '독전'이 관객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고 김주혁 때문일 터. 유작이 돼버린 '독전'에서 그의 열연은 단언컨대 압도적이다. 조진웅 역시 눈앞에 있듯 선명하게 처음 합을 맞췄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니, 리딩, 리허설할 때조차 (연기를) 한 번도 안 보여줬어요. 촬영 끝나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재밌는 걸 처음 공유할 때가 좋대요. 형님 참 대단했습니다. 연기를 보면 신명이 나더라고요. 하림은 정말 장면을 가지고 놀잖아요."

조진웅이 기억한 김주혁은 "조용하고 점잖은 선배"였다. 가까워질 시간 없이 첫 작업 후 그렇게 가버렸다고 했다. 다만 딱 한 가지 말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연기가 재밌다고 했어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던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연기가 재밌대요. 제가 '옛날부터 많이 했잖아요'라고 반문하니까 예전에는 몰랐다고, 그전에는 생업으로 연기했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들은 지 얼마나 안돼 그렇게 가버렸죠. 배우 김주혁이 그리워요. 이 영화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내게 연기는 종교"
조진웅은 극 중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이 선생'을 쫓아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형사 원호를 맡아 또 다른 인생 연기를 펼쳤다. '끝까지 간다'를 비롯해 이미 여러 번 형사 역을 맡았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얼굴을 꺼낸 그에게 혹자는 '형사 연기의 달인'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에이, 그래도 박중훈 선배만큼은 아니죠. 영화 '강적'에서 형사 역할을 할 때 실제 서대문경찰서 강력 6팀에서 합숙했어요. 실제로 작전에 투입도 됐죠. 잠복근무도 다니고.(웃음) 그때 그 경험이 연기로 이어지는 거 같아요."

'리얼하다'는 말만큼 그의 연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어떤 역할이든 제 옷을 입은 듯 소화하는 탓에 조진웅은 어느새 충무로에서 없어선 안 될 배우가 됐다.



함께 호흡을 맞춘 류준열은 "지칠 법도 한데 매 회차 선배님 눈동자와 모습을 보면서 '정말 순간을 즐기는구나'를 느꼈다. 많이 배웠다"고 말했을 정도. 어느덧 14년차 배우로 연기하며 쌓아온 배우와 예술에 대한 뚜렷한 소신 역시 풀어놓았다. 그의 '리얼함'의 뿌리는 곧 진심이었다.

"사촌이 죽었는데 그 슬픈 감정을 자기가 보고 있었다는 어느 배우의 글을 봤어요. 저는 왜 납득이 가죠. 예인들은 그런 귀촉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없으면 이 굿쟁이 짓을 못하죠. 범인(凡人)이 할 수 없는 일, 그걸 해내는 직업군인 겁니다. 범인이 하지 못하는 만큼, 배우는 최대한 진심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 중 미치도록 이 선생을 쫓는 원호처럼 그에게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을지 궁금했다. 또 한 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조진웅이 내린 답변은 "연기"였다.

"저는 작업할 때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무리 작은 역할을 해도 마무리해야 한다는 소명이 있죠. 제 후배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은 연기가 종교요'라 하더라고요. 연기와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저는 뭐든 합니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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