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의 신작이자, 배우 구교환과 고윤정의 만남으로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은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반환점을 돌았다. 공개 이후 넷플릭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높은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라가는 작품. 방송 초반에는 20년째 감독으로 데뷔를 못한 황동만(구교환 분)의 팍팍한 현실 이야기가 펼쳐졌다.
또한 그의 옆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기획 PD 변은아(고윤정 분)이 다가오게 되면서, 두 인물 사이의 관계성이 생기고 있는 상황. 향후 어떤 스토리 전개가 펼쳐질지 더욱 궁금증을 모으는 가운데, 2막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 구교환,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로 무가치함 극복할까
황동만(구교환)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쓰임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채 ‘40대 무직남’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싸워왔다. “안 되는 거 붙잡고 있으면서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지 말고 이제 좀 생산적으로 살자”는 주변의 냉혹한 평가 속에서도 끝내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시나리오를 놓지 않고 매달려 왔다. 그런 그가 바라는 건 대단한 성공이 아니다. “그냥 한 편만이라도 해서 무가치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답보 상태였던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가 죽은 시나리오도 살려낸다는 변은아(고윤정)의 보석 같은 ‘도끼질’ 피드백을 통해 눈물 나게 좋은 수정 방향을 찾게 됐다. 주인공에게 결여된 ‘파워’가 곧 자신의 결핍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직시한 이후, 황동만은 사랑의 힘을 동력 삼아 내면의 창작 엔진을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꾸역꾸역 고통을 쥐어짜야 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속도로 글이 후르륵 쏟아져 나오는 기적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 과연 황동만이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를 통해 지독한 무가치함의 안개를 걷어내고, 본인이 그토록 바라는 화창한 날씨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2막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 고윤정, 친모 배종옥에서 비롯된 9살 트라우마 벗어날까
변은아는 친모인 국민배우 오정희(배종옥 분)에게 방치됐던 9살의 유기 공포와 싸워왔다. 당시 버려진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가슴이 요동치는 공포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 가고 혼자 먹고 자며 무력하게 보냈고, 그때부터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이 트라우마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마다 코피를 흘리는 육체적 증상과 함께 ‘자폭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처절한 감정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과장되고 아픈 것이기에 한 번에 내뱉지 못하고 ‘ㅇ-ㅓ-ㅁ-ㅁ-ㅏ’라고 자음과 모음을 따로 부를 만큼 깊은 거부감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최초로 ‘엑스표(X)’를 친 인간인 친모가 의붓딸 장미란(한선화 분)과 행복한 모녀를 연기하며 SNS에 전시하는 현재를 보는 것도 괴롭다. 9살 그녀의 이름은 변시온이었다. 2막에서는 변은아가 왜 그 이름을 버렸는지,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현재의 삶을 어떻게 지켜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녀가 과연 트라우마를 털어내고, “고요한 중심을 가진 힘 있는 엄마”라는 인생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 제목처럼,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워왔고, 싸우고 있다. 여전히 도움을 받는 건 자신의 완벽함을 해치는 나약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찌질한 근성과 자격지심으로 단독 집필을 고집하는 박경세(오정세 분), 고박필름 대표로 월세와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어디서 한 푼이라도 도움 안 떨어질까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고혜진(강말금 분), 무능력함을 경험하고 무너져 하루하루를 술로 지새우는 황진만(박해준 분),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이해하는 그녀에게 자꾸만 머리를 앞세우는 국민 배우 엄마 오정희(장미란 분)의 방식에 숨 막히는 톱배우 장미란, 그리고 황동만의 기행을 자신의 영화 소재로 가져다 쓴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또 한편으론 켕기는 ‘8인회’ 등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결핍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지만 결국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우리 모두를 투영하고 있다.
황동만의 바람대로, 이 작품의 최종 목적지는 그 무가치함을 완벽히 극복하는 게 아닐 것이다. 되레 그 무가치함마저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과 공감에 있다. 이에 황동만이 “딱 너희만큼 불행하고 행복하다”고 당당히 외친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긍정하며 나아가는 과정은 후반부 서사의 백미가 될 전망. 박해영 작가가 이번엔 시청자들에게 어떤 뼈저린 여운을 남길지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제공 =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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