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 위, 그 뒤에는 칠흑처럼 깜깜한 ‘무명’이라는 그늘이 있다. 누군가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십수 년 동안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단 한 번의 무대를 갈망한다.
1987년생 가수 지영일의 청춘도 그러했다. 고등학생 시절 가수를 꿈꿨으나 시작과 동시에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몸과 건강이 크게 상했다. 생계를 위해 영화 '연애의 목적'(2005) 등에서 단역 엑스트라를 전전해야 했던 그는, 그럼에도 노래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고 끝내 발라드 그룹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는 길고 긴 터널의 시작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수의 꿈을 키우자마자 집안 사정이 무척 어려워졌어요. 생계를 위해 영화 단역 아르바이트도 전전했는데, 프로필에는 마치 연기로 데뷔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단순 엑스트라였죠. 당시 제 마음이 간절히 바랐던 것은 오직 노래뿐이었어요.”
발라드 그룹 활동에서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그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아이돌 그룹으로 세 장의 앨범을 내며 마침내 빛을 보는 듯했으나 사드 사태로 다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렇게 기획사가 와해되고 데뷔가 무산된 팀만 무려 13개에 달한다.
“한번은 중국 어느 지방의 유지가 재미 삼아 엔터테인먼트를 차려놓고 저를 비롯한 멤버들을 방치한 적도 있어요. 한국으로 보내주지도 않아서 결국 예비군 통지가 나왔다는 핑계를 대고 중국 숙소에 모든 짐을 버려둔 채 몰래 야반도주를 해야 했죠. 내 길이 아닌가 싶어 일반 직장 생활도 해봤지만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앞으로 굶는 한이 있어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죠.”
사진=토탈셋
이후 지영일은 트로트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그는 2020년 트로트 그룹 '삼총사'로 재데뷔해 활동을 이어왔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무대를 채우고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에 MBN '무명전설'에는 솔로로 지원했다. 격렬한 안무 중에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뽐내며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나 치열한 경연 끝에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트로트 그룹 활동을 해보니 지금 시장은 그룹을 원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 노력만큼 무대를 채워보고자 ‘무명전설’ 출연을 결심했죠. 심사위원께서 ‘춤을 추면서 이만큼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해 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비록 탈락해서 씁쓸했지만, 제 실력을 온전히 증명해 낸 것 같아 큰 위안이 됩니다. 언젠가는 제 진심을 담은 애절한 트로트 발라드를 깊고 진하게 불러보고 싶네요.”
지방의 작은 무대를 전전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의 일상은 외롭고 서글픈 설움의 연속이다. 메인 무대 뒤편의 푸대접을 견뎌내야 하고,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묵묵히 버텨내야 한다.
“어떤 행사에서는 메인 무대가 아닌 구석진 상권 골목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러야 했던 적도 있었고, 다른 행사에서는 무대도 없이 낡은 스피커와 유선 마이크 하나만 들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그래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사진=토탈셋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음악을 결코 놓지 못한다. 이제는 기획사나 타인의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포토샵과 영상 편집까지 손수 배워가며 자신의 콘텐츠를 직접 만든다. 지영일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매달리는 이유, 가슴속에 품은 단 하나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제 꿈은 ‘뮤직뱅크’나 ‘엠카운트다운’ 같은 지상파 음악 방송에 단 한 번만이라도 제 노래로 서보는 거예요. 과거 다른 가수의 백댄서로 무대 뒤편에 서봤기에 그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요. 주변 지인들도 저의 이런 간절함을 잘 알기에, 차마 제게 ‘이제 현실을 보고 그만두라’는 말을 모질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지난 23년이라는 기다림의 세월은 무대 위에서 가장 환하게 미소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단단하게 걸어온 그의 노력이 가득 담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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