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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이슈] 에픽하이의 창고 파묘가 쏘아올린 낭만

2026.05.22 오후 05:05
사진=에픽하이 유튜브 캡처
역사는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한 컨테이너 창고 안에도 한 힙합그룹의 지난 역사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었다. 10년 만에 굳게 잠겼던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억대 조회수의 화려한 영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낡은 계약서, 전동 자전거,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비디오테이프. K팝이 아직 자본의 시스템을 갖추기 전, 아티스트와 그의 가족들이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했던 성장의 기록들이 봉인되어 있었다.

지난 21일 에픽하이의 공식 유튜브 ‘EPIKASE(에픽카세)’를 통해 공개된 ‘에픽하이 비밀 창고 파묘하기’ 에피소드는 단순한 추억 소환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자본과 시스템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던 그 시절을 엿볼 수 있었던 소소한 아카이빙이었다.

이날 컨테이너 창고에서 발견된 2003년 울림엔터테인먼트 시절의 첫 전속계약서는 당시 가요계의 불합리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계약서 때문에 우리가 음원을 한 푼도 못 받았어. 내가 (명곡) 'Fly'를 만들었는데 한 푼도 못 받았어요!"라는 타블로의 씁쓸한 외침은 당시 수많은 인디·힙합 뮤지션들이 마주해야 했던 불공정하고 허술한 기획사 시스템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SNS도, 체계적인 홍보 대행사도,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그 시절 에픽하이가 선택한 마케팅 방식은 ‘발품’이었다. 창고에서 나온 1집 홍보 스티커를 본 타블로는 “에픽하이 1집 때 홍보할 방법이 없는 거야. 그 당시는 SNS가 없었잖아. 이거 내가 디자인한 건데 이거를 여기저기 막 배포했어"라며 데뷔 때를 회상했다.

또한, 독립 후에는 “우리 손으로 다 해가지고 티셔츠도 우리가 접어서 넣고 택배를 다이렉트로 보내다가 업계에서 욕 엄청 먹었다”던 ‘맵 더 소울(Map the Soul)’ 시절의 일화는 잡초처럼 꿋꿋이 자생해야 했던 시절의 기록이다.


사진=에픽하이 유튜브 캡처

그럼에도 이들을 지탱하고, 이들의 데뷔 초창기의 발자취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은 것은 가족의 사적인 헌신이었다.

창고 깊숙한 곳에서 에픽하이의 투컷은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발견한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빛바랜 VHS 비디오테이프들. 거기에는 에픽하이의 신인 시절 출연분인 ‘만원의 행복’, ‘스타 골든벨’, ‘진실게임’, ‘러브레터’ 등이 어머니의 투박한 손글씨로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디지털 다시보기나 유튜브 클립이 없던 시절이다. 방송국조차 보존하지 않고 지워버렸을지 모를 신인의 방영분을 지켜낸 것은 녹화방지 테이프까지 붙여 TV 앞을 사수한 어머니의 시선이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사적 아카이브가 에픽하이의 귀중한 초기 자료를 보존해 낸 셈이다.

창고를 가득 채운 빛바랜 의상과 과거의 트로피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바라보며 타블로는 말한다. “물건이라는 게 참, 기억이랑 추억이 들어가면 살아있는 것들인 것 같다”고.

오늘날 K팝은 의심할 바 없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시스템은 치밀해졌고, 성과는 눈부시다. 그리고 그 시작엔 무모한 도전을 이어온 어렸던 에픽하이와 그들과 같은 꿈을 꿨던 또 다른 젊은 도전자들이 있었다. 에픽하이의 창고 파묘 에피소드가 준 울림은 지금의 정교한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하는, 지금의 K팝이 잃어버린 낭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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