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호프'는 지독할 정도로 강렬하고,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앞서 제79회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일찌감치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번 작품은, 확실한 장점과 뚜렷한 한계를 동시에 품은 채 스크린을 거침없이 유린한다.
156분에 걸쳐 스크린을 장악하는 이미지는 한국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지만, 스크린이 꺼지고 난 뒤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가 나홍진에게 기대한 것은 과연 이 거대한 롤러코스터뿐이었을까?'
영화의 초반 1시간은 '역시 나홍진'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며 마을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감독이 긴장감을 직조해 내는 방식은 가히 압도적이다. 심장 박동을 쥐고 흔드는 긴박한 사운드, 미지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빛과 그림자의 치밀한 대비, 그리고 인물들의 공포를 생생하게 포착하는 카메라의 구도와 무빙은 관객을 80년대 호포항 한복판으로 무자비하게 끌고 들어간다.
여기에 극한의 상황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그 예상치 못한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헛웃음과 블랙 유머는 극도로 팽팽해진 긴장감을 영리하게 이완시킨다. 숨을 조였다 푸는 이 특유의 리듬감은 감독의 재치가 여전히 번뜩이고 있음을 증명한다.
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장 놀라운 성취는 극 내내 끊이지 않는 카타르시스다. 특히 이번 국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완성본은 칸 현지에서 보았던 버전과 비교해 외계인 CG가 한층 더 개선되었으며, 공간을 장악하는 음향과 음악 역시 한층 더 박진감 있게 진화해 극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추격의 주체와 객체가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경이롭다. 80년대의 한적하고 투박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경찰차와 말, 그리고 외계 크리처가 한데 뒤엉켜 내달리는 추격전은 이제껏 한국 영화사에서 목격한 적 없는 낯설고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총격신과 카체이싱을 스크린에 구현해 낸 나홍진 감독의 야심 찬 도전과 실행력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호프'는 극장에서 경험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완벽한 '시네마틱 체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의 이면, 이야기의 뼈대가 다소 아쉽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관객이 나홍진이라는 이름 앞에서 기대하는 충격적이고 생경한 플롯, 선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입체적인 심리 묘사,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파고드는 서늘한 통찰은 이번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호프'에는 그 특유의 깊이가 부재한다.
영화 '호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외계인과 인간의 대혈투는 결국 '사라진 외계인 왕자동족을 찾기 위한 것' '존재와 존재 사이 소통의 부재'라는 다소 익숙하면서도 평면적인 가족주의적 동기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서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장소와 상황,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구도만 계속해서 바뀔 뿐, 생명을 위협받는 추격과 혈투가 러닝타임 내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서사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대신 같은 구조의 액션을 반복하거나 변주하는 데 그친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야기'가 '볼거리'를 견인하지 못하고 되레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준다.
'호프'는 한국 영화의 기술적 스펙트럼과 장르적 도전을 한 차원 넓힌 거대한 시도임이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듯, 반드시 극장에서 경험해야 하는 작품인 것도 분명하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오락 영화로서 관객에게 확실한 영화적 쾌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다가오는 올여름 극장가 흥행에서는 훌륭한 성적표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독하게 얽힌 서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연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던 '나홍진 특유의 인장'이 거대한 외계 크리처의 포효와 스펙터클에 가려져 옅어졌다는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 속에 묵직한 이야기의 부재가 유독 짙게 남는 작품이다.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 연출. 배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출연.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56분. 2026년 7월 15일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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