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 은빛 바다 검은 번뇌 쓸어나리고...

2015.11.24 오후 01:25
살다 보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갈 때가 있다.
고통받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이를 불교 용어로는 '번뇌'라고 하던가.

검게 타버린 번뇌는
구름 속에 빠지면 묻힐까,
바다 속에 빠지면 씻겨내려갈까.

그럴 땐 훌훌 털어버리고 길을 나선다.
구름으로, 바다로 가고 싶다면 가면 될 일.
기왕이면 은빛 바다로 떠나보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은 한 발짝 걷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길이 조성된 건 놀랍게도 무려 300년도 더 전이란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들도 마음이 새까맣게 탔을 때 이 길을 걸었을까.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이 노래에 나오는 '은혜'가 아니다.
안개가 자욱할 때 이 절집은
마치 은빛 바다에 둘러싸인 것 같다고 해서 은해사(銀海寺)란다.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대사,
원효대사의 아들로 이두를 만든 설총대사
고희를 넘긴 나이에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대사가 은해사에서 수행했다고 하니, 절의 역사를 짐작할 만 하다.



1000년 전 왕국이었던 신라에는 나라를 지켜준다고 여겨졌던 다섯 개의 산, 오악(五岳)이 있었단다.
경주 토함산이 동악, 충청도 계룡산이 서악, 남쪽의 지리산이 남악, 강원도 태백산이 북악인데, 그 네 개의 산이 둘러싼 중심이 바로 은해사가 있는 팔공산이다.


특히 신라를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이 산에서 수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팔공산은 나라를 보호하는 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던가.
그래서 은해사 주지스님은 지금도 각 군 사관생도들을 일년에 한 번은 꼭 부른단다.
팔공산의 기운을 받아 나라를 지키는데 힘 써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나무의 나이가 대략 450살 정도 됐어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보다 오히려 이 나무가 더 공덕을 많이 쌓았을 거에요"

오랜 세월동안 한 자리에 굳건히 서서 좋은 향기를 퍼뜨리고, 절집을 찾는 불자와 방문객들을 품어준 것 만으로도 우리보다 이로운 일을 많이 한 셈이라는 스님의 설명이다.

나무 앞에 가만히 서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저 나무만큼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나.



감로수 한 바가지 들이키고 극락보전(대웅전) 앞에 서니 수많은 사부대중의 염원이 쪽지에 실려 새끼줄에 묶여있다.

두 손 모아 고개 숙이고, 소원 하나 빌어본다.
검은 번뇌를 쓸어내리려는, 은빛 파도가 휘몰아쳐오고 있다.

트레블라이프= 유상석 everywhere@travellife.co.kr

TRAVEL TIP: 대중교통으로 온다면 영천터미널과 하양터미널에서 은해사행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천에서는 1일 6회, 하양에서는 30분~10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운행 시간표는 은해사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가야 하는데, 주차비가 무료다. 대신에 입장료를 받으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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