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적당하게 내리고 날씨도 따뜻하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고산지대의 꽃들이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다.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니 그런 것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도시에서 가까운 산은 예년과 비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지역에서는 등산로를 비롯한 주차장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접근을 막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고, 한쪽은 그런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산으로 가는데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도 차량은 통제해도 사람이 직접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고 한다. 황매산이 그렇다. 그곳은 정상의 8부 능선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매년 철쭉이 필 때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금년은 차량으로 접근이 어려우니 온전히 두발로 올라오는 사람들만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고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조용해서 좋다.
산행시작은 산청군 차황면에 있는 떡갈재에서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나뭇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오는 것인가 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어젯밤에 비가 내렸는가 보다.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운무가 끼어 있다. 이런 상태라면 오늘 조망은 꽝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꽝이라도 좋으니 비만 내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산행은 처음에는 일렬로 서서 올라가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이가 벌어진다.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저절로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요즘 산으로 몰려들고 있는가 보다. 등산이라는 것이 원래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조용하게 나무도 보고 야생화도 보면서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등산이다.
운무가 끼어 햇빛이 비치지 않으니 오히려 산행하기에 더 좋은 것 같다. 은은한 안개 속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철쭉이 조금은 수줍은 듯 더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많이 보아야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즐기면 된다. 그래야 마음을 비울 수 있고,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연습이 되기 때문이다.
떡갈재에서 황매산 정상까지 가려면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운무가 끼어 있으니 조망이 없다. 1시간 내내 가까이 있는 야생화만 본다. 그러니 꽃들도 좋아하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섭섭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등산길이 조금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바로 앞이 정상인데 운무에 가려서 보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정상 가까이 다가가니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찍느라 줄을 서있다. 여러 번 와본 곳이지만 올 때 마다 설레고 새롭다.
황매산 정상석은 바위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다. 너무 뾰족한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면 항상 조심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래서 한사람씩 줄을 서서 찍고 있다. 정상 인증을 굳이 정상석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은 꼭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고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무학굴을 잘 모르고 있다. 안내판에 ‘무학굴’이라 표시하고 있으나 굳이 가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정상에 왔으니 더는 걸을 동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5분만 발품을 팔면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으니 적극 추천한다. 무학굴에서 바깥으로 내다보면서 사진을 찍어 보면 또 다른 모습의 황매산을 바라볼 수 있다.
정상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앞으로 황매산 철쭉 군락지가 보인다. 우측에는 산청 철쭉 군락지가 있고, 좌측에는 합천 철쭉 군락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 이곳은 해발이 조금 높은 곳이라서 철쭉이 피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더 지나야 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한번만 와서 이 아름다운 철쭉을 모두 보려고 하면 욕심이다. 모든 것은 자주 봐야 정이 드는 법이다.
계단을 내려오면 우측으로 '황매산 제단'과 '황매산성'이 있다. 제단 앞에 이른 철쭉 한 그루가 진한 분홍색으로 외롭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곳의 황매산성은 영화 촬영을 위해서 세트장으로 꾸며 놓은 곳이다. 이곳은 사진작가들에게는 은하수를 촬영하는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황매산에서 가장 먼저 철쭉이 피는 곳은 '제1철쭉 군락지'와 ‘제2철쭉 군락지’이다. 이 날은 운무가 끼어서 화창한 철쭉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이처럼 많은 철쭉이 피어있는 지금 이곳이 최고의 천상화원이다. 이렇게 많은 철쭉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아침 일찍 서둘러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땀을 흘린 충분한 보상이 되는 기분이다.
매년 이맘 때에는 새벽에 올라와서 철쭉과 함께 일출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이곳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니 비슷비슷한 사진이다. 그런데 운무가 어떻게 변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사진의 작품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이곳은 사진작가들이 항상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운무는 끼었지만 은은한 안개 속에서 철쭉을 보는 것도 좋았다. 원 없이 철쭉을 보고 이제는 하산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산은 덕만주차장으로 한다. 주차장 가까이 내려오니 정상으로 가는 차량은 통제하는 바리케이트가 보인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큰 어려움 없이 차량을 이용하여 황매산 철쭉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종점에 도달하면 성취감은 두 배가 되는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다. 인내한 만큼 커다란 기쁨이 두 배가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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