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아침 7시, 혼자 사는 아버지 A씨의 연락을 받은 딸 B씨는 곧장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B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한 채 엎어져있는 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119에 신고했습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A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치료 시기를 놓쳐 신체 일부가 마비 됐습니다.
가족들은 뇌경색증이 치료시기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는 만큼 좀 더 일찍 아버지의 연락을 받지 못 한 것이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A씨는 전날 밤 이미 119에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병원에 모신 뒤 소지품을 챙기다가 A씨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119에 두 번이나 직접 신고했더라고요. 왜 구급차가 출동을 안 한 건지 이유가 궁금해서 119에 전화해봤죠. 그분들 말씀이 첫 번째 통화는 바로 끊겼고, 두 번째 신고는 33초 정도 통화됐는데, 무응답 건으로 처리됐다더라고요.”
- A씨 딸
33초 간의 통화 내용이 궁금했던 가족들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녹취록을 받아봤습니다.
[사진설명] 당시 119 신고 녹취록
녹취록을 살펴보면, A씨는 ‘예, 여이 OO동 OOO에 OOO에 OO(주소 추정)’라며 두 번이나 주소를 말하고, 몸의 이상을 감지한 듯 “아이 죽겠다. 아이 자가만 오실래여(잠깐만 오실래요)”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소방관의 대응은 ‘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접수된 신고는 사안을 불문하고 출동이 원칙이다’, ‘발음, 언어가 불분명한 노인이 신고했을 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해서 청취한다’는 매뉴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은 겁니다.
결국, 해당 소방관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지난 4일, 경징계 수준인 ‘견책’ 처분을 받았습니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두 건 다 동일한 직원이 받은 건 아니고, 두 번째 전화 받은 분은 ‘순간적으로 왜 그렇게 했는지 지나고 보니 잘 모르겠다’면서 엄청 괴로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평소에 전화가 왔다가 끊어지는 ‘무응답 신고’ 건이 많고, 그 시간대가 술 취한 사람들의 전화가 많은 때인데다가 신고자의 말투가 어눌해 해당 소방관이 순간적으로 오판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반적으로 미국은 상황실에 최고의 베테랑이 근무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실이 기피부서로 통한다”며 “우리나라도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경륜과 실력을 갖춘 소방관들이 상황실 근무를 자원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설명] 공공근로 활동 당시(좌) 사진과 현재 사진(우)
119가 출동하리라 철썩 같이 믿고 대문까지 열어뒀지만, 무려 7시간이나 방치됐던 A씨.
하루 4시간씩 공공근로를 나갈 정도로 정정했지만, 현재는 간병인 없이는 거동조차 불편해졌습니다.
“아버지로서는 후반부이지만 인생 자체가 흔들린 거잖아요. 저희한테 내색은 안 하셔도 하루아침에 남한테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게 아마 상실감이 크실 거예요. 접수하신 분이 한 번쯤은 어디가 불편한 건지 정도는 물어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신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딸 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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