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월드

500대기업 발표 50주년 기념

[앵커멘트]

안녕하십니까?

포춘 500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의 진행자 앤드류 썰웝니다. 지난 50년간 포춘 500은 미국의 기업활동을 진단해왔습니다.

가장 먼저, 미국의 각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즉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가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데 어떤 도움이 됐는지 알아봅니다.

그 다음으론, 엄청난 사업으로 성장한 신용 카드의 역사를 짚어봅니다. 지갑 속의 작은 플라스틱 카드가 포춘 기업의 얼굴을 바꿔놨습니다.

탄산음료 업체, 펩시코가 고객들의 입맛에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면서 회사 매출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포춘 잡지는 1955년부터 기업 성과가 좋은 500대 기업을 선정해왔습니다. 포춘 500은 단순한 기업 목록을 넘어서 돈과 힘과 특권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포춘 500의 여정도 길고 넓게 뻗은 도로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바로 미국의 각주를 연결하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가 기업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남다른 애착은 유명하지만, 도로가 부실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세계 1차 대전 당시 군용차량을 이용해 미 전역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면서 도로 개선의 필요를 절감한 듯합니다."

냉전의 그늘이 드리워져있던 1956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백5십억 달러 규모의 인터스테이트 국방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처음엔 교통의 편리함이나 기업의 외곽 이전 등의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니라 공습을 받았을 때 도시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설한 것입니다."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는 무서운 속도로 완공됐습니다. 1970년대 중반경까지 로스엔젤스에서 뉴저지까지, 장장 4만2천 마일의 고속도로 포장이 마무리됐습니다.

덕분에 미국인들의 생활권이 도심에서 교외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미국 경제도 변했습니다.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로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생산 장소와 방식의 유연성이 제고됐기 때문입니다."

상품 운반에 기차보다 트럭을 이용하는 편이 기업들에게 유리했습니다.

"기차역 주변의 인구밀집 지역에 생산기반을 둘 필요가 사라진 겁니다. 전국 고속도로망 어디에서고 고객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는 기존 기업의 성장과 신규 기업의 진출에 도움이 됐고, 지난 반세기동안 포춘 500은 그 변화의 물결의 충실한 기록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맥도날드와 홀리데이인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에 특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늘날의 포춘 500대 기업 목록을 보면 남부 지역의 기업들에게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월마트나 페덱스, 홈데포 같은 기업들이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전까지 엄두를 내지 못냈던 일, 즉 남부로 제조기반을 이전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조지아에 본부를 둔 홈데포는 1995년 처음으로 포춘 500대 기업으로 선정됐는데, 진입 당시 순위는 77위였지만 요즘은 13위로 급부상했습니다.

역시 조지아에 기반을 둔 코카콜라는 1955년 126위로 500대 기업에 선정됐지만, 1987년에 매출 급증으로 38위를 기록하더니 그 이후론 100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습니다.

"월마트처럼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를 적극 활용한 기업들이 대거 500대 기업에 진입했습니다."

1995년 월마트는 500대 기업 중 4위를 기록했지만, 1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GM과 엑손모빌을 제치고 지난 2년 연속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포춘 500대 기업 중 우수 기업으로 꼽히는 GM도 고속도로 건설로 큰 혜택을 받은 기업 중 하나지만, 항상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만은 아닙니다.

미끈한 스포츠카, 코르벳 같은 자동차는 GM의 대표급 성장 원동력이자, 매년 포춘 500대 기업 중 톱 쓰리에 들게 하는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평탄한 길만 달려온 건 아닙니다.

"5,60년대가 절정기였죠."

1920년대 자동차 매출 급증에 힘입어 GM은 쉬보레와 올즈모빌, 폰티악, 뷰익, 캐딜락 등을 쏟아냈고, 1931년엔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그 후 40년간 GM은 눈부신 성장에 도취돼 서서히 다가오는 일본의 위협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잭 스미스 전 회장은 해외업무 담당자로 일본의 도요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절반의 인력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그들의 저력을 간파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간부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본의 급습은 현실화됐고, 고비용 저효율의 GM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은 50%에서 30% 미만으로 폭락했습니다.

"80년대 브루조아 문화가 팽배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중형 자동차 시장도 유럽차에 잠식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에 밀려 빚더미에 앉은 GM은 90년대 들어 파산직전까지 갔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사회는 잭 스미스를 회장으로 전격 발탁하게 됩니다.

마침내 잠자고 있던 거인이 잠에서 깨어났고, 잭 스미스 회장의 지휘 하에 GM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습니다.

다섯 개 브랜드가 경쟁하면서 서로의 수익을 갈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이들을 통합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전 세계 25개 상품개발센터를 GM을 대표하는 하나로 통합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이런 변혁에는 십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고 최근에야 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GM은 미국에서 최저 비용과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고, 생산성 면에서도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등 신차들이 연속 홈런을 날리고 있고, 이렇게 "최대한 많은 신모델을 선보이는 것"이 GM 재기의 성공 비법이라고 코우거 사장은 말합니다. 향후 3년간 총 마흔 네 종의 신차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반드시 가져야하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품만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원 연금과 의료비로 차 한대당 천2백 달러의 추가 비용이 부과되고 있고, 작년에 포드를 제치고 업계 2위를 기록하면서 무섭게 GM을 추격해오고 있는 도요타 등 아직 풀어야할 난제는 남아있습니다.

[앵커멘트]

신용카드는 현금이 없어 막막할 때를 빼고는 우리가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물건입니다.실제로 신용카드가 발명된 것도 갑부 두 명이 어마어마한 식사 값을 치를 현금이 부족해서 생겨난 겁니다. 플라스틱 카드는 우리의 소비 방식 뿐 아니라 포춘 500대 기업의 얼굴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요즘엔 각종 신용카드로 뭐든 살 수 있고, 보유 카드 수도 많아졌습니다.

"두 장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열 두 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 장입니다."

"열 다섯 장에서 스무 장 정도요."

"10장 넘게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랬던 건만은 아닙니다.

"예전엔 멤버쉽으로 운영돼 신용카드가 있으면 부자로 통했습니다."

그랬던 신용카드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요즘엔 누구나 신용카드를 가질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미국의 경제 생활도 크게 변했습니다.

"작년에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의 이용이 현금이나 수표 사용보다 많았습니다."

작년 한 해 미국인이 신용카드를 이용해 구입한 상품과 서비스는 무려 2조 5천억 달러로, 이는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액숩니다.

반세기 전 맨하탄에서 충전카드 형태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사용자 수도 늘었습니다.

50년 전 알프레드 블루밍데일 백화점 사장이 금융계 거물 프랭크 맥나마라와 점심을 함께 먹을 때였다고 합니다.

"점심값 청구서가 나왔는데 현금이 부족해 맥나마라의 아내가 돈을 가지고 와 지불해야 했고 그 이후 대변혁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다이너스클럽 카드가 탄생했습니다.
주로 부유한 기업인이 뉴욕 식당가에서 사용하던 충전식 카듭니다. 그건 1949년의 일입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신용카드인, 뱅크아메리카드가 등장했습니다. 미국인들은 한 눈에 매료됐고 뱅크아메리카드 6만 장이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의 거의 모든 세대에 우편으로 부쳤습니다.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업은 70년대까지 만성 적자에 시달려오다가, 호크 사장이 뱅크아메리카드를 인수해 비자 카드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었습니다.

전설적인 인물인 호크 사장은 신용카드의 성공 비결이 처리속도에 있음을 첫 눈에 갈파하고, 신용카드를 컴퓨터와 접목시켰고,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초기 전자 시스템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 시간에 5천 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이제는 1분이면 됩니다. 이런 빠른 속도와 효율성때문에 포춘 500대 기업의 얼굴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넷과 전자 상거래는 신용카드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겁니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 판매에 효율적으로 주력한 델과 온라인 경매업체 E-bay, 아마존닷컴의 성공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금 거래가 아니라 간단한 신용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일겁니다."

구매가 쉬울 수록 소비가 는다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맥도날드가 신용카드를 받기 시작하면서 소비가 늘었습니다."

빠른 금융 거래의 혁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리워즈 카드, 스마트 카드, 페이롤 카드에서 내장신용칩까지....이 모두, 미래형 금융 결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앵커멘트]

여러분은 지금 포춘 500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제약회사로 시작한 펩시는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변신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수 십년간은 젊은층을 겨냥한 마케팅에 주력해왔지만, 요즘엔 변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의 이미지를 심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던 신흥기업 펩시코가, 펩시걸로 데뷔해 메카스타로 변신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대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펩시코는 달고 몸에 나쁜 불량식품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맛 뿐아니라 유해식품 소송 제기를 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칩니다."

펩시코는 변화의 귀재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조그만 지방 콜라회사를 세계 200여개국에서 27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다국적 기업으로 키워낸 저력을 가진 기업입니다. 16개 브랜드의 매출이 각기 십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코카콜라가 등장하고 12년 후인 1898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사 케일럽 브래덤 (Caleb Bradham)이 실험실에서 펩시 음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펩시코는 설탕 구매 시기를 맞추지 못해 곧 도산하고 맙니다.

그러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탄산음료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펩시코는 급격한 매출 신장과 혁명적인 광고전략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라디오 CM 광고로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대공황기의 소비자를 고려해 같은 가격에 코카콜라보다 두 배 큰 콜라를 선보였습니다.

또, 1959년에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이용해, 닉슨 대통령을 설득해 후르시초프 소련 총리를 모스크바 무역박람회장내 펩시 코너로 안내하도록 했고, 한 모금 맛을 본 후르시초프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던 간부들을 기리는 조각 작품이 뉴욕 외곽의 이곳 펩시코 본사 앞마당에 세워져있습니다.

도날드 캔델 사장은 와인과 치즈처럼 콜라도 스낵과 함께 묶어 팔아야 한다는 생각 하에 1959년 포테이토칩 거물, 프리토-레이(Frito-Lay)와의 합병을 성공시켰습니다. 현재 펩시코는 세계 최대의 스낵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 때의 합병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펩시코는 없었을 겁니다. 당시엔 국가를 대표하는 스낵 회사가 없었습니다."

켄델 사장은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대대적인 광고도 펼쳤습니다.

"차세대 음료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어린 고객층과 함께 성장하자는 전략이었습니다."

그 후엔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 같은 스타를 이용한 "Me-세대" 끌어안기 전략을 구사했고, 지난 10년간은 건강에 대한 관심 고조에 발맞춰 주스업체, 트로피카나와 퀘이커 오우츠, 게토레이 스포츠음료를 인수하는 등, 변모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펩시코가 처한 가장 큰 도전은 미국민의 2/3가 비만이나 과체중인 가운데, 소비자의 취향이 점차 "살은 빠지면서 영양은 풍부한 음식"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펩시코의 매출수익 60%가 스낵과 음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트로피카나와 퀘이커 제품 상당수가 다이어트엔 좋지 않은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수익 모델을 건강제품 쪽으로 전환하는 편이 수익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프로토-레이 스낵에서 전이 지방을 제거해 맛은 보전하면서 건강엔 더 좋게 만들었고, 동시에 저칼로리, 저탄수화물, 저염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탄산음료 2위라는 자리가 항상 펩시코로 하여금 더 많이 노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 빨라야하고 더 나아야하고 더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펩시 세대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앵커멘트]
수십 년 전까지만해도 월가는 돈 많고 연줄 좋은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호황기를 거치면서 너도나도 증권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포춘 500대 기업의 면모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자들이 스포츠 생중계를 보듯 1초 마다 변하는 주식시세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풍경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포춘이 500대 기업의 순위를 매기기 시작할 무렵엔 기업의 간부들조차도 일일 시장 변동을 따라잡기가 어려웠습니다.

1957년부터 월가에서 일해 온 존 헐조그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 땐 칵테일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식 거래 일을 한다'고 말하면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생경해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실제로 최초의 포춘 500대 기업 목록엔 선정 기업의 실질 주식 가치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195,60년대 금리 인상 때도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을 노리는 대신, 코카콜라, 질레트, 파이저 같은 소수의 고성장 포춘 500대 기업에 장기적으로 안전 투자하는 쪽을 선호했습니다.

"당시엔 성장주를 사면 절대 팔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기업연금'인 401K가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의 광적인 포트폴리오 관리가 시작했습니다. 80년엔 또 '기업 사냥꾼'이 전격 등장했습니다.

그 중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는 티 분 피켄스(T. Boone Pickens)와 칼 아이칸 (Carl Icahn), 사울 스타인버그 (Saul Steinberg)는 저평가된 기업들을 주요 사냥감으로 삼아왔습니다.

"어려운 기업의 상황을 이용해 저가에 인수한다는 악덕 투자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금 공단, 국세청 등 피해를 입을 다수의 이해 관계자를 구해준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포춘 500대 기업의 성장 동력과 수익 증가 압력이 바로 이런 연금 공단과 적극적인 주주단, 증권 거래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까지...포춘 500은 지난 반 세기동안 미국 경제사의 일부를 차지해왔고,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포춘 500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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