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박찬욱 감독이 '어쩔수가없다'로 전작 '헤어질 결심'의 관객 수를 뛰어넘으며 또 한 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지구 어디선가 100년 뒤에도 볼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거장 박찬욱을 김승환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너나 잘하세요"
"한 가지만 묻자, 누구냐 넌"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캐릭터와 보는 이들을 어딘가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
이와 대조되는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속에서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박찬욱 세계관이 탄생합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감정과 드라마가 있으면 그것을 묘사하는 방법이 어떻게 기분 좋은 충돌을 일으키는지…. 그렇게 충돌이 이뤄질 때 좀 더 관객은 인상적으로 기억하니까…]
잔혹함조차 미학으로 끌어올린, 거장의 작품 세계.
피식 웃음이 나는 블랙코미디와 아이러니가 뒤섞인 이곳엔 모두의 인생이 녹아 있습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선의, 호의를 갖고 하는 행동이 상대방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공교롭게 이렇게 풀려간다' '이 일이 왜 이렇게 풀리지?' '하필이면 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잖아요, 살면서… 우리 인생은 항상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한땀 한땀 디자인된 영화와 달리, 찰나의 거친 순간을 담은 사진을 사랑하는 박 감독 취향 역시 '아이러니'입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사진 작가는) 두 번째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영화 투자를 더 못 받게 되면 그때는 오로지 사진 작가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영화로 세상을 탐구해온 박찬욱의 생각은 단 하나로 모입니다.
100년 후에도 볼만한, 밀도 있게 꽉 차서, 깜깜한 영화관에서 집중해야만 하는 영화.
[박찬욱 / 영화감독 : 10년, 20년, 100년이 흘러도 지구 상 어디선가 어느 시네마테크에서, 또는 어느 집에 TV에서는 이것이 틀어지고…. 그런 고전으로 남는 것, 그것이 저의 목표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말러 교향곡 5번처럼, 100년을 훌쩍 넘은 클래식 음악이 작품마다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제가 지향하는 영화라는 것이 좀 풍부하고 복잡한 영화입니다. 클래식 음악의 길고 수많은 레이어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풍성함, 복잡함을 좋아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21년 전 칸 영화제 수상 직후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농담과 달리, 어느덧 한국영화계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직후) : 제가 만든 영화 여러 편이 전부 굉장히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어 보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염세주의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아, 이제 내 인생에선 내리막길만 남았구나…']
[박찬욱 / 영화감독 : '어쩔수가없다' 배우들 하고 (있는) 단톡방에 누가 짓궂게 올려놓는 바람에 (과거 발언 영상을) 보고 너무, 그거 올린 사람이 미웠는데…. (그 이후) 계속 더 내리막길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영화를 썩 잘 만들진 못한다며 스스로에 박한 평가를 한 박찬욱.
늘 세상에 없는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은, 뜻밖에도 '후회'입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부족한 면이 자꾸 눈에 띄고…. 그렇게 후회하는 마음, 자책하는 마음, 그런 게 커서…. 저는 다른 사람보다 적어도 기준은 높은 것 같아요.]
자기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 본인 인터뷰 영상을 안 보고, 자신을 소개한 위키 사전 역시 읽어본 적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덴 관심이 없습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본인이 나오는 위키 백과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평소엔) 집에 음악 듣고 영화 볼 수 있는 방을 만들었고 거기서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고, 산책하고 고양이하고 놀고 그 정도입니다.]
언제나 전작과 달라지는 데서 출발한다는 박 감독의 다음 도전 역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입니다.
[박찬욱 / 영화감독 : (미국 배경의) 서부극은 계속 준비해왔어요. 몇 년 동안… 투자 결정이 된 게 없기 때문에 바로 다음 작품이 되긴 어려울 것 같고…. 이 영화('어쩔수가없다')가 성사된 걸 보면서 또 희망을 갖게 됐기 때문에 계속 노력을 할 생각인데…]
관객의 습관이 바뀌고 극장의 풍경이 달라져도, 잘 만든 이야기의 힘은 굳건하다는 믿음을 붙든 채, 박 감독은 또 새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YTN 김승환입니다.
영상기자 : 이현오
디자인 : 우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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