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계기로 얼어붙었던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데요.
전문가 그리고 취재기자 모시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 향후 일정과 남북관계 조명해 보겠습니다.
강승규 고려대 교수와 이상철 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김희준 기자 나와 있습니다.
먼저 이상철 위원장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일단 마무리됐고요.
조금 있으면 내려올 텐데 이산가족 대표로서 어떤 소감이신지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지금 화면으로 지켜봤듯이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기본의 생각이라고 전해지는데요.
지금 기약없는 이별을 또 했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가 이렇게 상봉행사로 그쳐야 되느냐는 상황이 깊이 생각이 되고 그래서 대다수 상봉하지 못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의가슴에 피멍이 맺히고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실제 시간이 없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상봉에서도 두 분이 상봉절차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귀환하는 그런 행사가 있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이번에는 강승규 교수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3년 4개월 만에 열린 건데어떤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십니까?
[인터뷰]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결과, 개성공단도 우여곡절 끝에 재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1차 성과라면 이번에는 2차 성과라고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북한에서 여러 가지 인도적인 문제 또 자신들이 원하는 문제들을 저희들과 협의를 요구할 텐데 그러한 부분을 우리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잘 이끌 어갈 것인가 그것이 관점이 되고요.
지금 북한은 저희들이 알다시피 국제적인 고립, 그다음에 장성택 문제로 인한 내부의 불안정성.
또 경제문제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지금 북한이 요구하는 상황은 여러 가지 가 있을 겁니다.
그걸 앞으로 박근혜정부가 원칙과 신뢰를 지켜서 어떻게 그걸 이끌어갈 것인가가 우리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다.
잘해야 될 것으로 봅니다.
[앵커]
이상철 위원장님께서는 부모님께서 실향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신청을 하셨는지요.
[인터뷰]
저희 부모님이 실향민이면저도 이산가족이죠.
그래서 신청을 하셨습니다.
이산가족들이 이산상봉을 하겠다고 신청하신 분들이 12만 9000명이 됩니다.
거기에 지난해까지 돌아가신 분들이 한 5만 8000명이 되고지금 한 7만 1000명 정도가 기다리고 계신데 참 시급한 그런 상황이죠.
그래서 저희 아버님도 신청을 했지만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앵커]
남쪽에 있는 분들이 북한에 가서 가실 때 보면 선물들을 많이 갖고 가시는데 어떤 선물들을 갖고 가십니까?
[인터뷰]
이번에도 보시면 뭔가라고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60년 동안만나지 못한 가족을 만나서 마음의 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주로 생필품 주로치약이나 어떤 생필품과 비누 같은 거.
그 다음에 간단한 의약품들 이런 것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많이 줬던 초코파이를 주고 겨울에 내의, 파카같은 것이런 것을 가져가게 되고요.
그리고 금전, 현금도 준비해서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금전 문제, 현금 문제는 정부에서 1000불 정도로 제한하고 있는 이런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이산가족들이 보다 많이 상봉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봉행사를 정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당연히 찬성을 하시겠죠?
[인터뷰]
그런데 정례화를 물론 해야 되는데 정례화 이전에 해야 될 일이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정례화가 이제 지금과 같이 1년에 한 번, 두 번 해서지금 살아계신 상봉 희망자 7만 1000명이 상봉하기에는 700년이 걸린다는 이런 상황이 되는데 정례화를 했다고 쳐봅니다.
한 달에 100명씩 정말 1년에 한두 번 하던 걸한 달에 한 번씩 정례화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
한 달에 100명씩 1년에 1200명 7만명을 하려면 70년이 걸려요.
그런데 지금 이산가족들 1세들, 연세가 높으셔서 오늘 하루 이틀이 급한 그런 상황인데 이걸 정례화하는 문제는 따로 치고 우선 급하게 서둘러야 될 사안이 전면적인 생사확인을 해야 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 상황을 먼저 알아야 그다음에 서신교환을 하든지 그다음에 정례화된 상봉을 하든지이게 순서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지금 요즘에 우리 사회 이산가족 화두가 정례화로 되고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전면적인 생사 확인이 화두가 돼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앵커]
강 교수님, 지금 이상철 위원장님말씀을 들으셨습니다마는 먼저 화면상봉이라든가 서면으로 전달하고 그다음에 정례화를 해야 된다 이런 말씀이셨고.
아무래도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인터뷰]
저도 위원장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저희가 우선 생사확인이 중요하죠.
이산가족, 저희 어머님도 황해도 분이신데 이렇게 말씀을 여쭤보면 우선은 생사확인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기일, 어머니, 아버지 기일. 제사라도 지낼 수 있게끔 해 달라는 게 최고의 목적이고요.
이렇게 대면상봉이라는 것은 우선 생사확인이 되고 그 다음 서면, 서신왕래가 되고 그다음 대면상봉이 되고또 이렇게 끝나지 말고 그다음에 화면으로 상봉을 하고 이렇게 또 서신왕래가 이어져야지 이것이 순차적인 것이 맞고요.
우리가 정례화를 하게 되면 면회소를 만들어놓고 상시로 만나지 않겠습니까?
북한이 변덕을 부리지 않으리라는 그런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개성공단처럼 우리가 또 끌려가는 그런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심사숙고를 해야 하고요.
또 정례화나 이런 걸 우리가 요구를 하게 되면 북한에서는 반드시 또 요구조건을 내걸 겁니다.
특히 금강산 재개라든지 아니면 5.24조치 해제, 또 여러 가지 비료나 쌀 문제를 들고 나올 텐데 그러한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잘 유도하고 또 포용할 부분은 포용해야 하는데그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언급을 하셨습니다마는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서 지난번에 박왕자 씨 피격사건이라든가 유감을 표명한다든지 또는 재발방지 방안 이런 걸 내놓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 저희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많이 높다고 봅니다.
과거에도 현정은 현대회장을 통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구두로 사과를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저희는 그거 갖고 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저희가 50대 관광객여자분을 조준사살했다는 것은 분명히...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북쪽 화면이 들어오고 있는데 김희준 기자, 지금 보면 10번인가요?
우리 가족 두 분 모습이 보이고 있거든요.
[기자]
10번 분은 김봉학 할아버지신데요.
1. 4후퇴 때헤어진 동생, 북녘의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오늘 작별 상봉은 오전 9시부터 당초 10시까지 치러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연돼서 1시간 반동안 진행이 됐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2박 3일의 마지막 일정이기 때문에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작별상봉이 더 길어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앵커]
지금 보고 있는 저 화면이 오늘 오전 상황이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이루어진 상황인데요.
저희가 보고있는 분은 납북어부이신 박양수 씨를 만난 박양곤 씨로 보입니다.
1974년도 서해상에서 조업을 하다 납북이 되셨죠.
오른쪽분이 형님이고요, 북녘의.
지금 왼쪽에 울고 계신 분이 박양곤 씨입니다.
1970년대에 헤어지셨으니까 이제 한 거의 40년 만에 만나신 건데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앵커]
지금 저 작별상봉은 1차 상봉단의 행사 중 마무리 행사라고 볼 수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1차 상봉단은 이틀 전부터 첫째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지금 7차례 상봉해서 11시간 만에 상봉이 끝이 난 건데요.
[앵커]
그리고 또 내일부터 2차 상봉 시작되는 거죠?
[기자]
2차 상봉을 위해서 지금2차 상봉단이 현재 속초 숙소로 집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 3시까지 집결을 해서 방북교육 등을 받게 되는데요.
[앵커]
그런 상봉 절차는 예전에 있었던상봉절차하고 변함이 없어요.
[기자]
변함이 없습니다.
단 하나 다른 것은 어제 오후 이루어 진 실내상봉인데 날씨가 좋다면 삼일포나 해금강 주변에서 하는데어제는 실내에서 상봉이 이루어 졌습니다.
지금 26번 가족이군요.
유형식 씨입니다.
유영식 씨입니다.
인민군으로 남측에 온 뒤 거제도 수감소에 수용이 되셨던 분인데요.
형님은 돌아가시고 그 큰형의 딸들, 조카들과 상봉을 합니다.
이번 1차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입니다.
96살인데요.
어느 상봉자 못지않게 2박 3일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북쪽의 동생을 만나셨어요.
동생과 조카들입니다.
[앵커]
96살이신데도 아주 정정한 모습이네요.
평안북도가 고향이시군요.
동생 김석려가 80살.
[기자]
조카들이죠.
김석려 씨의 딸도 함께 상봉했는데요.
지금은 아주 담담한 모습이신데요.
첫날 상봉에서 많이 눈물들을 흘리시고 어제 특히 마지막 실내상봉은 이제는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에 서로 많이 눈물 흘리시고 또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우리 이상철 위원장께서 저런 모습을 보시면 안타까움과 함께 부러운 점도 있으시겠어요.
[인터뷰]
그렇죠.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기자]
얼른 상봉단에 선정이 되시면 좋을 텐데 또 언제 될지 참 기약하기 어려운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14번, 김시현 할아버지이십니다.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조카도 함께 만나셨고요.
지금 26번 테이블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전체화면 모습을 보시고 계십니다.
[기자]
비교적 참 담담한 모습이신데요.
사실 저희가 조금 출연돼서 오는 화면을 보는 상황인데 조금 전 버스를 타고 헤어지고 오는 모습인데 그때는 정말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됩니다.
잠시 뒤 화면의 동영상을 저희가 볼 텐데...
[앵커]
김순연 할머니 조카 둘을 만나는 모습이군요.
고향이 경기도.
고향이 경기도이신 것 보니까 경기도 북부이신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순연 할머니가 연신 눈물을 닦아내면서 참 말씀을 잊지 못하시는 상황인데요.
또 이제 보면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가슴이 아픈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상봉을 하고 돌아가시면 내 한을 풀었다고 하지만 돌아가셔서 또 좀 몸이 안 좋아지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만나고 나서 허탈함 충격같은 게 있으시니까요.
[앵커]
지금 저 할아버지도 81살.
조카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친형과 함께 서울로 피난했다가누나와 남동생과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돌아가시고 그 동생의 아들들과 상봉하셨습니다.
류형식 할아버지이신데요.
아까 저희가 잠깐 뵀던 분 같습니다.
조카를 역시 만나십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까 조카 다 많이 돌아가시고 그 조카들 삼촌 이상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56번 테이블인데요.
이명호 할아버지입니다.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여동생과 남동생 함께 만나셨죠.
당시 형 2명과 피난을 왔다가 가족과 이별하게 됐는데요.
이번에 상봉자들 보면 정말 닮으신 분이 많더라고요.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다저희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건데요.
[앵커]
안타까운 점은 부자나 부녀간의 상봉보다는 조카 또는 친척들.
아무래도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상봉단의 80% 이상이 80살 이상 고령이십니다.
부부상봉은 단 한 건이었고 형제 자매 만나는 경우가 10건 정도 됐습니다.
부부상봉이 한 건이고 그 다음에 아들딸을 만나시는 경우가 10명이었고 나머지는 40분 정도가 동생 형제고 나머지가 3촌 이상의 조카들 만나시는 겁니다.
어제는 각 방에서 오붓하게 개별상봉을 하면서 그동안 가족들이 가져온 선물들을 나눴고요.
그리고 오후에는 마지막 헤어진다는 생각으로 서로 주소와 사는 곳 등을 서로 나눴는데요.
과연 그 이후 편지교환이 가능하면 좋겠습니다마는.
[앵커]
저 화면은 오전 상황을 어떻게 전달되게 됩니까, 서울까지는?
[기자]
보통 금강산 현지에서 속초현지로 한 25km 정도 떨어진 거린데 그 화면을 저희 촬영기자들이 촬영한 화면을 행랑 편에 보내서 좀 지연돼서 들어오고 있는 그림입니다.
사실 저는 2002년도, 2001년도 4, 5차 상봉 때 금강산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저희 중계차가 현지에 가서 실시간으로 중계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북측이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중계차들이 속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금강산에서 오는 화면을 저희한테 전달하게 되는 겁니다.
[앵커]
지금 남북이산가족은 정례화 된 건 아니기 때문에 다음 행사가 언제 열릴지 모르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앞으로 북측의 행보를 지켜봐야 하는데요.
지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한 이후에 북측이 전향적으로 나와서 이렇게 이산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마는 앞으로 또 어떻게 진행이 될지 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앵커]
강승규 교수님.
지금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마는 북한이 신년사 이후에 계속 유화정책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북한의 우리나라에 대한 대남기조, 좀 변했다고 봐야 될까요?
어떻습니까?
[인터뷰]
중요한 건 작년 12월에 자신의 후견인 또 친고모부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내부 불안정성이 굉장히 큰 것 이죠.
그 다음에 자기가 정권을 맞고 2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중국측 시진핑 주석이 오라는 사인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안절부절한 상황에서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북한으로 서는 출구다.
이 출구를 잘해야 되겠다.
지금 기대를 하고 있고요.
또 중요한 것은 비료가 굉장히 모자란 것 같습니다.
1년에 140만톤이 필요한데 확보된 건 40만톤, 100만톤이 모자란 상황에서 상황에서 흥남비료공장도 보수공사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마 비료를 요구할 것 같고요.
또 쌀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또 여러 가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그런 트집을 잡을 것 같고요.
앞으로 우리가 북한이 과거 60년, 70년동안 해온 행적을 저희들이 이런 시기에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런 부분을 항시 염두에 두고 우리가 북한보다는 더 전략적으로 또 더 전술적으로 우리가 북한을 잘 이끌고 포용하고 대처해야 될 것으로 봅니다.
[앵커]
어떻습니까?
남북한간의 대화채널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십니까?
[인터뷰]
물론 고위급 접촉이 시작이 됐기 때문에 또 저쪽에 국방위원회와 우리 청와대가 연결됐기 때문에 그 부분은 연결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북한이라는 체제가 수령독재주의로 하루아침에 김정은의 생각으로 변화가 되기 때문에 저희가 항시 불안한 심정으로 그 체제를 주시해서 봐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이상철 위원장님, 지금 화면 쭉 보셨는데요.
북한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받아들였습니다마는 일종의 전략수단 비슷하게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게 바라고 싶은 얘기라든가 있으면 좀 말씀을 해 주시죠.
[인터뷰]
북측이 지금 남북의 경색 때마다 우리측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경색의 고리 역할로 이산가족 문제를 많이 활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측의 다급한 입장으로 놓고 볼 때 오히려 우리가 이산가족 문제를 무기로 삼을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상봉을 해야겠지만 인프라 구축을 이산가족 문제의 인프라 구축을 했으면 좋겠다.
왜 지금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해야 되느냐.
저희들은 참 의문이 많습니다.
19차례 했습니다마는 1차부터 4차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했어요.
[기자]
동시 상봉이 이루어졌죠.
[인터뷰]
그런데 지금 금강산에서 면회소를 지어놓고 실제로 우리돈 들여서 지어놓고 전혀활용을 못하고 있는 그런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인프라 구축을 임진각이나 이쪽에 우리 지역에 우리가 우리 돈 들여서 평소에 면회소를 지어놓고 정말 정례화돼서 활발하게 움직일 때그때 가서 짓고 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임진각이나 이런 데 통일 전의 독일 상황을 하면 베를린 장벽이 하나의 관광상품화 되고분단조국의 상이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임진각쪽에 통한의 벽이라든지 이산가족의 상징물을 지어서 다시는 이산가족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는 이런 생각과 이산가족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통일을 이루겠다는 이런 통일의지 함양을 줄 수 있는 이런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하는 게 저희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입니다.
[앵커]
김희준 기자, 취재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그동안 이산가족 상봉문제 갖고 서로 줄다리기를 했고 지금 남북관계가 계속긴장과 완화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전망이랄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마는 향후 남북 관계 잘 풀릴 것으로 보십니까, 어떻습니까.
직접 취재하는 입장에서 전망이라면 전망이랄까 어떻습니까?
[기자]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저희가 2000년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남북관계가 완전히 잘 될 것처럼 얘기했고 저희도 수많은 장관급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취재하면서 정말 큰 게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지만사실 10여 년이 지난지금도 어떻게 보면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또 가장 중요하게 걸려있는 문제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까지 엮여 있어서 참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아무튼 그런 정치적인 상황은 제외하고라도 북한 정권에서 이런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인 차원 아닙니까?
조금 별개로 대응해서 일단 이산가족들의 한은 달래주고그외에 북한 비핵화문제라 이런 것들은 외교적인 채널이나 남북관계 등을 통해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봅니다.
[앵커]
강 교수님, 얼마 전까지만 해는데 미국 같은 연구기관이라든가 학교, 대학교 연구단체 같은 데서 북한의 핵실험 또는 로켓발사 관련한 움직임 또는 위성사진 결과이런 게 계속 나와서 북한이 또 뭔가 도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았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아무튼 그런 로켓발사나 핵실험 없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을 했단 말이에요.
올 한 해 동안 이런 유화책 제스처가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인터뷰]
글쎄, 결국 지금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 카드를 북한은 항시 갖고 있는 거죠.
4차 핵실험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또 장거리미사일 발사.
지난번보다 더 큰 이제는 미국의 워싱턴까지 날아갈 수있는 그런 장거리미사일 발사, 지금 시험대를 다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 얘기이지 않습니까.
그런 두 가지 카드를 갖고 있는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항시 두 가지 카드를 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을 겁니다.
북한 자체가 수령을 중심으로 해서 강경파 온건파가 있을 텐데 이번에는 온건파가 이러한 상황을 유지를 했고요.
앞으로 강경파가 그 두 가지 카드를 어떻게 들고 나올 것인가.
뭘 요구하면서 들고 나올 것인가 저희들은그 문제를 심각히 좀 생각을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김희준 기자, 지금 한미간의 대북 관련해서는 공조가 아주 튼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한·미간에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 원칙을 강조를 하고 있고요.
지지난주 존 케리 미국무장관이 방한을 해서 한·미간 대북공조는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를 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강승규 고려대 교수, 그리고 이상철 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그리고 김희준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세 분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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