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성적표를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책임을 통감한다"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과 장면, 낯설지 않죠.
여야 할 것 없이 선거에서 진 쪽은 마치 공식처럼 '지도부의 사퇴'라는 카드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의 전례 없는 압승은 바꿔 말하면 지금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참패였습니다.
황교안 당시 대표도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황교안 / 미래통합당 대표 (지난해 4월 15일) : 는 이전에 약속한 대로 총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습니다.]
보수 텃밭 외에 설 곳을 잃은 미래통합당은 103석만을 확보했습니다.
황교안 대표 역시 서울 종로에 출마했지만, 이낙연 당시 민주당 후보에 큰 표차로 낙선했고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2018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야권은 역대 최악의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이끈 홍준표 대표, 바른미래당을 이끈 유승민 공동대표까지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투표가 끝나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올 때부터 한국당 상황실은 침울했습니다.
결과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14곳을 여당인 민주당이 차지했습니다.
탄핵 국면을 거치고도 제대로 혁신하지 않는 야당의 모습에 민심은 차갑게 등을 돌렸습니다.
개표 시작 1시간여 만에 당내에서 홍준표 지도부에 대한 사퇴 목소리 나왔고요.
다음 날, 홍준표 대표와 지도부가 사퇴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홍준표 / 자유한국당 대표 (2018년 6월 14일) :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부탁합니다.]
[유승민 / 바른미래당 공동대표(2018년 6월 14일) : 대표직을 물러나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선거 패배 후에만 지도부가 사퇴하거나 고개를 숙인 건 아니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물러났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를 비롯해 추미애 전 장관, 우상호 의원 같은 눈에 익은 인물들이 눈에 띄죠.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가 정치 쇄신을 요구했고, 여기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일자 총사퇴한 겁니다.
2016년 새누리당 지도부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정현 당시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가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습니다.
선거 참패 직후, 그리고 정치적으로 승부수 띄워야 할 때마다 여야 지도부는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성찰과 쇄신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성찰과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사과와 사퇴에 민심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약속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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