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버려진 아이들 50년 동안 돌본 할머니 의사

2015.05.20 오후 07:52
[정면인터뷰]버려진 아이들을 50년 동안 돌본 할머니 의사 ,입양아의 대모!-조병국 홀트일산복지타운 의원장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5/05/20 (수) 오후 6시
■ 진 행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불과 60년 전만 해도요. 이 땅에는 전쟁에 굶주린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려 죽어갔습니다. 기아로 병원에 들어온 아이들만 2,300명이 넘었다고 하니까요. 지금으로써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인데요.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보살피고 치료한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지금까지 6만여 명의 입양아가 그 사랑의 손길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 의사로서 보장된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의원장과 얘기 나눠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조 원장님 안녕하세요?

◆조병국 홀트일산복지타운 의원장(이하 조병국): 네. 안녕하세요.

◇최영일: 원장님 목소리가 너무 씩씩하신데요. 2009년에 은퇴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2009년 정년퇴임 당시에도, 홀트부속의원의 원장 후임을 찾지 못해서 15년이나 더 입양아들을 진료하신 상황이었다고 전해 들었는데요. 어깨 통증 많이 심해져서 겨우 후임을 찾아 은퇴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건강은 어떠십니까?

◆조병국: 3월 초에 뇌경색으로 잠시 입원했다가 지금 퇴원했는데요. 지금은 그냥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어서 감사하고 살고 있습니다.

◇최영일: 조 원장님 그러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거예요?

◆조병국: 이제 만 82세입니다.

◇최영일: 팔순을 넘기셨군요. 그런데도 뇌경색까지 앓으셨는데, 은퇴는 하셨지만 요즘에도 홀트복지회관에서 의료 활동 계속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조병국: 여기 홀트일산타운 부속의원 개설해서 280여 명 장애생활자의 진료를 하다가, 2012년 12월 31일에 병원은 문을 닫았어요. 적극적으로 의료행위는 현재 하고 있지 않고요. 가끔 스페어 타이어 역할을 하고 있죠.

◇최영일: 긴급할 때 가서 진료를 보시는군요.

◆조병국: 그냥 방에 가서 보기도 하고요.

◇최영일: 그런데 얘기를 들었더니요. 굉장히 고귀하고 소중한 일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홀트부속의원의 원장 직이 워낙 박봉에 하루 수십 명의 아이들을 진찰해야 하는 강행군이기 때문에. 보통 남들이 1, 2년 만에 그만둔다고 들었어요. 원장 후임을 찾기도 어려우신 상태고요. 그러면 원장님께서 의대로 진학하던 당시, 전쟁 직후셨을 텐데. 여성이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대상황에. 더구나 의대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특별한 이유 기억나세요?

◆조병국: 그냥 동생 둘이 열 살 되기 이전에 둘이 세상을 떠났고. 저도 초등학교 다닐 때 맨날 아파서, 세브란스 병원이 옛날에는 서울역 앞에 있었거든요. 학교에서 끝나면 그 병원에서 소아과 진찰 받고 집으로 가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거기에다가 6.25 동란 겪으면서 다친 사람, 아픈 사람, 부모 잃은 사람. 이런 불쌍한 사람들 많이 보니까 그래도 아픈 게 제일 답답하잖아요. 그래서 아마 더 마음이 굳어진 것 같습니다.

◇최영일: 어린 시절 아프셨기 때문에 병원 신세를 자주 지시면서, 환자들을 많이 접하게 되셨겠군요. 그런데 전해 듣기로는요. 아버지나 선생님 모두 의대 진학을 강력히 반대하셨다는데.

◆조병국: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형제는 많은데 나만 2년을 더 등록금 대줄 수 있냐. 똑같이 다섯인데.

◇최영일: 아, 대학이 기니까. 그러셨군요. 그러면 지금 1958년도에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셨고. 곧바로 서울시립아동병원과 홀트아동복지회를 오가시면서 극빈층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전해지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에 굶어죽는 아이들도 참 많았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으로 기억되십니까?

◆조병국: 전쟁 중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또 전쟁 후에도 복귀하고 그러는데 정신이 없으니까, 농사를 못 지으니까 먹을 게 동났죠. 아버지나 삼촌, 오빠 등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전쟁하고 있지만, 후방에서는 뭘 할 수가 있어야죠. 아무 것도 못하고 피난 다니느라 바쁘고. 지금 감자도 크게 하지만, 옛날에는 조그만 어린애 주먹만 한 감자 캐면. 그런 것 하나 먹으면 하루 양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배고프게 살았죠. 그거 하나라도 먹으면 오늘 한 끼 때웠으니까 오늘 살았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고. 또 TV에서 다른 나라 기아들의 모습이 요새 우리나라에 잘 비치잖아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그 사람들이나 그 때 우리 아이들 모습이나. 스킨 앤 본이라고 할까요. 가죽이 밀린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그러다가 결국 병이 나거나 해서 세상을 뜨게 되죠.

◇최영일: 홀트라는 기관에서 오래 봉사를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굶기도 하고, 허기와 기아 선상에 있는 아이들에게 입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조병국: 입양은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을 맡아줄 곳이 없는데, 맡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우선 굶어죽게 된 상태에서 물이라도 마셔야 하고, 먹을 것이라도, 미음이라도 얻어먹거나. 숭늉물이라도 얻어먹어야 사는데. 어린애들이 더군다나 걷지도 못하고, 자기가 뭘 만들어서 사서 먹을 수도 없고.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생면부지를 하겠어요. 목숨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입양이었죠.

◇최영일: 그런데 좌절의 순간도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1988년 올림픽 때, 국내 언론에서 아동수출국 1위다. 이런 해외입양에 대해서 거센 비난이 날아올 때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요.

◆조병국: 그 때는 참 개인적으로 분노가 컸죠. 1988 서울 올림픽. 지구상에 울려지는 대단한 소식이었죠. 이런 이야기 내가 지금 처음 하지만. 그 때 마음을 지금 표현하라면, 그림의 떡, 힘의 잔치, 사치의 절정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입양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소치로 입양을 수출이라는, 물건에 빗대어 비판하는 것은 지금도 제 마음에는 곱게 이해되지 않아요. 그리고 보호자도 없는 아동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가 질문 한 번 하면 뭐라고 대답 하실는지.

◇최영일: 글쎄 말입니다.

◆조병국: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없다면 저라면 입양 보내겠어요.

◇최영일: 정말 절박한 말씀 주셨는데요. 정말 많은 아이들이 6만여 명. 원장님의 손을 거쳐 갔는데. 혹시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으십니까?

◆조병국: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많죠. 지금은 다 아이라고 할 수는 없고 독립된 사회인, 어른이 됐죠. 소아재활의학 전문의가 된 닥터 리슈라는 분. 그 분은 자기가 약간 뇌성마비가 있는 정도로 불편한 사람이었고. 또 얼마 전에, 몇 년 전에 폐암 전문의로 국제학회 연사로 한국에 와서. 학회에 참석해서 자기가 연사로 이야기 하는, 노르웨이로 입양 간 성인도 만났고. 목사, 교사, 방송인, 사회사업가 모두 많이 만나볼 수가 있었고요. 할머니가 된 사람도 손주 사진 들고 왔었고. 특별히 목사님이 된 분의 입양 성인의 목사님 한 말이 기억나는데요. 아프면 고칠 수도 있고, 돈을 잃으면 큰 손해가 나지만, 가정을 잃으면 희망을 잃는다는 글을 명함에 써주고 갔어요. 그 생각이 나서 특히 그런 굴욕적인 평가를 받아도 일을 할 수 있었죠.

◇최영일: 정말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말씀 주셨는데요.

◆조병국: 그렇죠. 또 인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간호사로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회사업가가 돼서 그 사회에 문제 일으키는 청소년들 위해서 일한다는 그런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짠하죠.

◇최영일: 아까 원장님 서울 88올림픽 때, 이게 다 그림의 떡이다, 사치다. 이런 말씀 주셨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왔다고 많이 얘기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해외입양이 많은 나라에 들어가는데요. 이런 현실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조병국: 특히 장애를 가진,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더 답답하죠. 그리고 엄마가 악성 질환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때, 키울 수 없으니까 양육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가정 파탄이 있어서 이혼을 하거나 이렇게 생겨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입양이라는 이 단어나 행위가 이 지구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은 계속 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저는 말하는데요.

◇최영일: 원장님. 이게 그러니까 경제대국 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성이 많이 성숙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조병국: 그렇죠. 돈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후원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얘네들한테는 집이 필요한 것이고, 부모가 필요하죠. 누군가가 보살펴주는 손길이 필요한 거죠.

◇최영일: 알겠습니다. 원장님, 이게 타이밍이 절묘한게요. 저희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일이 생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생신 축하드리고요. 존경합니다.

◆조병국: 감사합니다.

◇최영일: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조병국: 감사합니다.

◇최영일: 지금까지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의원장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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