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1월 08일 (월요일)
■ 대담 : 임헌영 문학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친일청산이 현재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소장(문화평론가)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독재와 항쟁, 급격한 경제적 성장과 불평등한 경제적 상황들. 작은 대한민국에 100년도 안되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 역설 가운데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인생 하나하나가 사실 영화고 노래인데요, 오늘은 한 분의 인생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좀 훑어보려고 합니다. 임헌영 문화평론가인데요, 제가 잠깐 평론가님의 사연을 좀 소개해 볼게요. 1966년 문화평론가로 등단하신 이후,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잡지 를 비롯해 여러 잡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습니다.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인간첩단사건으로 투옥했고, 1979년부터 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했습니다. 이후 98년 복권되어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십니다. 임헌영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 임헌영 문학평론가(이하 임헌영)> 예. 반갑습니다.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혜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청취자 분들께 인사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 임헌영> 예. 제가 그 명색이 문학평론가인데 평론이라는 것은 문학 장르 중에서 제일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시인이 되려다 안 되고, 소설가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이 이제 남 밑에서 공부하면 평론가 만들어 주겠다. 그 평론가입니다. 제가. 그걸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 김혜민> ‘재능이 없는 자’라고 말씀은 해 주셨지만 제가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재능이 아닌 삶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살아내셨고. 또 문학과 역사를 함께 통찰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임헌영> 재능이 없으니까, 몸으로 떼운 거죠. 한 시대를.
◇ 김혜민> 아니에요. 겸손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저희가 언박싱할 책은 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보이는 라디오로 좀 보여드리면, 선생님. 제가 최근에 언박싱한 책 중 제일 두꺼웠습니다. 어떻게 80년의 인생을 담아내는데 이 정도의 두께가 안 나올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선생님 개인의 삶도 삶이지만 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여기 담겨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임헌영> 그렇죠. 제가 운이 좋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통 세계사를 이야기할 때 19세기는 모든 세계의 변혁을 프랑스가 주도했거든요. 혁명이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역사는 혁명의 역사죠. 그런데 20세기는 불행하게도, 혹은 글 쓰는 사람에게는 다행하게도 한국이에요. 한국만큼 20세기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변혁과, 혁명과, 정권교체와, 쿠데타와 이런 게 엇갈린 나라가 없습니다. 그 속에서 재능이 없는 평론가가 몸으로 떼운 게 이 책이다.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혜민> 평론가로만 몸으로 떼운 게 아니라 사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몸으로 떼우는 일을 너무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걸 책을 읽으며 많이 느꼈습니다.
◆ 임헌영> 그렇게 봐주시니까 참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 김혜민> 이 시기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열강 속에서 정말 처절하고 서러운 삶을 살았고요. 이후에 독립을 맞이하고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요. 그 이후에도 군사정권 가운데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렸고요.
◆ 임헌영> 그렇죠. 그게 이제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직접 이 문제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팔자가 되어 버렸어요. 가족사적인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가장 현실적으로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고찰한 것이 바로 이 책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김혜민> 사실 평론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론하는 일인데 선생님의 삶은 그 역사 속에 뛰어들어서 플레이어로 활동하신 거네요.
◆ 임헌영> 그래서 원래 평론이란 것은 나쁘게 말하면 글 도둑이죠. 남의 글을 도둑질해 먹고 사는 절도범인데, 공교롭게도 역사 분야에서는 제가 직접 뛰어들어서 몸으로 겪으면서, 체험하면서, 책을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 김혜민> 자, 이 책의 제목은 이라는 책입니다. 2005년 리영희 선생의 ‘대화’. 이건 선생님이 인터뷰를 하신 거고. 저도 이 책을 대학교 때 재밌게 봤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고, 진지하게 봤습니다. 그때 2005년도에 제가 어려가지고. 지금 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런데.
◆ 임헌영> 다시 보십시오. 제가 책을 한 권 보내드리겠습니다.
◆ 임헌영> 그 당시에는 읽어야지만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혜민> 어쨌거나 그 책 많이 팔렸습니다.
◆ 임헌영> 그럼요, 유명한 책이었죠. 그만큼 리영희 선생님의 생각과 사상을, 우리 선생님께서 대화를 통해 잘 전달하셨는데 이번에는 반대 입장이셨어요. 어떠셨어요, 내 인생을 누구한테 얘기하고 우리 유성호 선생님이 그걸 정리했는데.
◇ 김혜민> 아, 그 리영희 선생님 할 때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몇 년 뒤에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꿈을 사실 저도 가졌었어요. 야망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이번에 해보니까 너무 부끄러워요. 한 일도 없고 돈도 못 모았고 관리도 못 해봤고. 너무 부끄러운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이, 그래. 다 털어놓자. 죽기 전에. 좀 시원한 면도 있고. 또 치부를 드러내야 할 것 같아서. 리영희 선생님과 할 때는 개인적인 사정은 안 물었거든요. 연애를 어떻게 했느냐, 뭐 사랑은 눈을 어떻게. 그런 거 안 물었는데 이번에 이제 문학이라 하니까 그런 문제까지 다 나왔어요.
◇ 김혜민> 연애 얘기가 있던가요? 사모님 얘기밖에 저는 못 봤는데.
◆ 임헌영> 연애 얘기는 없는데 성에 눈 뜨는 건 있죠. 그런 걸 집에서 빼자고 그런 권유도 받았는데, 저는 그냥 넣어버렸어요.
◇ 김혜민> 아, 집에서 그걸 또 빼자고 하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 임헌영> 아, 그런데 그게 좀 뭐라 그럴까요. 그런 거 넣을 필요 있느냐. 공적인 얘기만 하지, 하는 걸. 제가 청소년기 때 성에 눈 뜰 무렵의 변화 과정. 신체에 변화가 생기는 걸 그냥 넣어버렸습니다. 그 뒤의 것은 차마 못 넣겠고.
◇ 김혜민> 아, 제가 그 부분만 다시 찾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을 집필한 유성호 교수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수난당한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권력의 문제를 진보적 시각을 가진 증언으로 풀어낸 최근에 나온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이랬거든요. 선생님은 이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임헌영> 저는 뭐 제 얘기라서, 제가 긍정하면 너무 자화자찬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책이 없었던 것은 사실 같아요. 제가 하면서 주안점을 뒀던 것이 이게 이제 저의 회상이 아니라 오늘 한국, 지금 당장의 한국. 지금 젊은이들이 처하고 있는 지금 한국 문제가 왜 이렇게까지 왔느냐. 왜 아직도 이렇게밖에 못 사느냐. 왜 행복하게 못 사느냐. 평화롭게 못 사느냐. 왜 함께 복지를 못 이루느냐. 그 문제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진보 세력들이 그 동안에 잘 해왔다, 는 자랑도 있지만 진보 세력 자체에서 공유 책임이 있다. 왜 이렇게밖에 못 했느냐, 는 반성도 되는 게 바로 이 책이기 때문에, 유성호 교수님의 그 공약은 좀 제 값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김혜민> 사실 대표적인 진보 인사라고 우리 평론가님을 꼽을 수 있고요. 지금 제가 소개를 하면서 70년대 있었던 일. 문인 간첩단 사건. 그리고 남민전 사건. 이건 되게 오래된 일 같지만 사실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이름을 올리셨고. 지금 우리가 몇 년 안된 사건에도 선생님이 현대사를 살아내신 경험이 담겨있습니다.
◆ 임헌영> 그러니까 이게 지금도 끝난 게 아니고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아직 모르죠. 따라서는 또 그걸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아니냐, 라는 뜻에서 바로 현재죠.
◇ 김혜민> 지금 6635님이 약력도 출중하신데 너무 겸손하시네요. 선생님. 이렇게 문자를 주셨어요.
◆ 임헌영> 아이고, 그런 건 아니고. 바른 말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 김혜민>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책임이 더 클 것 같아요. 선생님.
◆ 임헌영> 참, 그 대신에 행복해요.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말해버리니까. 저건 어떤 인간이다, 이렇게 미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 책이라면 아예 안 보는 사람도 많아요. 제 강연이라면 아예 안 오는 사람도 많아요. 그 대신에 또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 김혜민> 선생님이 지금 여든이신 거죠. 그런데 음성으로 들으시면 여러분 전혀 느껴지지 않으실 거예요. 음성은 날카로우신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눈빛은 소년 같으세요. 원래 이렇게 유순한 눈빛 아니셨죠, 선생님? 변하신 거죠?
◆ 임헌영> 그 전에는 눈빛이 훨씬 더 빛났다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시력이 좀 약해져서.
◇ 김혜민> 저는 여전히 빛나시는데, 보통 리영희 선생님, 그밖에 등등 우리 사회의 정말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나 선생님들 눈빛을 보면 사실 매섭거든요.
◆ 임헌영> 그래요. 안 그런데. 아주 사람이 유합니다.
◇ 김혜민>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나는 문학으로 성찰하고, 역사를 문학으로 조명한다, 하셨는데 역사와 문학을 일체화시켜 현대사를 반성해 보고자 했다. 이 책의 의도를 말씀하셨어요. 원래 역사와 문학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 임헌영> 그렇죠. 거기다가 더군다나 지금 통섭적 학문 이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로는 통섭적 학문을 하겠다고 학자들이 선언한지가 오래인데, 실질적인 성과는 없어요. 저는 이 책에서 역사뿐이 아니고 국제정치, 한국정치, 한국 경제는 잘 몰라요. 한국 사회. 종교. 교육. 이런 전 문제를 그냥 문학에 다루는 대로 다 해보자. 이게 바로 제 욕심입니다.
◇ 김혜민> 그 욕심이 또 삶의 동력이 되시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이 책은 당연히 문학평론가시니까 문학사가 잘 담겨 있는데, 책을 보면서 한국 문학의 반세기를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룬 문학작품들이 참 많았죠. 선생님. 대표적인 게 뭐가 있었을까요.
◆ 임헌영> 대표적인 것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비롯한 삼부작이죠. 그 삼부작은 20세기 전 세계 문단에도 없어요.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제가 모든 나라 것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통상 세계 문학사에 알려진 것으로 보면 없습니다. 그만큼 위대한 작품이거든요? 그럼 그거 하나뿐이냐. 거기에 도전한, 조정래의 삼부작에 도전하는 엄청난 소설가들이. 그게 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가들입니다. 다 대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주제 아닙니까? 소재와. 그렇기 때문에 아, 문학이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봤느냐를 걸 참. 어떻게 보면 자부심을 가져요. 저도 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 김혜민>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나 이런 예술, 대중예술이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가 어려운 문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거잖아요. 선생님. 그러니까 저도 아주 어렸을 때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 봤었던 기억이 나고, 그 책도 기억이 나고요. 태백산맥도 물론 읽어보기도 했지만 토지도 그렇고요. 그런 책들을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역사만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임헌영> 그렇죠. 인생 자체. 결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세상 아닙니까? 그 단위가 민족이고. 그걸 하는 것이 정치고 국가인데 결국 그걸 다루는 게 문학밖에 없어요. 전체 다 다루는 것은. 정치는 정치 행위만 다루고 돈은 돈만 다루고. 뭐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종교는 죽은 뒤에 영혼만 천당 보내면 되는 게 종교고. 현실적으로 관여하는 건 종교 근무 과잉입니다. 너무 과잉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학은 다 다루거든요. 죽은 뒤까지도 다 다루는 게 문학입니다.
◇ 김혜민> 이승과 저승을 다 다루는 게 문학이네요.
◆ 임헌영> 유일하게 문학이에요. 예. 그러니까 참 뿌듯한 직업이죠.
◇ 김혜민> 선생님 예전에 평론집 라는 책도 있지만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현대사를 담은 문학 작품은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 임헌영> 저는 그 이병주, 조정래, 박경리. 세 사람을 가장 중요한 현대 우리 문학인으로 꼽겠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지금 유튜브 보이는 라디오 창에 임헌영 교수님. 반갑습니다. 오래전에 배웠는데 여전하십니다. 유타에서 안부 조언해 드립니다. 반가우시겠어요. 선생님.
◆ 임헌영> 반갑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김혜민> 그러게요. 여기는 보이는 라디오에는 그냥 이렇게 필명이 있어서 나중에 성함 알려드리면 제가 임 교수님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임헌영> 네. 고맙습니다.
◇ 김혜민> 우리나라에 어떤 분야의 좌우 이념 논쟁이 없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종교도 좌우 이념 논쟁이 있는데. 그런데 특히 문단처럼 이념 논쟁이 치열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뭘까요.
◆ 임헌영> 이제 문학이 그만큼 여러 부분을 다루니까 그래요. 정치부터 다 다루고, 예를 들면 사회주의 국가들이 분해될 때. 이제 좋은 말을 하자면 멸망했다고 그럴까. 분해될 때 또 문학이 제일 앞섰습니다. 문학은 이미 예고를 했어요. 이미 예고를 했고. 거꾸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문학이 제일 앞섰어요. 그렇듯이 우리 오늘 사회가 어떻게 되느냐. 결국은 오늘은 문학인이 우리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저의 문학관입니다
◇ 김혜민> 이 책에도 여러 문단을 둘러싼 이념 논쟁. 그리고 대립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제가 좀 읽어보면요. 한국전쟁 이후 문단 풍토는 학연, 지연, 세대 별로 나뉘어 왔기 때문에. 조연현,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등 구세대를 향한 이어령, 유종호, 이철범
등 전후 비평가들의 태도는 다분히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이때는 구세대를.
◆ 임헌영> 그렇죠. 그야말로 우상화 파괴 평론가 제 1인자였습니다.
◇ 김혜민> 그런데 이런 관례를 벗어나 이념적 대립 구도로 변모시키는 계기를 만든 것이 김수영과 신동엽입니다. 제국주의의 문화침탈 의지를 눈치 챘기 때문에 결벽증 심한 김수영의 만년은 참여문학 논쟁으로 속을 앓았는데, 그 발단이 바로 문화자유회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 임헌영> 네. 이게 이제 우리나라 참여 문화 논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순수 문학을, 그 논쟁 보면 다 아는 얘기인데. 우리나라의 참여 논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미국 CIA의 네가 만든 문화자유회의에서 아주 표도 안 나게 전인 흔적 없는. 그야말로 완전 범죄 형식으로 만드는 작용을 일어났다는 걸 알고는 참. 저도 그게 얼마나 이 정치 현실이 무서운가. 제국주의라는 게 얼마나 군사 문제 뿐 아니고 문화 문제까지도 이렇게 하느냐는 데서 참 겁이 났어요.
◇ 김혜민> 네. 저도 CIA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김수영, 신동엽,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뭐 우리가 다 한 번쯤 들어본 문인들이고요. 이 책에서 당시 선생님과 궤를 같이 했지만 지금은 다른 진영에 있는 문학인 지식인들의 이름을 봤어요. 제가 굳이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여든이 된 선생님께서는 이런 분들에 대해서 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가 궁금해요.
◆ 임헌영>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이제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될 사람 몇몇 사람 빼놓고는 되도록이면 비판을 안 했어요. 그리고 저와 생각을 달리해서 다른 길을 갔던 분들에 대해서도 전혀 비판 안 하고 좋았을 때만 쓴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저는 인간적인 유대감과 친밀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 김혜민> 선생님. 그렇잖아요. 역사라는 것. 또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 한 부분만 떼서 평가한다는 게 사실 굉장히 위험하기도 하고. 또 편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물론 지금의 평가를 그들이 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선생님 말처럼 그 사람들의 전 인생을 좀 아시니까 아무래도 비판보다는 그냥 침묵을 택하신 게 아닐까 그 생각이.
◆ 임헌영> 그러기도 하고. 그래도 그나마 한때는 우리와 생각이 같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으로서는 훌륭한 거죠.
◇ 김혜민> 자. 오늘 신상 언박싱. 나는 문학으로 역사를 성찰하고 역사를 문학으로 조명한다. 의 저자 임헌영 문화평론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두 차례 옥고를 치르셨어요. 이 고문당하신 장면을 이제 서술하실 때 힘들지 않으셨어요. 선생님.
◆ 임헌영> 힘들었죠. 그게 뭐 하도 힘들었기 때문에 제가 옥중기를 여러 번 썼는데 쓸 때마다 달라집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첫 번째 옥고를 치르셨던 사건이 문인간첩단 사건이고. 이때 얼마나 계셨어요.
◆ 임헌영> 그때는 빨리 나왔어요. 가짜 간첩 조작 사건이었기 때문에. 간첩 조작이라는 게 밝혀진 거죠. 우리에 의해서.
◇ 김혜민> 두 번째 사건 때는 꽤 오래 있으셨죠.
◆ 임헌영> 예. 한 3년 넘게 정도 있었습니다.
◇ 김혜민> 고문 피해자들은 그 고통이 그때로 끝난 게 아니라 전생을 지배하고.
◆ 임헌영> 아 그럼요. 지금도 저는 날씨가 흐리면 이쪽 그때 조인트 까였던 데가 시큼시큼해요. 시큼시큼하면 이제 비가 올라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김혜민>일부러 좀 읽어보겠습니다. 국립서대문 대학의 입학시험은 까다로웠습니다. 일반 죄수와는 달리 온몸을 철저히 조사합니다. 모욕감도 느끼게 홀랑 벗겨서 구멍이란 구멍은 다 들여다보며 거기 뭘 숨기지 않았나, 검사합니다. 플라스틱제밥그릇과 국그릇, 숟가락에다 대나무 젓가락, 수인 번호판을 받고는 감방에 갇힙니다. 찢어진 비닐 창틀로 찬바람이 들이쳤고 이불은 솜뭉치들이 한쪽으로 내몰려 있고 눅눅했어요. 제가 방송이라 굉장히 부드러운 묘사만 제가 지금 한 건데. 국립서대문 대학이 이제 옥고를 말씀하시는 거죠.
◆ 임헌영> 그렇죠. 그런데 이제 더 내가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 비닐 창이 벌쩍 걸었거든요. 그러니까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와요. 찢어져가지고. 근데 원래 일제 때만 해도 그게 유리창이었습니다. 유리창이었는데. 유리창이 깨서 자살한 사건이 생긴 뒤부터는 유리창을 다 없애고 비닐로 바꿔버렸어요.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추위를 전혀 못 막아줍니다.
◇ 김혜민> 그렇네요. 그 신영복 선생님 도 그 옥고의 어려움들이 잘 나와 있지만 사실 겨울보다 이제 신영복 선생님은 겨울보다 여름이 훨씬 잔인하다. 근데 그런 비슷한 말씀은. 선생님도 하셨던.
◆ 임헌영> 예. 똑같습니다.
◇ 김혜민>근데 그 기간 동안에 또 많은 분들을 만나셨어요.
◆ 임헌영> 그런 지옥 같은 데인데도 불구하고 어디 가도 사람은 있다. 이거 참 인생의 위로가 됩니다. 그건 이제 감옥 뿐 아니고 어디 가도 마찬가지 같아요. 그거 참 인간을 천국으로 만드는 거죠.
◇ 김혜민>감옥으로 보낸 것도 인간인데 그 감옥에서 위로를 준 것도 인간. 그게 인생이네요.
◆ 임헌영> 인간입니다. 구원해 주는 것도 인간입니다.
◇ 김혜민> 그렇네요. 선생님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 라는 말에 동의하세요. 선생님.
◆ 임헌영> 구원해요. 대개는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 종교가 제일 세다고 하는데 저는 그리 말합니다. 종교에 못지않게 문학예술도 세다. 사실 우리가 인생만을 바꾼 게. 문학예술 작품을 보고 바꾼 경우가 제일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예술이 인간을 구원해 줍니다.
◇ 김혜민> 80년의 선생님의 삶을 제가 짧은 시간에 다 말할 수가 없어서 조금 시간을 건너뛰어서 지금 몸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그 앞전에 역사문제연구소가 전신입니까. 선생님.
◆ 임헌영> 역사 문제 연구소는 완전히 다른 기관입니다.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만 하면 되고 민족 문제는 민족 문제만.
◇ 김혜민> 그렇군요. 그 역사문제연구소는 비역사학자들이 모여서 만드셨어요.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 임헌영>그때 역사학자들이 돌보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섰죠. 고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나서서 한 역사 문제 연구소. 민족문제 연구소는 그야말로 친일파 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오늘 한국의 모든 비극은 지금 이 시대 때 잉태했고. 8월 이후 우리 모든 이 현실은 친일파 청산 못해서 일어난 거다. 지금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번 대선 쟁점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그 중요한 쟁점을 삼아야 한다고 봐요. 친일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를.
◇ 김혜민> 그런데 선생님. 이제 그 말씀 하셨으니까 이재명 후보가 얼마 전에 친일파 관련 발언을 또 했었죠.
◆ 임헌영>참 고마운 일이죠.
◇ 김혜민> 근데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시지만 또 일각에서는 또냐. 지금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든데. 이 문제 해결해야지 또 과거 얘기냐. 이렇게 지적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 임헌영> 또냐고 하지 말고 왜 못 먹고 사느냐 하는 걸 따져보십시오. 그동안의 정치를 잘못 저지른 것은 다 친일파의 작동이란 말이에요.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부정부패라든가, 비인간적인 현상이라든가, 간첩 조장을 만든 거라든가, 노동자들 탄압하는 거라든가. 모든 비리의 온상이 바로 친일파 청산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게 이제 제 관점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국민적인 다수가, 압도적인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이 과거가 아니다. 이건 200년 뒤라도 청산해야 한다. 이게 국민들 다수입니다
◇ 김혜민>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보다 더한 문제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파 청산은 반드시 시간이 걸려도 해야 한다.
◆ 임헌영> 그걸 이뤄내면 정치도 깨끗해집니다.
◇ 김혜민>현재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신데. 그럼 결국은 물론 선생님 앞으로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 테지만. 이제 여든이시니까. 선생님의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끝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종착점이라고 말을 해도 될까요.
◆ 임헌영> 그렇습니다. 인생도 종착점이고. 앞으로 더는 다른 일 못하겠죠. 저도. 그런데 이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거는 제가 독립운동에 대한 해석이거든요 우리 연구소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들이 독립운동가들입니다. 독립운동가라는 건 뭐냐 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독립운동가라는 개념이 안 써 있어요. 제가 이 책에서 정의한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반제국주의 투쟁입니다 말하자면 일제, 일본을 반대하는 게 아니고. 저도 일본인 친구 많아요. 저도 일본을 좋아하는 것도 많아요. 그러나 그 일본을 반대한 게 아닙니다. 그게 착각하면 안 되는데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했기 때문에 반제국주의 운동이 바로 독립운동의 기본 정신이 됩니다.
◇ 김혜민>일본 내에서도 반제국주의 투쟁하고 있는 그 지식인들도 많이.
◆ 임헌영> 동료죠. 그러면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만 반대하고 다른 나라 제국주의는 찬성해야 되느냐. 그건 독립운동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미국이 제국주의 식으로 한다. 그것도 반대해야죠. 우리가. 어쨌든 우리 민족 자주 찾는 거. 이게 우리 연구소가 지향하는 이념이고, 독립운동가 상훈 평가하는 기준도 반제국주의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그걸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독립운동가입니다.
◇ 김혜민>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한 2시간 3시간은 더 들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데 오늘 시간 때문에 이렇게 하고요. 그래도 선생님. 시간은 다 됐지만. 짧게 이 책을 좀 젊은 세대들이 많이 봤으면 하시는 바람을 말씀하셨어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좀 한 말씀 해 주시겠어요.
◆ 임헌영> 젊은 세대들이 지금 취직이라든가 특권의식의 박탈이라든가. 이런 데 대해서 굉장히 잘 하시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자신이 박탈된 가장 큰 원인이 뭔가를 놓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큰 도둑을 놓치고 조그마한 한 도둑의 사례 하나에 붙잡혀서 자기 모든 신념을 바꾸거나 뭐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이러는데 거기에서 벗어나서 큰 눈으로 역사를 봐주길 바라는 뜻에서 제 책을 봐주길 바랍니다.
◇ 김혜민> 오늘 임헌영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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