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두환 '녹화사업' 희생자..."40년 동안 원인도 몰라"

2022.01.29 오전 05:29
[앵커]
전두환 군사 정권은 반독재 운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 사상을 정화하고 이른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 사업'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 모를 죽음도 잇따랐는데,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가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습니다.

신군부는 이 열기를 끊어내기 위해 이른바 '녹화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사복 경찰을 풀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붙잡아 연행한 뒤 '사상 정화'와 '프락치' 포섭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군대에 보낸 겁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밝힌 피해자 수는 1,100여 명.

이 가운데 학생 8명이 부대 안에서 원인도 모르게 희생됐습니다.

성균관대 81학번으로 21살의 나이에 반독재 시위에 나섰다가 강제 징집된 고 이윤성 씨도 이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 씨는 2대 독자로 군 면제 대상이었지만 육군 5사단으로 끌려갔고, 제대를 불과 일주일 정도 앞두고 군 보안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은 이 씨가 불온서적을 군 내부로 들여와 월북을 기도하다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앞으로 받게 될 처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박정관 / 고 이윤성 씨 매형 : 자해 도구 빼앗고 유치장에 넣는 게 제일 기본인데 어떻게 자살이 가능하냐 하는 식으로 제가 추궁을 들어가니깐, 맨 앞에 있던 장교가 일어나더니 "이 빨갱이 XX들" 하고….]

하지만 이 씨와 함께 군으로 끌려 들어갔던 '녹화 사업' 피해자 이용성 씨의 증언은 다릅니다.

군 보안사로 끌려가 친구들의 운동권 활동 정보를 수집하라는 이른바 '프락치' 포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첫 번째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우리는 다 전방에 있었거든요. 너는 여기서 죽어도 GP에 던지면 지뢰 사, 사고사로 할 수 있다. 그때부터 공포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강압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이용성 / '녹화 사업' 피해자 : (어머니가) 단 하루도 안 빼고 우리 중대장한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이셨는데 취지는 우리 아들 죽이지 말라는 거에요. 매일 매일 쓰셨대요.]

이후에도 군 보안사의 프락치 포섭 활동은 '선도 사업'이란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가 카투사로 입대한 서울대 경영학과 83학번 김용권 씨 역시 지난 1987년 의정부 미군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정신 질환을 앓던 김 씨가 2층 침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노력으로 보안사에서 구타와 가혹 행위가 있었던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박명선 / 고 김용권 씨 어머니 : 결정문이라 하면서 (아들이) 보안대에 들락날락하고 우리가 프락치로 써먹고 했다는…. 그럼 써먹었으면 써먹은 담당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보안대에.]

지난달, 고 이윤성 씨의 죽음과 관련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억울한 죽음이 있은 지 무려 40년 만입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반대로 국가기관의 진상 규명 작업은 더딘 게 현실입니다.

YTN 김대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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