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한민국 최초 금메달, '월남전 상이영웅' 송신남을 아시나요... 부상이 영예인 사람들

2024.09.30 오후 02:44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9월 30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유을상 회장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의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 안에 수많은 희생과 역경을 이겨낸 용사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제 76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한국군 용사들이 남침한 북한 공산군을 반격한 끝에 38선을 돌파했던 1950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건데요. 내일 국군의 날을 기념해서 오늘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스틸러브에서는요. 전쟁 중에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나라를 지켰다는 자긍심으로 신체적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도 애국에 앞장서고 있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와 함께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유을상 회장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유을상 회장님(이하 유을상): 안녕하세요. 상이군경회 유을상입니다.

◆박귀빈: 예 회장님 어서 오시고요. 우리 청취자분들에게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어떤 곳인지 좀 간략히 소개 좀 해주시고, 함께 우리 회장님 자기소개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을상: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6.25한국전쟁 중인 1951년 5월 15일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대한상이군인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여 올해 창립 73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현재 인원은 9만여명의 회원이 등록되어있으며 여의도에 있는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17개 시·도지부, 242개 지회가 있습니다. 회원이 상부상조하여 자활능력을 기르고 국가수호 유공자 단체로서 조국통일 달성 등 국가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총상과 지뢰등으로 팔 다리가 잘려나가 신체적으로 장애를 입거나 현역 군인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으로 복무중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수호 최일선에서 영예로운 부상을 입고 국가보훈부 상이등급 인정을 받은 국가유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도 1969년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 중 왼쪽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인원보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박귀빈: 네 73년 됐습니다. 창립 올해로 73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소개를 쭉 해 주셨고 우리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의 유을상 회장님이십니다. 지금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이 아마 이 단체에 대해서 잘 모르실 거기 때문에 먼저 회장님 저희가 인터뷰 관련해서 OX 퀴즈를 짧게 준비를 했거든요. 그거 하고 나서 좀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로 이어가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1번.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유공자 단체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의다.

◇유을상: 네 맞습니다.

◆박귀빈: 2번.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안에는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 용사. 즉, 군인들만 가입할 수 있다.

◇유을상: 아닙니다

◆박귀빈: 3번. 우리나라 올림픽 패럴림픽 통틀어서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회원이다.

◇유을상: 네 맞습니다.

◆박귀빈: 4번 세계 상이군인의 날과 우리나라 상이군경의 날이 지정되어 있다?

◇유을상: 아닙니다.

◆박귀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공자 단체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군요. 회장님

◇유을상: 네 맞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상이군경회는 정부로부터 최초로 인정받은 국가유공자 단체입니다. 1951년 시작하여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이승만 대통령을 총재로 하여 대한상이용사회로 개편이 되었습니다. 이후 1963년에는 법률에 따라 대한상이군경회로 등록이 됐고 1989년에 현재 이름인 대한민국 상이군경회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박귀빈: 그렇군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최초로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국가유공자 단체고요. 1대 총재가 이승만 대통령이시군요

◇유을상: 네 네 맞습니다.

◆박귀빈: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뭐였냐면요.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 용사 즉, 군인들만 가입할 수 있었다라고 질문드렸더니 x라고 하셨어요 그럼 어떤 분들이 가입하실 수 있나요?

◇유을상: 전투나 공무 중에 몸을 다친 경찰, 소방공무원 모두 가입이 가능합니다.

◆박귀빈: 전투나 공무 중에 다치신 경찰, 소방공무원 군인 모두 가입이 가능하군요.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나라 올림픽 패럴림픽 통틀어서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소속이신 분이었어요.

◇유을상: 19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서 송신남 선수가 탁구 휠체어 부문에서 한국 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금메달은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받은 금메달보다 4년 앞선 것으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틀어 한국의 첫 금메달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귀빈: 그렇군요. 올림픽 패럴림픽 통틀어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첫 금메달 나온 것이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회원이셨던 송신남 선수가 탔던 거였군요. 탁구 휠체어 부문에서. 그리고 네 번째 질문은요. 세계 상이군인의 날 또 우리나라 상이군경의 날이 지정되어 있는지를 여쭤봤는데 지정이 안 되어 있나요? 설명 좀 간략히 해 주시겠어요?

◇유을상: 세계적으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많은 상이군인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엔 국제기구인 WVF에서 6월 21일을 세계상이군인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훈련에 매진하는 젊은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들이 부상을 입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들을 위한 기념일이 아직 없습니다.

◆박귀빈: 그러니까 세계 상이군인의 날은 제정이 돼 있습니다. 2월 21일로.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이군경의 날이 지정돼 있지 않군요.

◇유을상: 네 아직 안 돼 있습니다.

◆박귀빈: 그러네요. 이것도 좀 우리가 알아둬야 될 내용이군요. 이렇게 해서 상이군경회에 대한 상식을 OX로 먼저 풀어봤고 제가 여쭤봤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회장님께 궁금한 것들을 여쭤볼게요. 앞서 올림픽, 패럴림픽 통틀어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던 분이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회원이었던 송신남 선수라고 말씀을 들었는데요. 얼마 전에 조정두 사격 국가대표 선수가 이번에 파리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땄잖아요. 후배들의 이렇게 활약 보시면서 어떠세요?

◇유을상: 정말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 역사는 우리 상이공경들이 재활체육 활동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말씀하신 패럴림픽에서 첫 메달뿐이 아니라 지금까지 100여 개 가까운 메달을 획득하며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 발전과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파리 패럴림픽에서 4명의 젊은 회원들이 참가했는데 모두 우리 재활체육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되고 성장해왔기에 회장으로서 그 성과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박귀빈: 회장님께서 응원 가셨잖아요. 현지에 그래서 더 성과가 좋았던 거 같아요. 가서 선수들 직접 보셨어 뭐라고 해주셨어요?

◇유을상: 너희들이 열심히 하면 그 본인 자신의 국가의 명예고 본인 자신의 영광이다.열심히 해라 이렇게 힘을 줬습니다.

◆박귀빈: 얼마나 큰 힘이 되셨을까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회장님께서 직접 가셔서 선수들 응원해 주고 이렇게 격려의 말씀해 주시니까 그래서 더 이번에 좋은 성과 낸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희 청취자분들이 방송 들으시면서 이렇게 의견 주시거든요. 청취자 한분께서 짧고 굵게 한마디 하셨네요.‘대단하십니다. 회장님.’

◇유을상: 네 고맙습니다.

◆박귀빈: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여러분 보내주세요. 제가 중간중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유을상 회장님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었다고 아까 말씀을 하셨고 그때 다리를 다치신 거잖아요. 어떻게 그때 상황 짧게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유을상: 많이 불편했었죠. 한쪽 다리 잃고 나서 일상생활이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오십여 년 동안 재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일도 혼자 하기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어요. 가족과 동료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죠.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열심히 하고 잘 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당시 회장님께서 월남전 참전하셨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되셨어요?

◇유을상: 20살이었습니다.

◆박귀빈: 20살 때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어떤 전투였는지 기억나시나요?

◇유을상: 네. 호이안 전투에 있었습니다.

◆박귀빈: 당시에 한쪽 다리를 잃으셨는데 당시 심정이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유을상: 그때 나이가 스무살이었고요. 호이안 작전 중에 지뢰가 터졌을 때 이젠 정말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순간 부모님과 형제들의 얼굴이 필름같이 지나갔어요. 가족들과 소중한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공포와 절망은 말로 할 수 없었지만 순간에도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며 힘을 냈습니다.

◆박귀빈: 이렇게 대한민국 상이군경회는 그러면 부상 정도가 회장님처럼 이렇게 좀 심하게 다친 분들만 소속되어 있는 건가요? 어떤가요? 보통 부상 정도에 따라서 좀 급수가 있는 걸로 알고있는데요.

◇유을상: 1급부터 7급까지 있어요. 이제 1급 양반들은 중상이자 휠체어를 타고 평생을 보내야 할 양반이고 그리고 이제 7급 양반들은 힘든 일은 못하고 단순 일만 할 수 있는 양반들이 7급 회원이고 그렇습니다.

◆박귀빈: 그럼 회장님은 몇 급의 부상이신가요?

◇유을상: 저는 4급입니다.

◆박귀빈: 4급도 부상 정도가 꽤 심한 부상으로 생각이 되는데 아무래도 일상으로 돌아오셨을 때 굉장히 힘든 점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유을상: 요새는 의족들이 좋으니까 재활을 열심히해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박귀빈: 사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아까 50여 년을 재활을 했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면서 사실은 재활만 하신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앞서 말했지만 최초의 국가유공자 단체로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곳이고 그러니까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국가유공자 단체인 거예요. 여기 소속되시고 나서 가장 혹시 좋았던 점있으세요?

◇유을상: 단체를 맡아서 일하면서 정말 많이 보람되는 일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상이공들이 병원 진료를 받을 때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보훈병원으로 한정이 돼 있어 진로 받기가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위탁병원을 확대하고자 정부에 계속 건의를 했죠. 이제는 집 주변 병원에 편리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많은 회원분들이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된 걸 정말 생각하면 아주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박귀빈: 상이군경회에서 관련된 부상 당한 우리 소속 회원들을 위해서도 이런 활동도 하시고 사실 이것 말고도 많은 사회 활동도 하시잖아요. 어떤 활동들 하고 계시죠?

◇유을상: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유공자 단체로서 보훈정책을 선도적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우리회가 하고 있는 중점 활동사항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중상이자 회원들을 위한 재활체육 지원 및 상이군경 체육대회와 인빅터스게임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제교류업무가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회원들과 가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한 문화예술교육 등이 있습니다.

◆박귀빈: 예전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요. 원호제도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이 제도가 상이군경들 재활 치료해주고 자립 활동 지원해주고 이런 제도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도 관련 제도 시행되고 있나요?

◇유을상: 네 있습니다. 지금은 더 잘 돼 있어요. 1961년에 지금의 보훈부의 전신인 군사원호청이 창설됐습니다. 그때부터 상이공군들에게 급수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고 자립을 돕기 위해 취업 지원, 교육보호 그리고 병원을 세워 의료지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가적인 연락해서 지원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커지면서 국민생활도 많이 좋아졌죠. 그 덕분에 국가보훈제도도 많이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되면서 권한과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앞으로 보훈 정책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네 청취자분께서요 패럴림픽 회장님 응원 덕분에 좋은 성과가 있었어요라고 사연 의견 보내주셨고요. 다른 청취자분께서도 응원합니다. 회장님 이렇게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애인 체육 관련해서도 상이군경회에서 역할이 굉장히 크셨던 걸로 알고있는데 어떤가요?

◇유을상: 당시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체육이 불모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회는 1960년대부터 중상이 국가유공상이자들의 자활과 자립을 위해 재활체육을 적극 장려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장애인체육 선진국으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회는 중상이 국가유공자들의 재활을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재활체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이군경체육대회 개최와 국제척수장애인체육대회 참가, 재활체육 저변확대 지원과 상이군경체육회 운영 등이 그 예입니다.

◆박귀빈: 그리고 앞서 잠깐 말씀하셨는데 1967년부터 전국 상이군경 체육대회 매년 열리고 있고요. 국제적으로는 인빅터스게임이라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2년마다 열리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개최 지금 추진 중인가 봐요?

◇유을상: 67년부터 시작된 전국상이군경체육대회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우리 회원들과 함께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종합 체육대회입니다. 이 대회를 통해 전국의 9만명의 국가유공상이자들이 친목과 화합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상이자들이 보다 건강하고 명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빅터스게임의 영국의 해리 왕자가 2014년에 창설한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로 전세계 상이군인들이 화합과 재활을 목표로 2년마다 개최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23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2029년에 이 대회 참가국으로 확정이 돼 있습니다.

◆박귀빈: 네 그렇습니다. 인빅터스 게임 우리나라에서 2029년 국내 개최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신다는 말씀이고요. 시간이 훌쩍 가서요. 회장님 끝으로 이거 하나 여쭤볼게요.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전상자들 한국에 초청하신다고요? 그분들 만나시면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유을상: 네 우리회에서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 UN군 전상자 초청 현지 위로 행사와 베트남 평화의 마을 의료봉사를 통해 민간외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9년도까지 한국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하여 전상을 입고 귀국한 각국의 전상자와 보호자를 매년 한국으로 초청하여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이억만리 타국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박귀빈: 예 알겠습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여러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장님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끝 인사 말씀 들으셨죠? 시작하겠습니다. 스틸러브

◇유을상: 대한민국

◆박귀빈: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6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였습니다.유을상 회장님 함께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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