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는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포악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바다 최강의 포식자입니다. 범고래의 영문명 '킬러 웨일(killer whale)'에서 알 수 있듯이, 범고래는 어떠한 생물도 거침없이 사냥하며 심지어 마치 인간처럼 조직을 이루어 동족끼리도 다투는 사나운 종입니다.
범고래의 먹이는 주로 오징어나 갑오징어, 연어 등의 작은 어류입니다. 하지만 범고래는 잡식성으로 종종 상어나 펠리컨, 갈매기, 펭귄, 물개 등을 잡아먹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심지어 범고래는 기회가 되면 사슴, 무스 등 육상 동물을 사냥해 잡아먹기도 하며 단순히 재미를 위해 물개를 잡아 죽이기도 하는 잔혹한 면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범고래가 인간을 사냥한 사례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기이하게도 범고래는 1:1 싸움으로는 전혀 상대가 안 되는 무력한 인간에 대해 오히려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역사 이래로, 아무리 굶주린 범고래라고 해도 인간을 먹이 대상으로 인식했던 경우는 보고된 적이 없었습니다. 범고래가 인간에게 공격성을 가졌던 사례는 갇혀서 사육을 당하는 범고래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우뿐이었습니다.
(▲상어로부터 사람을 구한 범고래 영상)
지난 1986년, 범고래 20여 마리가 한 미국인이 탄 배를 습격해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범고래들은 표류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가버렸고 결국 남성은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이 외에도 앞선 사례와 흡사하게 범고래가 인간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도와준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야생 범고래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규범을 가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가설이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범고래가 높은 지능으로 인해 나름의 문화와 규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범고래가 인간을 '먹잇감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자손에게 대대로 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능이 매우 높은 범고래가 자신들이 나름의 언어와 문화, 감정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도 자신들처럼 지능을 가진 고등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범고래가 인간에게 대량으로 학살당했던 과거의 기억을 자손 대대로 전하며 인간은 건드려서 안 되는 존재라고 주입한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문화권마다 다른 사상을 공유하는 현실에서 전 세계의 범고래가 동시에 같은 규범을 가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범고래와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 위 생물체 가운데 단지 인간만이 지능과 규범, 문화를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오만은 반드시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고래와 인간 사이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범고래와 인간의 기묘한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미지의 영역입니다.
YTN PLUS 정윤주 모바일 PD
(younju@ytnplus.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