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제이 켈리> 포스터
세계적인 영화 배우, ‘제이 켈리’(조지 클루니)는 막 영화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작품의 크랭크인이 예정되어 있다. 며칠 쉬는 동안 대학 진학을 앞둔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딸은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간단다. 섭섭해 할 사이도 없이 오랫동안 멘토와 멘티처럼 지내왔던 원로 감독의 부고가 들려오고, 제이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수십 년 전 연기를 함께 배웠던 ‘티모시’(빌리 크루덥)를 만난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와 술 한 잔을 기울이는데, 헤어질 때쯤 티모시는 별안간 그에게 주먹질을 해댄다. 자기의 인생과 여자친구를 훔쳤다면서. 꽤 충격을 받은 제이는 핑계를 만들어 유럽으로 간다. 처음에는 매니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동행하지만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결국 제이는 혼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게 된다.
▲ 영화 <제이 켈리> 스틸컷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인생을 반추하는 영화는 차고 넘친다. 그의 직업이 배우라면 레드 카펫이 깔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뿐이다. 그러나 노아 바움백이 만들면 다르다. 더 다층적이고 더 진솔하고 더 감동적이다. 이미 ‘프란시스 하’(2013), ‘마이어로위츠 이야기’(2017), ‘결혼이야기’(2019) 등을 통해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다뤄왔던 그는 이번에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직군을 파고든다. 전작들 만큼이나 ‘제이 켈리’ 또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신랄하고,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유머가 살아있다. 극중 대사에 나오듯 제이가 마법사가 아니라 그저 유명해진 배우일 뿐인 것처럼 노아 바움백 또한 유명해진 감독일 뿐이겠지만, 그 유명세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관객들은 영화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제이 켈리가 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네 인생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영화 <제이 켈리> 스틸컷
일종의 자아성찰형 로드무비로서 ‘제이 켈리’는 잉마르 베리만의 걸작, ‘산딸기’(1957)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산딸기’에서는 먼 곳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된 원로 교수가 이동중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데, 제이도 공로상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유럽으로 간다. ‘산딸기’의 노교수가 어머니를 방문하는 시퀀스는 제이가 딸을 방문하는 시퀀스로 변주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산딸기’가 70대 후반의 교수를 앞세워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테마를 따라갔다면, ‘제이 켈리’는 이제 노년으로 접어든 한 배우의 인생점검 타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이의 상황이 절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으며, 두 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이가 딸들과 대화를 시도할수록 그들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져버린다. 연로한 아버지는 제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먼 길을 날아오지만, 자신이 아들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그를 떠나 버린다. 시상식에 혼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제이는 공항으로 떠나려는 매니저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간절히 매달린다. 바로 전날, ‘너는 내 수익의 15퍼센트를 가져가는 친구야’ 라며 모욕한 것을 사과하면서.
▲ 영화 <제이 켈리> 스틸컷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스타가 단 한 명의 동행을 찾으러 뛰어다니는 모습은 씁쓸하고 애잔하다. 만약 인생의 성패가 불특정 다수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영감을 주었는가로 결정된다면 제이는 성공한 사람이겠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가졌는가가 기준이라면 제이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한 인생이다. 시상식장에서 제이는 많은 관객들과 함께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들의 명장면을 감상한다. 배우로서의 인생이 그렇게 눈 앞의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난 후, 제이는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한 번 더 가도 될까요’,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이는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마지막 테이크가 끝나자 그가 감독에게 했던 말과 동일하다. 영화라면 그것은 가능한 옵션이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은 아무리 떼를 쓰고 몸부림을 치고 비명을 질러도 무조건 오케이 컷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토록 명확하게 제시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 영화 <제이 켈리>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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