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반나절] 테이프·끈 사라진 대형마트 자율 포장대 모습

2020.02.01 오전 08:00

※ YTN PLUS가 기획한 '반나절' 시리즈는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획 기사입니다. 반나절 시리즈 13회는 서울 시내 대형 마트의 변화한 자율 포장대 풍경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대형마트 자율 포장대에서 포장용 테이프와 끈 제공이 중단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와 농협 하나로유통 등이 환경부와 자율 협약을 맺고 테이프와 노끈을 없애기로 했다.

환경부는 대형마트 3사 기준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이 658톤이고, 그 면적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9,126㎡) 857개에 달할 만큼 버려지는 폐기물이 많아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을 장려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종이상자를 없앤다고 발표했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우선 테이프와 끈만 없애기로 했고, 환경부는 시범 사업 후 종이상자도 없앨지 최종 판단을 한다고 밝혔다.

제도 시행 후 첫 명절이었던 설을 앞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용산구, 마포구에 위치한 대형마트 3사 매장을 각각 찾아 변화한 자율 포장대 모습을 관찰해봤다.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3사 모두 자율 포장대 모습은 비슷했다. 널찍한 자율 포장대 위는 테이프와 끈 없이 깨끗했다. 주변에는 종이상자들과 함께 플라스틱 줄이기에 동참해 달라는 안내문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종이박스 이용 시에는 무거운 상품을 담지 말고 하단부를 받쳐서 들어달라는 주의 사항도 덧붙었다.

마트들은 종이상자 대신 다회용으로 쓸 수 있는 장바구니를 판매하거나 빌려주기도 했다. 롯데마트는 소형·대형 장바구니를 각각 500원, 3,000원에 판매했고, 이마트도 같은 가격에 대여했다. 홈플러스도 보증금 4,000원을 내면 20kg 무게까지 담을 수 있는 대형 장바구니를 빌려준다.

특히 이날은 차례상 장을 볼러 그런지 많은 소비자가 미리 장바구니를 준비해 온 모습이었다. 다회용 장바구니를 3~4개씩 가져온 이들도 보였다.

장바구니가 아니더라도 갖고 있던 쇼핑백이나 백팩,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정리해 담기 위해 자율 포장대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장바구니 공간이 부족할 때 종이상자 밑부분을 접어 물건을 담아 넣었다. 기존에 포장대가 종이상자에 물건들을 넣어 포장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지금은 물건을 좀 더 효율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정리하는 곳처럼 변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소비자는 포장 부피를 줄이기 위해 계산한 인스턴트 커피 상자에서 내용물만 빼내어 장바구니에 담았고, 또 다른 이는 구매한 반찬통을 개봉해 작은 물건들을 넣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종이상자에 물건을 담다가 결국 장바구니에 옮겨 담는 소비자도 있었다. 이 소비자는 "좀 불편하긴 한데 사실 테이프가 낭비되는 게 많긴 한 것 같다"라며 "원래 장바구니를 들고 오긴 하지만 설날이라 물건을 많이 사서 상자를 이용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테이프로 고정하지 않고 혼자 들고 가기엔 약간 불안해서 장바구니에 최대한 넣었다. 다시 잘 정리해서 넣어보니 장바구니에도 다 들어가더라"라고 말했다.
"직접 테이프 사 왔어요"


종이상자에서 장바구니로 짐을 옮겨 담는 손님

구매할 물건이 많아 직접 테이프를 구매해 온 이들도 있었다. 롯데마트에서 만난 한 남성 손님은 종이테이프를 사와서 종이박스에 붙여 고정했다.

이 손님은 "평소에는 장 보고 상자를 잘 쓰진 않는다. 그런데 설이라 물건을 많이 사야 해서 마트 안에 있는 '다이소'에서 테이프를 사 왔다"라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문제라면 종이테이프와 같은 대체품을 미리 마련했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마트에는 박스 포장용 테이프를 직접 가져온 가족 단위 손님도 보였다. 이들은 종이상자 2~3개 분량의 물건을 구매한 뒤 갖고온 테이프로 박스 밑부분을 고정시켰다.

주변에서는 "아이고, 테이프 가져 오셨구나"라는 말이 들려왔다. 마트에서 환경을 위해 테이프를 줄인다고 해도 꼭 필요한 이들은 이렇게 직접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다. 한 노부부는 노끈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테이프가 꼭 필요한 이들은 자율 포장대에 비치된 상자에 붙어 남아있는 테이프 조각을 떼어내 쓰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가져가라는 거야" 원성도



환경부와 마트가 환경을 위한 정책임을 홍보했지만, 이렇게 직접 테이프를 가져오기도 할 만큼 원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테이프 제공이 중단된 사실을 몰랐던 소비자들은 테이프를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어떡하지"라며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내 "상자 접어서 가져가야지 뭐"라며 종이상자 바닥 부분을 딱지 접듯 접어 고정했다.

하지만 박스 포장을 마치고 나서 "어떻게 가져가라는 거야"라고 불편함을 호소하다가 결국 종량제 봉투를 구매해 와 짐을 옮겨 담는 소비자도 있었다. 정책 시행 초반인 만큼 소비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트 측 "혼란 있었지만 자리 잡는 중"



이번 테이프와 끈 제공 중단이라는 변화에 대해서 대형마트들은 대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라는 평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YTN PLUS와의 통화에서 "처음 테이프 제공을 중단하고 2~3일 정도는 현장에 잡음이 있었다"라며 "포스터와 현수막을 붙여 놓긴 했지만, 고객분들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스만 주면 어떡하냐'는 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 보호라는 취지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미 자체 장바구니가 가정에 많이 보급된 편이어서 그런지 소형 장바구니 대여율은 크게 변화가 없지만, 대형 장바구니 대여율은 지난해 대비 소폭 증가했다"라며 "한 달 정도 시행하면서 초반보다 제도 정착이 잘 되어가고 있다. 아직 종이상자 자체를 없앨 계획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소비자들의 불편 속에서 자율 포장대의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다만 각종 소비재 포장에서 나오는 플라스틱과 비닐, 테이프 쓰레기는 여전한 상황이다. 정말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환경부 차원에서 상품 제조·포장 단계부터 쓰레기를 줄이고 있음을 보여줄 때가 아닐까.


YTN PLUS 문지영 기자(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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