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 동면,
흔히 명당이라고 불리는 산자락에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을 관리하는 오래된 한옥이 한 채 있습니다.
강원도 문화재 66호 민성기 가옥입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이 한옥은 보존 가치가 인정돼 지난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맞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오래된 한옥입니다. 강원도는 친절하게 해당 문화재에 대한 안내문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누구의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것인지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민영휘.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워낙 유명한 친일파라 이름만 검색해도 수많은 친일 행적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친일로 얻은 권력으로 현 시가 8천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런 친일파의 무덤이 바로 강원도 춘천에 있습니다.
갑자기 친일파 민영휘에 대한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이 무덤을 관리하는 문화재로 지정된 후손 민성기 가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7년에도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2017년 6월 7일 YTN 방송 리포트 화면
2017년 방송된 기사 전문
['친일파' 민영휘 무덤 관리 가옥이 지방문화재로….]
[앵커]
적폐청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죠.
이 가운데 친일 적폐청산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적인 친일파 무덤을 관리하는 가옥이 지방 문화재로 등록돼 수십 년째 관리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입니다.
[기자]
강원도 문화재 66호로 지정된 춘천의 한 전통 가옥.
조선 후기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문화재가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이라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누구의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대표적인 친일파 민영휘.
국권 침탈에 앞장선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친일로 얻은 권력으로 현 시가 8천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2017년 6월 7일 YTN 방송 리포트 화면
[인터뷰: 문화재 인근 주민]
"모를 수밖에 없죠. 같이 설명을 안 해 놓으니까. 뭔가 밝히기가 좀 껄끄러우니까 못 밝히고 이 가옥 양식에 대해서만 부각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문화재를 등록한 강원도와 관리하는 춘천시도 이런 사실을 모르긴 마찬가지.
[인터뷰: 춘천시 관계자]
"옛날 주택이기 때문에, 당시 (문화재로) 지정할 때 주택에 대한 지정 의미를 담아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덤 주인이 누군지는 아시나요?) 잠시만요…."
친일파와 관련된 물품의 문화재 등록은 이전에도 논란이 됐습니다.
2013년 문화재청이 백선엽 장군의 군복을 문화재로 올리려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친일파의 물품이 민족의 역사적 가치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등록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 인터뷰 화면
[박한용 / 민족문제연구소 : 친일을 통해서 취득한 재산으로 이뤄진 집의 경우에 집의 건축적 가치만 얘기하면 되겠습니까? 매국 행위의 대가성이 이뤄졌던 역사성이 같이 설명될 때 오롯이 하나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죠.]
30년 넘게 문화재로 관리된 가옥.
숨겨진 친일의 역사를 알 수 없는 시민들의 발길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YTN 홍성욱입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2&aid=0001018877)
▶문화재 지정 해지는 불가…친일 관련 기록은?
보도 후 항일운동가 단체가 문화재 지정 해지를 강원도에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소유인 해당 가옥의 문화재 지정 해지는 소유자의 해지 신청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잃거나 훼손되면 해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문화재 지정 해지는 불가능합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자치단체에서 예산과 노력을 들여 유지·보수하기 때문입니다.
민영휘 무덤 관리 가옥인 것과는 별개로 집 자체는 100년 이상 된 한옥입니다. 건축물 가치는 인정됩니다. 그러니 문화재로 지정한 것을 유지하되, 친일 관련 역사도 함께 기록하자는 겁니다. 4년 전 인터뷰에 응해준 민족문제 연구소 박한용 실장도 이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강원도 문화재 66호 민성기 가옥 안내문
하지만 문화재를 설명하는 안내문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누구의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가옥인지 설명은 없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집으로, 방이 몇 칸이고, 집이 어떤 구조인지만 설명했습니다.
그나마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민영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묘막이라고
한 줄 설명은 붙여놨습니다.
▶민성기 가옥 보수 비용으로 사용된 세금 '4억4천만 원'
안내문 수정은 어려운 일일까요?
춘천시에 문의했습니다. 문화재 지정은 강원도 문화재 심의위원회 권한이라 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원도에 문의했습니다. 관리는 춘천시가 하고 있어 춘천시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담당자는 바뀌었는데, 4년 전 처음 기사를 쓰고 취재했을 때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놀랐습니다.
혹시 친일파 무덤 관리가옥에 세금을 들여 안내판을 새로 달아주는 것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화재 지정 이후 민성기 가옥에 들어간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정보공개 청구했습니다.
[민성기 가옥 보수 비용]
1992년 - 40,557,000원 안채와 사랑채(행랑채 부분) 긴급 구제보수
1996년 - 60,600,000원 안채와 사랑채를 연목 이상 해체하고 부식재 교체 등 보수하고 지붕 보수
1999년 - 92,180,000원 안채 기단 및 벽체 미장, 창호 보수, 협문 및 한식 토담, 석축 등 주변 정비
2003년 - 65,960,000원 화장실 개축 및 기존 석축과 토담 보수, 안채의 기단과 마루, 지붕 일부 보수
2013년 - 125,919,580원 안채와 사랑채의 연목 이상을 해체하고 부식재 등 교체 및 지붕 보수
2020년 - 55,482,000원 단면 손실이 발생한 담장 해체보수
적게는 4천만 원, 많게는 1억2천만 원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보수비용으로 세금 4억4천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4억이 넘는 돈을 보수비용으로 사용하면서, 안내판에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을 관리하는 가옥이라는 설명을 추가하는 게 왜 이뤄지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민성기 가옥이 지키는 친일파 민영휘 무덤
사실 이 기사는 3·1절에 방송에 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강원도에는 지난 3·1절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이튿날까지 폭설에 묻혀 취재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8월 광복절까지 기다려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매년 기념일마다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
대부분의 언론사는 시의성을 생각해 해당 기념일에 관련 기사를 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더는 그러지 않을 생각입니다. 친일 적폐 청산에 시의성은 필요치 않습니다. 최소한 해당 문화재가 친일 인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문구가 안내판에 한 줄 추가될 때까지 쓰고 또 쓸 계획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념일 때만 잠시 기억하고 평소엔 잊어버리는 우(愚)는 더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홍성욱[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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