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인류는 마침내 마라톤의 마지막 성역을 무너뜨렸습니다.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42.195km를 1시간 59분 30초에 주파하며 공식 대회 사상 최초로 '서브 2(Sub-2)'를 달성했습니다. 2위 요미프 케젤차(에티오피아)도 1시간 59분 41초로 함께 2시간 벽을 뚫었고, 3위 제이콥 키플리모(우간다)마저 고(故) 켈빈 킵툼이 가졌던 종전 세계기록(2:00:35)을 7초 단축한 2시간 28초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나의 레이스에서 3명이 마라톤의 새 시대를 동시에 연 것입니다. 2019년 빈에서 엘리우드 킵초게가 페이스메이커 41명의 도움을 받아 세웠던 1:59:40.2의 비공인 기록도 마침내 공식 기록으로 갱신되었습니다.
사웨와 케젤차는 똑같은 마라톤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아디다스가 대회 사흘 전 공개한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3'. 한 짝의 무게가 단 97그램, 스마트폰 절반에 불과합니다. 사상 처음으로 100그램 벽을 깬 마라톤화입니다.
기술의 핵심은 미드솔 외곽을 두르는 '에너지림(ENERGYRIM)' 구조입니다. 발 아래 전체를 받치던 종래의 탄소판 대신, 카본 섬유로 된 얇은 테두리만 남겼습니다. 발밑에는 39mm의 푹신한 폼이 그대로 살아 있고, 카본 림이 그 폼을 압축해 스프링처럼 되튕깁니다. 아디다스는 이 구조가 이전 모델 대비 발 앞쪽 에너지 반환을 11%, 러닝 효율을 1.6% 끌어올렸다고 밝혔습니다. 마라톤에서 1.6%는 곧 2분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전쟁의 서막은 9년 전 나이키가 열었습니다. 2017년 '브레이킹 2(Breaking 2)' 프로젝트와 베이퍼플라이의 등장, 그리고 2019년 빈에서 키프초게가 알파플라이 프로토타입으로 비공인 1시간 59분 40초를 찍은 이후, 마라톤의 역사는 '카본화 이전'과 '이후'로 갈렸습니다.
세계육상연맹은 부랴부랴 '밑창 두께 40mm 이하, 탄소 판 1장 이내' 규제를 만들었지만, 기술은 늘 규제보다 한 발 앞섰습니다. 아디다스의 이번 신발은 그 규정 한계선까지 1mm를 남기고 멈춰 섰으며, '판'이라는 단어를 우회해 '림'이라는 새 길을 냈습니다. 사웨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나이키가 SNS 메시지를 통해 반격을 알렸습니다.
"자, 다시 시작이에요. 우리한테 끝이라는 건 없으니까요.(The clock has been reset. There is no finish line.)"
기술 개발 경주가 더는 선수만의 것이 아님을 시사한 셈입니다.
출처: 나이키 SNS
여기서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0년 로마올림픽,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거친 돌바닥 위를 맨발로 달려 우승했습니다. 0그램의 발로 새긴 2시간 15분 16초였습니다. 그로부터 66년, 인류는 97그램의 도구를 빌려 2시간 안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진보의 풍경이지만, 그 결은 사뭇 다릅니다. '슈퍼 슈즈'는 단지 속도만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근육 손상을 줄여 더 많이, 더 길게 훈련하게 만듭니다. 기술은 기록뿐 아니라 훈련의 양상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아베베 비킬라 <사진 출처: 위키디피아>
미국 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 스포츠 생리학자 제프 번스의 진단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번스는 로이터와 인터뷰를 통해 데니스 키메토가 카본화 이전 세웠던 2시간 2분 57초의 종전 세계기록과 사웨의 1시간 59분 30초 사이의 간극 가운데 적어도 2분은 신발이 만들어낸 차이라고 분석합니다. 처음 카본화를 신고 뛰었을 때의 느낌에 대해 번스는 "와, 이건 자전거 타는 느낌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충격이 줄어드니 회복이 빨라지고, 회복이 빨라지니 훈련량도 강도도 함께 올라갑니다. 과거 엘리트 마라토너들의 주당 훈련 거리가 190~210km였다면, 지금은 240~270km를 마라톤 페이스에 가까운 속도로 소화한다는 것이 번스의 설명입니다. 카본 림 한 장이 단순히 결승선의 숫자를 깎아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훈련의 천장 자체를 끌어올린 셈입니다.
문제는 기술의 가격과 수명입니다. 사웨가 신은 신발은 한 켤레 500달러, 우리 돈 70만 원을 웃돕니다. 출시 직후 온라인 매진됐고, 사실상 엘리트 경기 한 번을 위해 설계된 일회성 장비에 가깝습니다. 매 시즌 신형이 쏟아지고, 신형을 신지 못하는 선수는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한 발 뒤처집니다. 발에 신은 신발이 이미 결과의 일부가 되는 시대. 누군가는 이를 '진화'라 부르고, 누군가는 '기술 도핑'이라 부릅니다. 사웨조차 결승선에서 "혁신이 한계를 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인간과 기술의 경계는 이미 흐려져 있습니다.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 비공인 경기에서 2시간 벽을 깨뜨린 킵초게
육상계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더 촘촘한 규제로 기술을 묶을 것인지, 아니면 '카본화 이후의 기록'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떼어 낼 것인지. 후자는 아직 낯선 발상이지만, 전례가 없지 않습니다. 수영계는 2008~2009년 폴리우레탄 전신 수영복 시대의 기록들을 사실상 분리해 다루고 있습니다. 마라톤 역시 머지않아 '맨발의 기록'과 '슈퍼 슈즈의 기록'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마라톤 결승선에서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은 숫자가 아닙니다. 42km를 달려와 마지막 1km에서 폐가 터질 듯한 호흡을 견디는 선수의 표정, 그 위로 흐르는 땀과 눈물입니다. 사웨의 1시간 59분 30초가 위대한 이유는 신발이 가벼워서가 아닙니다. 그 가벼운 신발 위에서 자기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한 인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번스조차 이 지점에서 멈칫합니다. 예전엔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를 보고 "저 선수가 해냈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저 선수와 그의 신발이 해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몫과 도구의 몫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경계 자체가 흐려진 시대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2시간 벽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또 다른 벽, '공정성'이라는 벽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박수를 보내야 할 대상은 신발 속 탄소의 탄성일까요? 아니면 그 위에서 요동친 인간의 심장일까요?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