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 대가 3선 국회의원을 사흘 만에 고개 숙이게 만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청년 주거 대책이라며 내놓은 이른바 '버스 하우스' 구상 이야기입니다. 폐차되는 버스를 고쳐서 대학가 청년들에게 살 곳으로 주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격렬했습니다.
"우리가 난민이냐", "의원님부터 살아보시라".
야당은 물론 같은 당 안에서도 사과하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황 의원은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해프닝,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짚어야 할 대목이 많습니다. 황 의원이 근거로 든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는 정말 서민 주거의 해법이었을까요? 그리고 여당 중진 의원의 입에서 왜 하필 '버스'라는 답이 나왔을까요?
사흘 만에 끝난 '버스 하우스'
시작은 황희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글이었습니다. 황 의원은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습니다. 계산도 덧붙였습니다. 리모델링 비용을 한 대에 5천만 원씩 잡아도 1만 세대면 5천억 원 수준이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근거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들었습니다. 폐선박이나 중고 선박을 리모델링한 '보트하우스'로 1만 가구 이상을 공급해 주택 문제의 해결책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의원실 입장에서는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겠지만, 청년들이 받아든 메시지는 달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책입니까, 벌입니까"라는 반응까지 올라왔습니다. 정치권의 비판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주거 공급망 하나 구축하지 못해 놓고 개조된 폐기 버스에 살라는 건 청년 세대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며, 황 의원부터 '1호 입주자'로 들어가라고 꼬집었습니다.
개혁신당은 "청년들을 거지 취급하고 앉아 있다"고 했고, 진보당도 "왜 힘들고 어려운 것은 청년들의 차지냐"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당의 박지원 의원조차 "적절치 못한 사례로 청년과 학생들을 자극했다"며 "닥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황 의원은 게시글을 삭제하고 "순수한 아이디어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흘 만에 "청년들이 현장에서 직면한 주거 문제의 엄중함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입니다.
황희 의원 페이스북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의 오해와 진실
그런데 이 제안, 감정을 걷어내고 숫자로만 따져봐도 성립하기 어려운 구상이었습니다. 황 의원이 근거로 든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출발점만 놓고 보면, 황 의원의 발상이 아주 뜬금없는 것은 아닙니다.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가 생겨난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였습니다. 폭격으로 도심이 파괴되면서 심각한 주택난이 닥쳤고, 갈 곳 없는 저소득층과 선원, 노동자들이 수명이 다하거나 동력을 잃은 폐화물선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겁니다. 버려진 운송 수단을 고쳐 주거로 쓴다, 여기까지는 버스 하우스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대목이 분명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히피 문화와 대안적 생활 방식이 퍼지면서 젊은 예술가와 학생들이 대거 유입됐습니다. 동시에 무허가 정박이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운하가 막히고 오수가 그대로 흘러드는 환경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암스테르담시가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계류 허가제를 도입해 정박 가능한 자리를 총량으로 묶었고, 상하수도 등 공공 인프라 연결을 의무화했습니다. 주거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게 만든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보트하우스는 비싸고 희소한 자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암스테르담에서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보트하우스는 2천5백 척 안팎입니다. 네덜란드 전체를 다 합쳐야 1만 척 정도입니다. 황 의원이 말한 '1만 가구 이상 공급'은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네덜란드 전체 숫자에 가깝고, 그마저도 정부가 주거난 해소를 위해 공급한 물량이 아닙니다.
가격은 어떨까요. 현지 부동산 시장 자료를 종합하면,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의 매매가는 규모와 위치에 따라 20만 유로에서 100만 유로를 넘습니다. 한화로 3억 원대에서 15억 원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임대료도 월 1천5백 유로에서 4천 유로, 우리 돈 200만 원대에서 600만 원대에 이릅니다. 값이 이렇게 뛴 이유는 배가 아니라 '자리' 때문입니다. 신규 계류 허가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보트하우스를 사려면 배와 함께 기존 소유자의 계류권까지 통째로 넘겨받아야 합니다. 그 결과 최근 5년 새 가격이 30에서 40퍼센트 더 올랐습니다. 운하 위의 집은 이제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고급 주택이 됐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전후 주택난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80년이 걸렸고, 그 끝에 남은 것은 값싼 임시 주거가 아니라 15억 원짜리 운하 위의 집이었습니다.
황 의원은 이 긴 이야기의 첫 장면만 떼어내 근거로 삼은 셈입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이 겪은 문제들은, 버스 하우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버스는 법적으로 차량이지 건축물이 아닙니다. 주거용으로 쓰려면 어디에 세울지, 부지는 누가 마련할지, 상하수도와 전기, 단열과 소방 기준은 어떻게 충족할지, 하나하나가 새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컨테이너나 모듈러 주택도 건축물로 인정받으려면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수명이 다해 폐차되는 버스가 이 문턱을 넘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암스테르담이 30년에 걸쳐 정리한 문제를, 우리는 아직 첫 페이지도 열지 않은 셈입니다. 한 대에 5천만 원이라는 리모델링 비용에 부지 확보와 기반 시설 비용까지 얹으면, '싸고 빠른 공급'이라는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결국 버스 하우스는 근거도, 계산도 성립하지 않는 구상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출처:에어비앤비)
'버스'라는 답이 나온 자리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여당 중진 의원은 왜 이런 답을 꺼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그 답은 황 의원 본인의 해명에 들어 있습니다. 황 의원은 이 제안이 "정부 주도 주택 공급의 시차를 보완하고, 저소득층 청년들의 임시 주거비 부담을 단기적으로라도 덜어보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뒤집어 읽으면, 정부의 주택 공급이 청년들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당 의원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실제 청년들이 마주한 숫자를 보겠습니다.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를 보면, 서울 주요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20퍼센트 안팎입니다. 학생 10명 중 8명은 학교 밖에서 살 곳을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학교 밖에서 살 곳을 구해야 하는 학생들이 유입되는 대학가 원룸 시장은 어떨까요.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집계한 올해 1월 기준,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원룸의 평균 월세는 62만 2천 원입니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전용면적 33제곱미터 이하 기준입니다. 관리비도 평균 8만 2천 원으로, 둘을 합치면 매달 70만 원이 넘습니다.다방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전세는 사기 여파로 기피 대상이 되면서 월세 쏠림은 더 심해졌습니다. '기숙사는 부족하고, 월세는 오르고, 공공 공급은 시차가 있다.' 이 삼중의 공백이 '버스라도 고쳐 쓰자'는 발상이 자라난 토양입니다.
문제는 이 공백 앞에서 여야 모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논란에서도 여당은 사과로 상황을 봉합했을 뿐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야당의 비판 역시 "본인부터 들어가라"는 조롱에 머물렀을 뿐 청년 주거 공급을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청사진은 없었습니다.
한 가지 더 짚을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설화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15년, 청년 실업이 정점으로 치닫던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 순방 성과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해외로 눈을 돌리라는 독려였지만, 청년들은 "니가 가라, 중동"이라고 적힌 피켓으로 답했습니다. 2012년에는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
경쟁 사회를 비판하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그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자녀의 입시 의혹이 불거지자, 이 문장은 정반대의 의미로 돌아왔습니다. 대학가에는 개구리와 가재 가면을 쓴 학생들이 등장했습니다. 취지도 시대도 진영도 다르지만, 청년들이 받아든 메시지는 같았습니다. 사다리를 놓아줄 생각은 없이 눈높이만 낮추라는 말, 조건을 바꿀 생각은 없이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말로 들렸던 겁니다. 청년을 정책의 파트너가 아니라 계도의 대상으로 두는 순간, 선의는 어김없이 모욕으로 번역됩니다. 버스 하우스도 정확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문제는 버스가 아니라, 버스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 그 시선이었습니다.
황희 의원
버스 하우스 논란은 사과와 함께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이 드러낸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숙사 수용률 20퍼센트, 역대 최고를 찍은 월세 70만 원의 현실도, 공공 공급의 시차도, 청년을 시혜 대상으로 보는 정치권의 오래된 문법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원인이 그대로인 한 결과도 반복됩니다. 제대로 된 공급 대책이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제2, 제3의 버스 하우스는 이름만 바꿔 다시 등장할 겁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