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조 특위 공청회 ④
다음은 김호경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김호경]
저는 참사 희생자 김의현 엄마 김호경입니다. 참사 직후 심적으로 힘들어 TV나 인터넷 기사는 보지 않았습니다. 분향소가 설치된 사실을 전혀 몰랐고 사진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분향소 운영 마지막 전날에 합동분향소에 영정사진을 올리고 싶은 유가족이 있다면 얘기해달라는 통보식의 문자를 받았지만 분향소 관련 자세한 안내는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장사진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모하고 애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내 아들 이름 하나 없이 보낸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가족 연락처 공유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연락해서 만나고 있는데 나만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한 번,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담당 공무원에게 유가족의 연락처를 물었으나 모르겠다고 했고 같은 지역의 유가족의 연락처를 물어봤으나 개인정보라 공유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연락처를 다른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그분들이 괜찮다고 하면 연락처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 두 분의 연락처를 문자로 받았습니다. 당연히 정부에서 연락이 오겠지. 우리 유가족들을 만나게 해 주겠지 했던 생각은 저한테 너무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멋진 친구였고 직장에서는 성실한 직원이었던, 눈웃음이 특별히 예뻤던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었고 저에게는 남편이자 친구였습니다. 도와달라는 낯선 이의 울부짖음에 도와줘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이태원의 차가운 도로에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후 빈 건물에 방치되어 있다가 동행자가 있었으나 동행자에게는 연락해 준다고 건물에서 나가라고 하고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그 후 아들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는 14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동국대 일산병원에 갔을 때 손대지 말라고, 신원만 확인하라는 말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울고만 있던 것이 왜 손 한 번 못 잡아보고, 왜 살뜰히 못 살펴보았는지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게 보냈습니다. 봉안당에 안치 후 참석한 아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곳에 갔는지를 기억하지 말고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기억하고 밝혀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키가 엄마보다 커지면서 자기가 엄마를 지켜준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익명을 요청한 유가족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29살 고 유채화 동생입니다. 저희 언니는 정기 후원하는 아프리카 아이의 편지를 받고 진심으로 기뻐하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무리를 해서라도 입을 것, 먹을 것 아껴가며 부모님 환갑 선물을 준비하고 꿈에서도 가족을 걱정할 만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던 집의 대들보였습니다.
성실하던 저희 언니는 낮에는 회사 일과, 밤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스스로 팀을 꾸려 공모전에 나가 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생을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항상 사회의 안녕과 정의로운 삶에 대해 고민하며 틈나는 대로 철학책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희 언니는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갔다 참사를 당했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언니와 같이 남자친구의 증언을 대신 읽겠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10시경. 저와 채화는 이태원 메인스트리트를 둘러보고 집에 가기 위해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인파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른쪽 벽 넘어 클럽이 있던 빈공간으로 몸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하기 전 위에서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무너지면서 저와 채화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약 1시간 정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절규 소리가 난무했습니다. 근육들이 기형적으로 휘는 느낌이 들고 정신을 잃어갈 때쯤 위에서 구급대원원이 보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람을 1명, 1명 빼내면서 조금씩 압박이 풀렸고 채화와 저는 클럽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채화는 바로 구급대원이 붙어서 CPR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집중하지 못하였고 다른 쪽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제대로 CPR을 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제가 채화를 CPR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구급대원들이 누워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아스팔트 위에 임시로 눕혀두었고 이후 119에서 근처 빈 상가와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그때부터 상가 안쪽 접근이 제한되었습니다. 저는 건물 안에 여자친구가 있고 신원 증명을 해야 하니 같이 있겠다라고 경찰에 사정을 말하였으나 경찰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저는 채화와 최대한 가까이 있기 위해 계속 상가 문 바로 앞에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그제서야 상가 앞쪽에 임시본부와 구급의료소가 세워지고 많은 구급차, 소방대원들, 경찰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응급조치가 한시가 급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텐데 왜 바로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구급차들이 대기하고만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 후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상자가 거의 다 병원에 보내진 시간은 체감상 약 2시간에서 3시간이 지난 새벽 2시경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간중간 현장에 계신 분에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병원으로 가냐 물었으나 계속 기다려야 한다 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처리해서 그런지 여기 상가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이라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여자친구가 여기 있으니 신원 증명을 해야 하니 같이 가게 해 달라라고 말했고 분명 그렇게 해 준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채화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갈 수 없다고 길을 막았고 결국 저는 구급차를 함께 타지 못했습니다.
저희 언니는 CPR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병원에 이송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언니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미디어에 공개된 압사사고 영상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사가 있을 줄 알고 죽으려고 이태원에 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태원은 핼러윈 때 매년 사람이 몰리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전까지 정부는 안전을 위해 경찰을 배치했었고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는 없었습니다. 정부를 믿고 올해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잘못일까요? 만약 저희 언니가 그 참사의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저희 언니가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무차별적인 인격모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뉴스도 인터넷 댓글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2차 가해는 포털사이트와 SNS를 보지 않아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업무적으로 만나오던 분께 저에게 나는 더 이상 TV를 믿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아느냐 물었고 당시 저는 유가족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일을 너무 크게 부풀려서 말하는 것 아니냐.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가만히 있지 않냐. 가만히 있는 유가족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나대는지 모르겠다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저는 그 말에 큰 충격과 트라우마를 받았습니다.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차가운 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던 언니의 남자친구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참사의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못합니다. 저는 참사 이후 정신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현재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사회에 시끄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뿐입니다. 네티즌과 정치인분들의 2차 가해. 왜 본인들은 이런 사건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평화롭고 평범하기만 하던 저희 가족이 이런 참사로 사랑하는 언니를 떠나보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로서, 형제를 잃은 동생으로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원인을 밝혀 지적하고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마음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지 않으면 본인의 가족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발 2차 가해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유가족들이 피해 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을 뒤로하고 언론에 보상금을 지급했다 보도한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 자리에 서겠다고, 자신 있다고, 한 표 달라고 외쳤던 정치인분들은 왜 상황 해결은커녕 오히려 앞장서 2차 가해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임자들의 무능함에서 오는 창피함과 책임감을 잊고자 그저 피해자 잘못으로 돌려버리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편하신가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위령비는 세워졌습니다. 당시 태어나던 아이가 서른이 되는 동안 국가는 더 안전해졌나요? 진상규명 거부와 책임 회피, 그리고 2차 가해. 앞으로 무엇을 더 계획하시나요? 여론 조작으로 시민 갈등, 유가족 분열, 그리고 극우집단 지원 등 비겁한 레퍼토리 재생할 생각하지 말고 정부다운 행동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미은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조미은]
국민 여러분 모두 안녕하신지요.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저는 배우 이지한 엄마 조미은입니다. 지한이는 촬영 중간에 10월 29일 단 하루 시간이 비어 친구들과 밥 먹으러 이태원에 갔습니다. 그날 지한이를 목격하신 치과 의사분에 의하면 그 골목 앞 도로에 11시쯤 구조되어 구급차 뒤에 누워 있었으나 CPR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근처에서 15분이나 지켜본 후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소방서 구급일지에는 11시 52분에 차가운 도로에 누워 있는 지한이를 태우고 출발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제 아들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의 입에 인공호흡을 했으나 저는 바로 절망했습니다. 경찰이 검시를 해야 된다며 빨리 나가라는 말에 5분만 더 보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구걸했고 검시 후 들어가니 몸에서 심한 약품 냄새가 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옷을 담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가위로 찢은 옷을 구석에 쳐박아놓고 간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너무 슬펐습니다.
52분간 정부의 부재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잃게 한 이 무책임한 행위에 대해 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현장에 두 번이나 갔던 용산구청장 박희영은 옆집 아줌마인 양 기자들을 막기만 했고 현장 상황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으며 청문회 증인으로 앉아 있으면서도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보다는 직원들이 걱정된다고 하는 등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말과 생각인가 의심케 하는 발언만을 일삼았습니다.
용산서 상황실장 송병주는 쏟아지는 인파를 인도로 밀어올리라고 지시한 살인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파를 도로로 분산시켰다면 몇 명이라도 살았을 것 아닙니까? 몇 시쯤 인파를 밀어올리라 했을까요. 상황실에 있었던 류미진과 정대경, 설렁탕 먹고 뒷짐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느릿느릿 걸어가던 이임재. 이 다섯은 살인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예측, 대비, 대응, 수습.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어 애들이 한 명도 아니고 159명이나 죽었으니까요.
상황을 몰랐다고 해야 살인죄를 면하니까 그들의 머리로 계산해서 또는 연습하고 훈련받아 애매모호하게 발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닙니까? 이태원의 그 상황은 압사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고서가 있었음에도 용산만 지키느라 알면서도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김광호까지 살인자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 참사는 구청장부터 총리까지 굴비 엮듯이 모두 상황을 공유해 알고 있었으나 마치 인지하지 못한 양 빠져나가려 하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운 좋게 해외에 있었던 서울시장도 직무유기며 85분간 상황 설명만 듣고도 그 시간에 제가 놀았겠습니까라고 하는 이상민 장관도 죄를 면치 못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문회에서의 의원들의 발언에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신현영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죄가 있다면 당연히 물어야죠. 하지만 5명이 돌아가며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게 이태원 참사 진실규명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하고 진실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경청해야만 하는 소중한 시간인데 한 분이 그 얘기를 했으면 나머지 네 분은 다른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여당도 원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전주혜 의원은 청문회 발언 순서가 되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다 몇 시간 후에 왔나요? 신년 인사? 친구가 옆에 사라진 걸 몰랐나요? 조수진 의원님? 그러면서 야당과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는 발언을 한 당신은 당신이 먼저 앞장서서 이 참사를 편가르고 정쟁으로 이끌어가는 당사자가 아닙니까? 유가족들이 적인가요?
그럴 시간에 여야를 떠나서 진심으로 같은 부모로서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왜 우리들에게 당시 현장 상황을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왜 부모가 시신 옆에 있었음에도 실종신고를 먼저 하라 했는지, 왜 부모가 119를 따라가다 놓쳐 자식을 수소문해서 찾아야 했는지, 왜 조서를 꾸며야 시신을 데려갈 수 있다며 발인 전에는 돌려줄거라고 했는지, 왜 애플워치에 10월 30일 새벽까지도 맥박이 표시되어 있는데도 그 아이가 주검으로 나타났는지를 물어봐달라는 말입니다.
정부는 유가족들을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듯이 선전하고 있지만 녹사평역 신자유연대에서 탤런트 새끼 시체팔이 애미라고 폭언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옳은 말을 하는 분은 없습니다. 집회 신고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누가 집회하라고 했지 우리 유가족들한테 인신공격하라고 했습니까? 바로 앞에 있는 한 국민이자 시민인 유가족들에게 위협적인 혐오 발언을 일삼고 폭언을 퍼붓는 집회는 과연 정당한 집회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하여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 재난안전 정책과 대응을 총괄하는 중앙부처인 행안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참사 당시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무대응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이미 죽고 있는 때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유가족의 명단이 없다 거짓말하고 지원단을 꾸려 보기 좋게만 꾸며놓고 소수의 유가족들에게만 연락하여 개인적으로 카페에서 만나자고 합니까? 저와 지한이 아빠는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죽는다고 연락을 끊어야만 트라우마센터는 연락을 주는 곳입니까?
주검들을 임시 영안소에 계속 두는 것이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했던 김의승 서울시 부시장님, 체육관에서 신원 확인이 완료된 이후 다른 병원으로 분산시킨다면 부모님에게 어느 병원으로 간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그게 예의 아닙니까? 오후에 해가 중천에 뜨고도 남은 시간이 되어야 알려야 했습니까?
대통령께도 묻고 싶습니다. 새롬이도 보는 당신을 저희는 접견 신청을 했는데도 왜 못 보는 겁니까? 유가족도 국민이고 이 참사의 당사자입니다.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을 빼고 만든 허울뿐인 재발방지대책은 과연 익사, 압사, 다음에 어떤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여야 의원님들. 애들이 1명도 아니고 159명이나 걷다가 죽고 엎어져 압사로 떠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참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부모의 입장으로 진실을 제대로 밝혀달라는 것이고 윗선에게 책임을 물은 전례가 없다는 말 대신 잘못이 있는 책임자를 철저히 가려 처벌을 해달라는 것이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대형 참사는 유례가 없으니 전례도 없겠죠. 이제라도 첫 사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들이 왜 이렇게 항변하는 걸까요? 열 달 동안 내 뱃속에서부터 나쁜 말 안 듣고 나쁜 거 안 먹고 혹시나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20년 이상 소중히 키워냈으니까요. 너무 사랑해서요. 내 아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요.
저는 그 난리 후 지한이의 영정사진을 오른팔에 뉘고 왼손은 지한이의 심장에 얹고 잠이 듭니다. 왜냐고요? 혹시나 이러면 심장이 뛰어 살아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절망 속에서의 헛된 희망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진실만큼은 내가, 우리가 제대로 밝혀야 억울하지 않게 좋은 곳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이만희 간사님께서 정회를 요청하셔서 또 우리 유가족들도 많이 격앙돼 계셔서 정회 요청을 받아들여서 20분간 정회한 이후에 3시 35분에 다시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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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저는 참사 희생자 김의현 엄마 김호경입니다. 참사 직후 심적으로 힘들어 TV나 인터넷 기사는 보지 않았습니다. 분향소가 설치된 사실을 전혀 몰랐고 사진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분향소 운영 마지막 전날에 합동분향소에 영정사진을 올리고 싶은 유가족이 있다면 얘기해달라는 통보식의 문자를 받았지만 분향소 관련 자세한 안내는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장사진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모하고 애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내 아들 이름 하나 없이 보낸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가족 연락처 공유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연락해서 만나고 있는데 나만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한 번,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담당 공무원에게 유가족의 연락처를 물었으나 모르겠다고 했고 같은 지역의 유가족의 연락처를 물어봤으나 개인정보라 공유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연락처를 다른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그분들이 괜찮다고 하면 연락처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 두 분의 연락처를 문자로 받았습니다. 당연히 정부에서 연락이 오겠지. 우리 유가족들을 만나게 해 주겠지 했던 생각은 저한테 너무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멋진 친구였고 직장에서는 성실한 직원이었던, 눈웃음이 특별히 예뻤던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었고 저에게는 남편이자 친구였습니다. 도와달라는 낯선 이의 울부짖음에 도와줘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이태원의 차가운 도로에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후 빈 건물에 방치되어 있다가 동행자가 있었으나 동행자에게는 연락해 준다고 건물에서 나가라고 하고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그 후 아들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는 14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동국대 일산병원에 갔을 때 손대지 말라고, 신원만 확인하라는 말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울고만 있던 것이 왜 손 한 번 못 잡아보고, 왜 살뜰히 못 살펴보았는지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게 보냈습니다. 봉안당에 안치 후 참석한 아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곳에 갔는지를 기억하지 말고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기억하고 밝혀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키가 엄마보다 커지면서 자기가 엄마를 지켜준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익명을 요청한 유가족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29살 고 유채화 동생입니다. 저희 언니는 정기 후원하는 아프리카 아이의 편지를 받고 진심으로 기뻐하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무리를 해서라도 입을 것, 먹을 것 아껴가며 부모님 환갑 선물을 준비하고 꿈에서도 가족을 걱정할 만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던 집의 대들보였습니다.
성실하던 저희 언니는 낮에는 회사 일과, 밤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스스로 팀을 꾸려 공모전에 나가 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생을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항상 사회의 안녕과 정의로운 삶에 대해 고민하며 틈나는 대로 철학책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희 언니는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갔다 참사를 당했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언니와 같이 남자친구의 증언을 대신 읽겠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10시경. 저와 채화는 이태원 메인스트리트를 둘러보고 집에 가기 위해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인파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른쪽 벽 넘어 클럽이 있던 빈공간으로 몸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하기 전 위에서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무너지면서 저와 채화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약 1시간 정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절규 소리가 난무했습니다. 근육들이 기형적으로 휘는 느낌이 들고 정신을 잃어갈 때쯤 위에서 구급대원원이 보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람을 1명, 1명 빼내면서 조금씩 압박이 풀렸고 채화와 저는 클럽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채화는 바로 구급대원이 붙어서 CPR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집중하지 못하였고 다른 쪽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제대로 CPR을 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제가 채화를 CPR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구급대원들이 누워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아스팔트 위에 임시로 눕혀두었고 이후 119에서 근처 빈 상가와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그때부터 상가 안쪽 접근이 제한되었습니다. 저는 건물 안에 여자친구가 있고 신원 증명을 해야 하니 같이 있겠다라고 경찰에 사정을 말하였으나 경찰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저는 채화와 최대한 가까이 있기 위해 계속 상가 문 바로 앞에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그제서야 상가 앞쪽에 임시본부와 구급의료소가 세워지고 많은 구급차, 소방대원들, 경찰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응급조치가 한시가 급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텐데 왜 바로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구급차들이 대기하고만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 후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상자가 거의 다 병원에 보내진 시간은 체감상 약 2시간에서 3시간이 지난 새벽 2시경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간중간 현장에 계신 분에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병원으로 가냐 물었으나 계속 기다려야 한다 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처리해서 그런지 여기 상가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이라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여자친구가 여기 있으니 신원 증명을 해야 하니 같이 가게 해 달라라고 말했고 분명 그렇게 해 준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채화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갈 수 없다고 길을 막았고 결국 저는 구급차를 함께 타지 못했습니다.
저희 언니는 CPR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병원에 이송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언니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미디어에 공개된 압사사고 영상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사가 있을 줄 알고 죽으려고 이태원에 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태원은 핼러윈 때 매년 사람이 몰리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전까지 정부는 안전을 위해 경찰을 배치했었고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는 없었습니다. 정부를 믿고 올해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잘못일까요? 만약 저희 언니가 그 참사의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저희 언니가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무차별적인 인격모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뉴스도 인터넷 댓글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2차 가해는 포털사이트와 SNS를 보지 않아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업무적으로 만나오던 분께 저에게 나는 더 이상 TV를 믿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아느냐 물었고 당시 저는 유가족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일을 너무 크게 부풀려서 말하는 것 아니냐.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가만히 있지 않냐. 가만히 있는 유가족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나대는지 모르겠다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저는 그 말에 큰 충격과 트라우마를 받았습니다.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차가운 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던 언니의 남자친구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참사의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못합니다. 저는 참사 이후 정신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현재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사회에 시끄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뿐입니다. 네티즌과 정치인분들의 2차 가해. 왜 본인들은 이런 사건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평화롭고 평범하기만 하던 저희 가족이 이런 참사로 사랑하는 언니를 떠나보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로서, 형제를 잃은 동생으로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원인을 밝혀 지적하고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마음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지 않으면 본인의 가족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발 2차 가해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유가족들이 피해 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을 뒤로하고 언론에 보상금을 지급했다 보도한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 자리에 서겠다고, 자신 있다고, 한 표 달라고 외쳤던 정치인분들은 왜 상황 해결은커녕 오히려 앞장서 2차 가해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임자들의 무능함에서 오는 창피함과 책임감을 잊고자 그저 피해자 잘못으로 돌려버리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편하신가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위령비는 세워졌습니다. 당시 태어나던 아이가 서른이 되는 동안 국가는 더 안전해졌나요? 진상규명 거부와 책임 회피, 그리고 2차 가해. 앞으로 무엇을 더 계획하시나요? 여론 조작으로 시민 갈등, 유가족 분열, 그리고 극우집단 지원 등 비겁한 레퍼토리 재생할 생각하지 말고 정부다운 행동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미은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조미은]
국민 여러분 모두 안녕하신지요.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저는 배우 이지한 엄마 조미은입니다. 지한이는 촬영 중간에 10월 29일 단 하루 시간이 비어 친구들과 밥 먹으러 이태원에 갔습니다. 그날 지한이를 목격하신 치과 의사분에 의하면 그 골목 앞 도로에 11시쯤 구조되어 구급차 뒤에 누워 있었으나 CPR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근처에서 15분이나 지켜본 후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소방서 구급일지에는 11시 52분에 차가운 도로에 누워 있는 지한이를 태우고 출발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제 아들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의 입에 인공호흡을 했으나 저는 바로 절망했습니다. 경찰이 검시를 해야 된다며 빨리 나가라는 말에 5분만 더 보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구걸했고 검시 후 들어가니 몸에서 심한 약품 냄새가 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옷을 담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가위로 찢은 옷을 구석에 쳐박아놓고 간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너무 슬펐습니다.
52분간 정부의 부재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잃게 한 이 무책임한 행위에 대해 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현장에 두 번이나 갔던 용산구청장 박희영은 옆집 아줌마인 양 기자들을 막기만 했고 현장 상황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으며 청문회 증인으로 앉아 있으면서도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보다는 직원들이 걱정된다고 하는 등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말과 생각인가 의심케 하는 발언만을 일삼았습니다.
용산서 상황실장 송병주는 쏟아지는 인파를 인도로 밀어올리라고 지시한 살인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파를 도로로 분산시켰다면 몇 명이라도 살았을 것 아닙니까? 몇 시쯤 인파를 밀어올리라 했을까요. 상황실에 있었던 류미진과 정대경, 설렁탕 먹고 뒷짐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느릿느릿 걸어가던 이임재. 이 다섯은 살인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예측, 대비, 대응, 수습.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어 애들이 한 명도 아니고 159명이나 죽었으니까요.
상황을 몰랐다고 해야 살인죄를 면하니까 그들의 머리로 계산해서 또는 연습하고 훈련받아 애매모호하게 발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닙니까? 이태원의 그 상황은 압사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고서가 있었음에도 용산만 지키느라 알면서도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김광호까지 살인자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 참사는 구청장부터 총리까지 굴비 엮듯이 모두 상황을 공유해 알고 있었으나 마치 인지하지 못한 양 빠져나가려 하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운 좋게 해외에 있었던 서울시장도 직무유기며 85분간 상황 설명만 듣고도 그 시간에 제가 놀았겠습니까라고 하는 이상민 장관도 죄를 면치 못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문회에서의 의원들의 발언에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신현영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죄가 있다면 당연히 물어야죠. 하지만 5명이 돌아가며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게 이태원 참사 진실규명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하고 진실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경청해야만 하는 소중한 시간인데 한 분이 그 얘기를 했으면 나머지 네 분은 다른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심으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여당도 원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전주혜 의원은 청문회 발언 순서가 되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다 몇 시간 후에 왔나요? 신년 인사? 친구가 옆에 사라진 걸 몰랐나요? 조수진 의원님? 그러면서 야당과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는 발언을 한 당신은 당신이 먼저 앞장서서 이 참사를 편가르고 정쟁으로 이끌어가는 당사자가 아닙니까? 유가족들이 적인가요?
그럴 시간에 여야를 떠나서 진심으로 같은 부모로서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왜 우리들에게 당시 현장 상황을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왜 부모가 시신 옆에 있었음에도 실종신고를 먼저 하라 했는지, 왜 부모가 119를 따라가다 놓쳐 자식을 수소문해서 찾아야 했는지, 왜 조서를 꾸며야 시신을 데려갈 수 있다며 발인 전에는 돌려줄거라고 했는지, 왜 애플워치에 10월 30일 새벽까지도 맥박이 표시되어 있는데도 그 아이가 주검으로 나타났는지를 물어봐달라는 말입니다.
정부는 유가족들을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듯이 선전하고 있지만 녹사평역 신자유연대에서 탤런트 새끼 시체팔이 애미라고 폭언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옳은 말을 하는 분은 없습니다. 집회 신고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누가 집회하라고 했지 우리 유가족들한테 인신공격하라고 했습니까? 바로 앞에 있는 한 국민이자 시민인 유가족들에게 위협적인 혐오 발언을 일삼고 폭언을 퍼붓는 집회는 과연 정당한 집회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하여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 재난안전 정책과 대응을 총괄하는 중앙부처인 행안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참사 당시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무대응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이미 죽고 있는 때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유가족의 명단이 없다 거짓말하고 지원단을 꾸려 보기 좋게만 꾸며놓고 소수의 유가족들에게만 연락하여 개인적으로 카페에서 만나자고 합니까? 저와 지한이 아빠는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죽는다고 연락을 끊어야만 트라우마센터는 연락을 주는 곳입니까?
주검들을 임시 영안소에 계속 두는 것이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했던 김의승 서울시 부시장님, 체육관에서 신원 확인이 완료된 이후 다른 병원으로 분산시킨다면 부모님에게 어느 병원으로 간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그게 예의 아닙니까? 오후에 해가 중천에 뜨고도 남은 시간이 되어야 알려야 했습니까?
대통령께도 묻고 싶습니다. 새롬이도 보는 당신을 저희는 접견 신청을 했는데도 왜 못 보는 겁니까? 유가족도 국민이고 이 참사의 당사자입니다.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을 빼고 만든 허울뿐인 재발방지대책은 과연 익사, 압사, 다음에 어떤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여야 의원님들. 애들이 1명도 아니고 159명이나 걷다가 죽고 엎어져 압사로 떠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참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부모의 입장으로 진실을 제대로 밝혀달라는 것이고 윗선에게 책임을 물은 전례가 없다는 말 대신 잘못이 있는 책임자를 철저히 가려 처벌을 해달라는 것이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대형 참사는 유례가 없으니 전례도 없겠죠. 이제라도 첫 사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들이 왜 이렇게 항변하는 걸까요? 열 달 동안 내 뱃속에서부터 나쁜 말 안 듣고 나쁜 거 안 먹고 혹시나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20년 이상 소중히 키워냈으니까요. 너무 사랑해서요. 내 아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요.
저는 그 난리 후 지한이의 영정사진을 오른팔에 뉘고 왼손은 지한이의 심장에 얹고 잠이 듭니다. 왜냐고요? 혹시나 이러면 심장이 뛰어 살아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절망 속에서의 헛된 희망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진실만큼은 내가, 우리가 제대로 밝혀야 억울하지 않게 좋은 곳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이만희 간사님께서 정회를 요청하셔서 또 우리 유가족들도 많이 격앙돼 계셔서 정회 요청을 받아들여서 20분간 정회한 이후에 3시 35분에 다시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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