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책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일을 필사라고 합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나 흔했던 필사가 최근 출판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으로 직접 쓰도록 만들어진 책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필사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순표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30대 크리에이터 미선 씨는 책을 옮겨 쓰는 일에 푹 빠졌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좋아하던 책이나 문구를 써 내려가다 보니 필사 노트만 벌써 5~6권이 됩니다.
필사 방식을 공유한 동영상은 조회 수 100만을 바라볼 정도로 주변 관심도 뜨겁습니다.
[크리에이터 고미선(기록친구리니) : 필사를 하는 시간 만큼은 문장을 틀리지 않게 옮겨야 되기 때문에, 핸드폰이나 이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혼자 문장과 책과 저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돼서]
필사의 인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상반기에만 관련 서적 100여 종이 나왔습니다.
필사만을 위해 좋은 문장을 모으거나 일반 책 뒤에 필사 페이지를 추가하는 등 형식도 다양합니다.
특히, 어휘력과 필사를 결합한 '필사 노트'는 3월 출간 이후 10만 권이나 팔려 나가면서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됐습니다.
[위즈덤하우스 이호윤 마케터 : 필사랑 어휘력을 합친 책을 기획하고 됐구요, 판매도 실제로 40대 여성에서부터 판매가 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30대에서 50대까지 판매가 확산이 되었습니다.]
한 대형서점이 주최한 손 글씨 대회에도 예년의 2~3배가 넘는 참가자 5만 명이 몰렸고 명사의 필사 코너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같은 필사의 인기는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사경이라고 해서 성경이나 불교 경전을 옮겨 쓰는 일은 노년층을 중심으로 꽤 오랫동안 자리 잡은 종교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사경이 일반 서적으로 확산한 것은 자극적이고 짧은 동영상에 맞서 아날로그적으로 책을 소비하려는 젊은 층의 욕구에서 출발했습니다.
문해력과 집중력이 부족한 MZ 세대에 필사가 훌륭한 대안이라는 인식도 한몫을 했습니다.
여기에 SNS를 통한 필사 습관의 공유, 인기 연예인의 독서와 필사 공개가 어우러지면서 폭발력을 지낸 문화 현상으로 진화했습니다.
[채웅준 대한출판문화협회 연구위원 : 개개인에게는 이런 현상이 자신의 문해력과 문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디지털 피로감을 해소할 수 있는 [디지털 디톡스]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고 보면 필사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독서의 본질보다는 출판사의 기획 상품과 결합한 유행에 불과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때문에, 출판계의 필사 열풍이 독서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킬 촉매제가 될지 아니면 일회성 유행에 그칠지, 문화계의 뜨거운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촬영기자 : 박재상
디자인 : 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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