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앵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삼성가의 황태자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야인처럼 살아야 했고 결국 중국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와 황태자 이건희. 끝내 화해하지 못한 두 형제의 애증의 50년 역사를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으로 먼저 확인하시죠.
[앵커]
전문가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대표님,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게 삼성서울병원도 있을 텐데, 왜 중국 베이징에서 암치료를 받고 회복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한 10여 년 전에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거주는 했었습니다마는 일본의 평소 자기가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젊었을 때도 일본에서 상당 기간 거주를 했었으니까요. 친한 사람의 소개로 그 병원에 가게 되었고 쭉 치료를 받아오다가 회복기미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이러는 과정에서 본인이 중국에 CJ에서 세운 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베이징 인근에 임대를 얻어서 거기서 쭉 거주를 하면서 치료를 했다고 합니다.
[앵커]
어떤 기사에 보니까 한국에 있는 게 좀 불편하다. 이런 얘기도 했더라고요.
[인터뷰]
그렇죠. 삼성을 떠난 이후에 주로 지방이라든가 대구라든가 부산이라든가 동해라든가. 이런 데 떠돌면서 사실상 아까 말씀을 하신 것처럼 야인생활을 많이 했죠.
[앵커]
중국에는 부인이나 가족과 함께 있었던 것인가요?
[인터뷰]
부인은 지금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데 손복남 씨라고. 한국에 그대로 계시고요. 주로 혼자서 외부에서 생활을 했죠.
[앵커]
1993년에 묻어둔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을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거기서도 그랬지만 약간 성격이 불 같은 성격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버지하고도 갈등을 빚어왔는데 기자 시절에 인터뷰를 하셨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성격입니까?
[인터뷰]
저희가 처음 뵌 것은 80년대 후반이었는데요. 그때 연세가 50대 중후반 이렇게 막 접어들 때인데, 성격이 아주 불 같은 건 사실입니다. 특히 호불호가 분명하시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 또는 사실에 대해서 명쾌하게 선을 긋고, 이런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앵커]
애초에 이맹희 회장에게 삼성 이병철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줄 작정이었다,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왜 틀어진 건가요?
[인터뷰]
이맹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에 처음 참여하게 된 것은 31살 때였는데요, 1992년도입니다. 안국화재 이사로 처음 삼성그룹의 경영에 참여를 해서 완전히 삼성을 떠나게 된 것은 1976년도에 약 14년 정도 재직하다가 떠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것은 1966년도에 있었던 한비사건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사건과정에서 후유증으로 1967년도에 한국비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재수입에 관련해서 사카린이 있었다. 이 사실이 폭로가 되고 그 후유증으로 한비를 국가에 헌납하는 상황이 왔죠.
그리고 이병희 회장이 잠시 경영에서 물러나게 되는 그런 과정에서 누가 삼성그룹의 내부정보를 이른바 수사기관이라든가 이런 데 흘렸느냐하는 그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뒷 이야기가 있었죠.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말씀하신 것하고 이맹희 씨의 주장하고 약간 엇갈리는 부분은 있어요. 동생이 투서를 해서 그렇게 됐다, 이런 복잡한 문제가 얽히니까 결국은 서서히 서로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거죠.
[앵커]
그러니까 고 이병철 회장은 장남이 서를 보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실제로 경영일선에서 밀려놔서 경영을 좀 맡겼더니 경영을 제대로 못하더라. 이맹희 전 회장은 자서전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사카린 매수를 맡겼다라고 했는데 왜 둘째 아들은 청와대에 투서를 했는지 궁금한데 가족간의 갈등이 좀 있었나보죠?
[인터뷰]
그때 당시에 정치, 경제적인 상황과 결부되어 있는 내용 아닌가 싶어요. 저희가 당시에 취재를 할 때도 분명히 동생쪽에서 그러니까 이창희 씨. 고 이창희 회장께서 그 당시에 뭘 맡고 있었냐하면 재무를 다 맡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장부가 상당 부분 수사기관 또는 청와대쪽으로 들어갔다. 이게 확인이 되고 하면서 동생이 투서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갔고요. 그런데 그 배후에 아버지쪽에서는 이병철 회장은 그러한 투서의 배후에 형이 힘을 작용했다. 아버지를 밀어내고 경영권을 장악하기로 하려고 그런 계획을 한 것이다, 그런 입장이었던 건 맞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얘기 중에 하나는 이맹희 씨와 이창희 씨가 아버지가 유보된 상태에서 경영을 맡으면서 사업구조를 굉장히 많이 바꾸었죠. 기존에 설탕, 모직, 경박, 간소한 사업측면에서 다른 쪽의 제조업쪽으로 확대를 하자. 전자쪽으로 하자. 이런 사업구조의 틀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많은 경영진들을 물갈이하게 됐었죠. 그런 과정에서 이병철 회장을 고와서 그동안에 경영을 해왔던 사람과 새로운 신흥경영진들 사이의 알력, 이런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을 했죠.
[앵커]
그동안에는 이건희 회장은 삼성 경영권에 가까이 있지는 않았나보죠?
[인터뷰]
그렇죠. 이건희 회장은 나이도 어리고 그때 당시에는. 그래서 나중에 동양미디어라고 옛날에 TBC라는 거기에 이사로 참여를 하면서 사실상 경영을 시작하게 됐는데 주로 이병철 회장은 미디어 분야를 맡기고자 하는, 그런 의사가 강했죠.
[앵커]
사실은 아버지에게 순응을 했다면 대삼성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는데 스스로 어떻게 욕심을 내다가 박차거나 쫓겨난, 그런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인터뷰]
욕심이라는 것보다도 경영노선의 갈등이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그런데 이맹희 회장이 가지고 있는 저희가 쭉 20여 년 동안 지켜보면서 느꼈던 부분은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굉장히 성격이 단호하고 불같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고집하고 그런 성격과 충돌한게 아니냐. 그렇게 보죠.
[앵커]
궁금한 것은 2012년도에 이건희 회장하고 소송을 하면서 저희가 1부에서도 인터뷰한 내용을 보내드렸지만 이건희 회장이 형인데도 불구하고 그 양반 이렇게 호칭을 하고 아예 갈라선 것 같거든요. 어떤 계기로 완전히 뒤를 돌아서게 된 겁니까?
[인터뷰]
사실 1976년도에 이병철 회장이 내 후계자는 이건희다, 이런 걸 선언을 하게 되죠. 그 이후로 이맹희 씨가 그룹의 경영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는데요. 그런데 1980년대 들어와서 이맹희 회장이 본인이 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브라질에 투자하는 사업이라든가 제일비료를 다시 재건하는 사업이라든가 이런 과정에서 삼성그룹과 충돌을 하게 되죠. 그래서 삼성그룹에서도 상당 부분 이맹희 씨를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혹시 이맹희 씨의 사업이 삼성그룹과 잘못 연계가 되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삼성그룹의 그때 당시에 1980년대 당시 경영인 중에서도 이맹희 회장을 지지하는, 이른바 그런 인사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중에 1987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다음에 상당 부분 내부정리를 하는 그런 작업도 몇 년에 걸쳐서 있기도 했죠.
[앵커]
그당시 갈등이 롯데 형제 갈등하고 비슷한 양상이었나요?
[인터뷰]
아마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는데. 경영권을 둘러싸고 한 분쟁이니까 다른 측면은 아버지의 명령과 또는 어떤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점에서는 좀 다르다고 봐야죠. 제출한 편지에 동생과 화해하고 싶다,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마무리는 화해를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죠. 선대들끼리의 얘기라고 할 수가 있고 후대들은 이른바 창업주의 3세들은 계속 갈등을 이어가서는 안 되겠죠. 그런 측면에서 아마 가족들이 화해를 하자. 지금 현재도 홍라희 여사 같은 경우에 손복남 여사와 이맹희 씨의 부인이죠. 자주 만나고 그럴 정도로 친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궁금한 것이 이건희 회장이 이맹희 회장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집안에서 쫓겨난 양반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궁금한 것은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제일제당을 물려받지 않았습니까? 미운 자식한테 왜 물려줬을까. 이런 부분도 궁금합니다.
[인터뷰]
저희는 정확한 내용은, 가족의 내분 얘기니까 잘 모르지만 아마 1987년도에 이병철 회장이 타계할 당시에 1부에서도 나왔습니다마는 무슨 상속과 관련된 유언장이 있지 않았느냐. 이런 얘기도 있었고요. 어쨌든간에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이후에 5년 동안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사업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이것을 준비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1991년부터 신세계를 기점으로 해서 각 형제들에게 계열분리를 하는 작업을 하는데, 제일제당은 사실 제일 늦게 분리의 결정이 나오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잡음은 있었습니다마는 어쨌든 제일제당이 갖고 있는 그룹 내에서의 어떤 모기업적인 성격, 이런 것들을 전제로 해서 아마 이건희 회장이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계열분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그렇게 봅니다.
[앵커]
궁금한 것은 어쨌든 제일제당이 CJ로 이름이 바뀌면서 우리나라 굴지의 잘나가는 기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맹희 전 회장이나 그의 아들이 어느 정도 경영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냐, 이렇게 평가도 해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것은 이재현 회장이 1999년도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는데 원래 전통적으로 제당사업을 기반으로 해서 유통 이런쪽이 있습니다마는 식품유통을 합니다마는 거기에 아주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대해서 기업 규모를 급속히 키웠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상당히 이병철 회장의 사업가적 DNA 이것을 이어받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현재 삼성을 맡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우리가 상당히 기대를 하는 거죠.
[앵커]
이맹희 회장의 장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지금 건강 상태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태인데. 장례식장에 참석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거든요.
[인터뷰]
저희가 확인한 결과는 장례식장에 참석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 현재 구속집행정지가 돼 있고 서울대병원의 병실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법무부의 허락이라든가 양해가 없을 경우에는 일체 이동하기가 어렵고 그리고 지금 이번에 타계하신 것이 중국 베이징이어서 시신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 절차가 외교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합니다. 당장은 사인규명부터 하고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마 시일이 좀 걸린다는 그런 상황입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을 받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서 구속집행정지 때문에 서울대병원에 있는데 빈소를 서울대병원으로 정했다는 건 그래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인터뷰]
그렇죠. 아무래도 서울대병원의 병실로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병원으로 한다라고 했을 때 약간은 융통성이 있을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보면 이재현 회장이 상주니까 참석하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앵커]
이맹희 전 회장에 대해서 비운의 황태자, 또는 삼성의 양녕대군 이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 오랫동안 야인생활을 하고 베이징에서 쓸쓸히 숨졌지만 어쨌든 여러 가지 삼성가의 장남으로서 기여한 부분도 있고 그런 것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네, 그렇죠. 초기 삼성그룹의 사업의 밑거름을 닦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기여를 했다고 봐야 되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사실상 이어받은 이후에 본인이 삼성의 근처에 가지 않고 멀리서나마 있었다는 것은 상당히 동생에 대한 배려심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봐야 되겠죠.
[앵커]
물론 오래 전에 자서전을 쓰기는 했지만 끝내 이건희 회장과 화해를 하지 못했는데 그것에 대한 소회를 숨지기 전에 남겼는지 이런 부분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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