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집념으로 기록한 지옥의 섬 군함도"

2016.05.21 오후 12:50
■ 한수산, 소설가 ('군함도' 출간)

[앵커]
원로 소설가 한수산 선생이 최근 군함도라는 역사소설을 들고 독자들 앞에 섰습니다. 군함도, 일본 말로는 하시마라고 하죠. 1939년 이후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된 탄광섬이고요. 지난해 7월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해서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바로 그 섬입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소설가 한수산 선생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1946년생이니까 일흔이 되셨는데 건강하신지요?

[인터뷰]
나이만큼 건강합니다.

[앵커]
나이 일흔이 되시면 원로급 소설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텐데 최근에 후배 소설가인 한강 씨가 맨부커상을 받았어요.

[인터뷰]
기쁜 일이죠. 어떤 척도라고 할까요, 대외적으로 한국소설이 어떤 상을 탔다는 것, 그만큼 한국 소설이 풍부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참 소설거리가 많은 민족입니다. 분단에 전쟁에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소설로, 문화적으로 걸러내는 작업이 그만큼 많이 이루어졌다는 거는 아주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이죠.

[앵커]
한강 소설가가 그 상을 탄 게 번역가의 공도 컸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우리 한 선생님의 소설가도 많이 번역이 됐나요?

[인터뷰]
예를 들어서 오늘 이렇게 말씀해 주신 군함도도 일본에서 이미 2009년에 상하권으로 출판이 돼서 꽤 많이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일본의 반응이 재미있던 게 국경을 넘어선 소설이었다는 얘기를 해줘서 기뻤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먼저 소설 군함도, 집필 이력이 아주 독특합니다. 집필 이력을 그래픽과 함께 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시작은 1993년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해는 뜨고 해는 지고라는 작품입니다. 3년 동안 연재하다가 중단했고 이 작품을 다시 고쳐 써서 2003년 5권으로 까마귀라는 장편소설을 출간을 했습니다. 이 까마귀를 다시 줄이고 고쳐 써서 이번에 2권짜리 군함도를 출간하셨습니다. 먼저 하시마, 군함도 이렇게 두 권으로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인터뷰]
꽤 오래전으로 올라가죠. 그래서 27년이라는 말이 책을 내니까 나오는데요. 도쿄의 한 고서점, 헌책방이죠. 그런 데서 아시아 관계 책이 있는지를 쭉 찾아보고 있는데 거기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고 하는 일본책을 만나요. 원폭과 조선인. 저도 사실은 원폭이 떨어졌다는 거는 히로시마 정도는 기억을 하고 있었지만 나가사키에서 그렇게 많은, 1만 명에서 1만 2000명이 그 해 돌아가셨다는 나오거든요, 한국인이. 그리고 전체 피폭자가 2만 명이라는, 현장답사를 해서 밝혀낸 자료조사를 거기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너무 놀랐는데 또 특이한 점은 그 피폭자의 거의 대부분이 징용이라는 거예요, 강제로 끌려간 분들입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부터 지금 남쪽까지 전혀 기록이 없어요, 희생자들이. 그런 것 때문에 놀라서 이건 작가적 의무를 가지고라도 이 작업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27년이 걸려서 여러 번, 지금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신문소설로 5권의 책으로, 2권으로 다시 또 압축을 하는 작업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은 우연하게 보신 거군요.

[인터뷰]
그럼요, 그걸 찾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요.

[앵커]
이번 소설과 관련해서 염무웅 교수가 소설가 한수산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직무태만이었다.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인터뷰]
기쁜 일이죠, 찬사를 해 주셨는데. 제가 다섯 권이라는 까마귀라는 책을 냈을 때도 어떤 원로 언론인께서 저를 불러주셔서 찾아갔더니 자기 세대가 해야 할 일을 자네가 해 주어서 고맙네라는 아주 기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말씀이셨는데... 이렇습니다. 과거가 청산됐다면 아름답게 떠나보내고 추억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한일 간에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너무 많습니다. 그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론하기도 그럴 정도로. 그것을 그냥 우리가 피해자들이 그냥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고 떠나가시면 그냥 화석처럼 굳어져버립니다, 청산되지 않은 채요.

이때부터 해야 할 일이 문화라고 생각을 해요. 소설로 쓰고 영화로 만들고 연극으로 올리고 노래로 부르고 춤추고 하면서. 이 문화적인 걸 자꾸 해야 될 때만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아직도 살아 있는 우리들의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어떤 과거사를 정리해 가는 계기를 마련해야 되는 것. 이것도 문화의 책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다는 생각을 늘 하죠.

[앵커]
사실 한 선생님도 일제시대를 직접 피부로 경험하지 못하셨죠?

[인터뷰]
그렇죠. 저도 해방 세대니까요.

[앵커]
식민지 시대 고난을 그린 작품이 없었다는 지적도 하셨고요.

[인터뷰]
참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가 어쩌다 그걸 놓쳤는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예를 비교할 것도 없이 식민지 35년의 고난, 비참함 또는 거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견뎌냈는가 하는 문제들. 또는 한국전쟁 문제까지 두루 우리 근현대사에서 아픈 것들이 문화적 거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책을 합니다.

[앵커]
우리 언론 책임도 많지 않나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터뷰]
그런 걸 우리가 함께 고민할 때 길이 열리겠죠.

[앵커]
이 소설의 대상이자 하시마, 군함도에 많이 가셨다고요? 몇 번이나 가셨어요?

[인터뷰]
9번까지는 제가 셋었어요. 이제는 몇 번인지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런데 이 섬이 지옥섬이라고 그래요. 그냥 그렇게 들어서는 도저히 해저탄광을 왜 지옥이라고 부르는가 하는데요. 여기에는 역사적인 아주 괴로운 역사가 있어요. 한때는 해저탄광이니까 땅속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걸 700m에서 1000m 쯤 내려가서 석탄을 캐는데요.

[앵커]
지금 화면으로 나가는 거는 육상 부분이거든요. 지하로 내려가게 또 돼 있고.

[인터뷰]
그리고 저거는 74년에 폐광이 된 이후에 무너져가고 있는 주거시설이니까. 이곳이 일찍이 1800년대에 탄광으로 개발됐었을 때 영국인과 합작 투자를 해서 개발하게 돼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일본에서 정부에서 이걸 인수해서 관영탄광이 됩니다. 나가사키현 탄광이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관영탄광이 되니까 나가사키 형무소에 죄수들이 들어가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특별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거예요. 죄수를 다루듯이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이 말하기가 괴롭습니다마는 전통 아닌 전통이 됩니다. 그 탄광만의. 아주 인권의 사각지대가. 거기로 당시 말로는 조선인 600명에서 1000명까지 끌려가서 끊임없이, 12시간 노동이라는 아주 가혹한 노동에 처해지게 되는 거죠.

[앵커]
나가사키항에서는 거리가 가깝습니까?

[인터뷰]
육로로 간다고 해도 한 50분 정도 달려야 되고요. 그 섬이 보이니까요. 배를 타고 하면 30~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섬입니다.

[앵커]
앞서 9번까지는 세보셨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렇게 자주 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소설을 쓰다 보면 가서 느껴야 할 점이 많았던 모양이죠?

[인터뷰]
그럼요. 우선 자료 조사를 해서 어떻다는 걸 안 다음에 증언을 해 주실 생존자를 찾았죠. 그때 마침 벌써 27년 전부터 시작했던 일인데 살아계신 분들이 계셨어요.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으시고 일본에 사시는 분들.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시는 분이 서정우 씨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분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셔서 저와 함께 그 섬에 들어가서 같이 걸으면서 탄광 입구에서부터 그다음에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설명을 해 주시고 그다음에 방파제를 걸으면서 그렇게 배고팠던 얘기들을 많이 하세요. 배고팠다. 먹는 게 워낙 부실했으니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맞았다, 여기에서 울었다. 방파제 위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여기서 떨어져 죽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런 그 고난의 얘기들을 해 주셨어요. 그분의 취재를 몇 년 마쳐서 이제 현장취재를 마쳤다 싶어서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인데 그분이 제 손을 꼭 잡고, 그때 일흔이 넘으신 분이었는데 나가사키에 달랑달랑하는 전차가 다녔어요. 그 전차 정거장까지 따라나와서 내가 탄 전차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세요.

그때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오르면서 도대체 그분은 15살에 끌려가신 분이에요. 15살 소년을.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15살이면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고 가지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 어린 소년을 지하에 놓고 탄을 캐게 했던 이 비극. 이게 역사의 몫인가. 일본인의 탓인가, 우리들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의 탓인가. 참 착잡한 생각을 하면서 정말 내가 작가로서 의무다, 이건. 내가 저분들의 역사를 복원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게 되죠.

[앵커]
그분은 돌아가셨습니까?

[인터뷰]
책이 나온 걸 못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앵커]
지금 한 선생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끝으로 우리 중요한 질문인데 과연 한일관계 그야말로 가까우면서도 먼 그런 관계인데 앞으로 전망을 어떻게 보시고 한일관계 목소리도 내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인터뷰]
한일관계라는 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있던 과거사를 청산을 제대로 못 하고 우리가 물로 덮듯이 잠겨놨어요. 그래서 양국관계가 좀 거칠어지면 이게 가뭄이 든 것처럼 잠겨진 한일관계가 드러납니다,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은 게. 그러면서 역대 정권을 쭉 살펴봐도 진전이 되는 것 같다가 안 되고 그러거든요. 흔들의자 같다고 저는 표현을 하는데 움직이는 것 같은데 앞으로 안 나가요. 제가 이 소설에서 꼭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이거는 어떤 과거의 얘기를 단순하게 옮겨놓은 게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의 역사라는 겁니다. 오늘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오바마 대통령도 히로시마 간다고 하는데. 이거는 오늘의 문제입니다. 또 예전에 연예인 송혜교 씨가 그 미쓰비시의 광고를 거부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언뜻 생각하면 왜 그랬지 할지 모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자명해집니다. 정말 이거는 잘한 일이구나라는 게. 그런 면에서도 오늘 살아있는 우리들의 얘기를 썼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앵커]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게 소설입니다마는 9번 이상 가셔서 하신 걸 보면 팩트가 반 이상은 될 것 같아요.

[인터뷰]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습니다. 구성에서만 나이 적은 사람이 체험했던 걸 나이 많은 사람으로 돌렸다는 이런 게 있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원로 소설가 한수산 선생님과 함께 최근에 출간한 군함도 소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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