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실학자가 서양의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우리 방식으로 해석해 만든 천문 관측 도구 '혼개통헌의'가 보물이 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는 중세 이슬람 문화권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뒤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옛날 여행자들은 이 천문시계를 통해 하늘의 별을 관찰해 정확한 시간, 그리고 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서양의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 출처 : 게티이미지)
정조 때인 1787년, 실학자 유금(1741∼1788)은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우리 식의 천문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유금은 유명한 실학자인 유득공의 숙부로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중 한 명인데요. 자신의 호를 '기하(幾何)'로 할 정도로 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유금은 마테오 리치의 제자인 명나라 학자 이지조가 서양의 해설서를 번역한 '혼개통헌도설'을 토대로 이 천문시계를 제작했습니다.
금동으로 만들어진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원반 모양 '모체판'과 별의 관측 지점을 알려주는 알파벳 T자 모양의 '성좌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판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본적으로 중국 번역서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유금은 서양의 천문시계와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있는 밤하늘 중심으로 별자리를 새겨넣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견우별'과 '직녀별', '스피카'와 '뱀주인 자리' 등을 한자로 표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개통헌의'는 동아시아에서 서양의 천문시계를 받아들여 만든 유일한 사례입니다. 또 서양의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조선 지식인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문화재청은 그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혼개통헌의'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1930년대에 일본인이 사들여 일본으로 가지고 갔던 '혼개통헌의'는 과학사학자인 고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2007년 국내로 돌아온 사연도 품고 있습니다. 현재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실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지은[j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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