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틀리에 Y] 자음과 모음 사이에서, 당신의 영웅을 떠올리다 - 신상철 작가

2026.03.11 오전 10:55
2026년 3월 아트스퀘어 – 신상철 작가 초대전
3월 1일(일) ~ 3월 31일(화)
장소 :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
우리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의 영웅이 있다. 신상철 작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쌓아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 작은 글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모습이 되듯,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부터 손흥민 선수와 BTS까지,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이름들이 캔버스, 혹은 조각으로 떠오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는 것, 그것이 곧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작가는 말한다.

익숙한 형상이 낯선 방식으로 눈앞에 펼쳐질 때, 자음과 모음 사이 어딘가에서 당신만의 기억이, 당신만의 영웅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2026년 3월 YTN아트스퀘어의 주인공, 신상철 작가의 작품은 3월 31일까지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에서 만날 수 있다.

▼ 다음은 신상철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전시 주제와 준비 과정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형의 기본 단위로 삼아 재구성하고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담는 하나의 기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하며, 회화, 부조, 조각,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아이스 페인팅이라는 장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주제인 '누군가의 영웅'은 처음엔 개인적인 기억을 작업하다가 집단적 기억으로 생각이 확장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위인들을 그리고 조각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기억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느꼈어요. 이번엔 손흥민 선수나 BTS처럼 지금 살아서 활동하는 분들을 담았는데, 그분들은 누군가에게 진짜 영웅이 될 수 있잖아요. 이전 작품들이 자음과 모음이 뭉쳐 만들어진 형상이었다면, 이번엔 누군가를 응원하는 메시지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형상입니다. 지금 살아 계신 분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누군가의 영웅 91.0 x 91.0 cm, oil on canvas, 2022

Q. 형상으로의 확장이 흥미롭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보통 작가들은 주제나 아이디어를 먼저 정해놓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조금 반대입니다. 어떤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어요.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일상 중에 문득 이미지가 떠오르면, 저는 오히려 '왜 이 이미지가 떠올랐을까'를 파고드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작업의 소재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손흥민 선수나 BTS는 뉴스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제가 먼저 깊이 감동받았고, 그게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돌아가신 위인들을 작업했는데, 지금 살아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Q. 앞서 언급한 아이스 페인팅은 다소 낯선 장르다. 작업 방식에 대해 소개한다면?

물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물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변하는데, 그 순환의 과정이 기억과 굉장히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눈이 내려 녹고, 다시 씨앗에 흡수되어 풀을 자라게 하듯 항상 흔적을 남기잖아요. 기억도 그런 것 같아서요.

작업 방식은, 수성 물감을 물에 녹인 뒤 작은 자음·모음 형상의 틀에 얼립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다양한 색의 얼음 조각들을 캔버스 위에 배치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에 의해 녹으며 흔적을 남기는 작업입니다.

흥미로운 건, 결과물의 60~70%는 제 계획대로 되지만 나머지 30~40%는 계획을 벗어난다는 점입니다. 그게 기억과도, 인생과도 닮아 있어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미지를 만드는 작가였는데, 아이스 페인팅은 반대로 제가 만든 이미지가 흩어지고 변형되면서 추상의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매체에 따라—한지든 수채화 용지든 캔버스든—결과가 또 달라지는데, 그게 같은 기억도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다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 이순신 26.0 x 26.0 x 50.0 cm, 3d print, 아크릴 컬러, 2025

Q. 이번 전시에 함께한 15점의 작품 중 특별이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다 애착이 가지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작품에 유독 애정이 큽니다. 지금 전시된 건 작은 작품이지만, 처음 만든 원작은 높이가 2~3m에 달하는 대형 작업이었어요. 만들면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이순신 장군 조각은 제 첫 완전 입체 조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서 쉬었다가 다시 손보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해온 작품들이라 더 특별합니다. 무엇보다 두 분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웅이시기도 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분들이라 더욱 애착이 갑니다.


▲ 세종대왕 25.0 x 25.0 x 32.0 cm, 3d print, 아크릴 컬러, 2025

Q. 작품 제작이나 표현에서 유달리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

지금까지 작업한 인물들은 주로 광화문 동상을 모티브로 삼아왔습니다. 익숙한 이미지를 가져온 거예요. 이 때문에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한 게 아니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저는 이렇게 반론합니다. 자연을 묘사하는 작가에게 "왜 꽃을 보고 꽃을 그리느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저에게는 광화문 동상이 그 자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그 인물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풍경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익숙한 형상을 익숙하지 않게, 낯설게 표현하는 데 가장 신경을 씁니다. 광화문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흡사하면서도 제 표현 방식을 담는 것, 그 균형이 지금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Q.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된 성장 배경이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최근에야 말할 수 있게 됐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난독증이 있었습니다. 책을 오래 보면 울렁증이 생기고 글자가 일그러져 보였어요. 나중에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게 하나의 질환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부끄럽지 않게 됐습니다.

그 영향인지,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이루는 방식이 저에겐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선적인 표현보다 점묘처럼 점적인 표현을 많이 쓰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은 작업실 화재였습니다. 작품들을 모두 잃고 강아지와 저만 살아남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저에게 좋은 계기가 됐어요. 판화과 출신으로 판화라는 장르에만 갇혀 있었는데, 화재로 장비를 모두 잃고 나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회화였습니다. 그렇게 회화로 넘어오면서 생각의 폭이 확장되고, 여러 장르를 실험하게 됐습니다. 아직도 집에 불이 나면 어쩌나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없었을 겁니다.

Q.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전시에 담긴 인물들은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그 마음이 더 커져서 하나의 기류를 형성하고, 그분들이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싶어 하는데, 형상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그리고 지금의 손흥민 선수 같은 분들이 더 많이 기억되고 응원받아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되는 인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기억되길 바라는, 신상철 작가만의 영웅도 있나.

어릴 때 존 레논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개인의 사랑 이야기보다 인류 전체를 향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거든요. 'Imagine'이라는 노래가 베트남전 때도, 지금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노래로 남아 있는 것처럼, 하나의 음악이 그토록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백성이 글을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려 했는데, 그 체제에서 한글을 만드셨잖아요.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들이 모두 영웅이고, 딱 한 분을 꼽기가 어렵네요.

Q. 이번 전시는 유난히 감상하는 이가 많다. 이들을 위해 작품을 좀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작품을 보고 궁금증이 생기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는 분이 제 그림을 보고 그분의 모습이나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면, 저는 그걸로 이미 1차 목적은 달성한 겁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림 안의 자음과 모음에서 '손흥민'이라는 글자를 찾아보거나, '축구'라는 단어를 만들어보는 식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그렇게 흥미가 생기면 작가에 대해 검색도 해보고, 그러면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이게 됩니다.

제 기억을 떠올려 달라는 게 아니라, 보는 분이 자기만의 추억과 기억을 떠올려 주신다면 저는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이 아직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도 일단 보는 것에 익숙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음악도 그 사람의 삶을 알게 되면 더 깊이 빠져들듯이, 미술도 마찬가지거든요.


▲ 누군가의 영웅 112.0 x 145.0 cm, mixed media, 2025

Q.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할 예정인지?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아이스 페인팅을 계속 연구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체험 키트를 만들어 초등학생들도 경험해볼 수 있게 하고 싶기도 하고요.

조각 쪽으로는 좀 더 대형 작업을 하고 싶어요. 공공 미술 형태로 한글의 이미지가 공간에 새겨진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해외 전시도 더 많이 하고 싶은데, 아트 페어보다는 제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개인전 형식으로 한글과 신상철이라는 작가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저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네요. 동양화, 서양화, 조각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면서 진짜 3~40년은 해야 내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창조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HOT 연예 스포츠
지금 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