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예술적 영감을 받아 솔로 앨범에 육성까지 담아낸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단색화 거장 윤형근인데요.
묵직한 기둥과 기둥, 그 사이 여백만으로 공간을 압도하는 그림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화가 윤형근을 알아봅니다.
김정아 기자입니다.
[기자]
큰 붓으로 찍어 내린 묵직한 기둥과 그 사이로 열린 문, 윤형근 스스로 '천지문 회화'로 명명한 그림은 수직의 '색면'만으로 공간을 압도합니다.
기교를 뺀 붓질 위에 마르기를 기다렸다 덧칠하는 반복된 작업, 후기로 갈수록 번짐은 줄고 경계가 분명해지며 더 절제된 미학이 드러납니다.
[윤형근 : 인간이 바로 서야, 작품은 그 사람의 흔적이고 분신이니까 그대로 반영되는 거야. 가장 높은 품격을 가진 것이 가장 좋은 작품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품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윤형근!
단단하고 깊은 그의 그림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서울대 입학 이후 국립서울대 설립안 반대 시위로 제적됐고 이 전력 때문에 한국전쟁 중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 위기를 넘겼습니다.
전쟁 중 서울에 남아 있었다는 억울한 이유로 옥살이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잠시 순탄한 길을 걷는 듯했지만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1973년, 중앙정보부장이 개입된 부정 입학 문제를 제기했다 또다시 고초를 겪습니다.
[박수현 / PKM 갤러리 전시팀 과장 : 다음날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아서 투옥이 돼요. 그 이유가 평소 때 쓰고 다니던 모자가 레닌의 모자와 비슷하다는….]
이듬해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 화백까지 작고하면서 그의 그림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박수현 / PKM 갤러리 전시팀 과장 : 집에 칩거하면서 오직 작업에만 매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는데 그 때 일체의 색채를 덜어내고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확립하게 됐습니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 RM은 윤형근을 음악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미술품으로 가득한 집 주요 공간마다 윤형근의 그림이 걸렸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RM 소장품전에는 윤형근 작품이 무려 16점 출품됐습니다.
2022년 발매한 첫 솔로 앨범 '인디고'는 윤형근의 청색을 모티브로 삼았고 1번 트랙엔 아예 작가의 생전 육성을 담기도 했습니다.
삶과 예술은 따로 있지 않다는 철학으로 생전 작업실과 주거 공간을 같이 뒀습니다.
커다란 통창과 노출 콘크리트가 인상적인 1층 작업실에서 매일 묵직한 기둥을 세워 올렸고 목재와 한지로 채워진 고풍스러운 2층에서는 따뜻한 가장의 삶을 살았습니다.
서구와 한국의 미감이 공존하는 윤형근의 집은 묘하게 작가의 그림과 닮았습니다.
무심한 듯 깊고 단순하지만 세련된 그림!
고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 단색화 거목이 평생을 바쳐 도달하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윤형근 / 생전 인터뷰 : 욕심도 다 버리고, 모든 욕심 다 버려야 해. 천진 무구한 세계로 들어가야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데 안되는 거야. 그런데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그게 인간의 목적인 것 같아.]
YTN 김정아입니다.
영상기자 : 곽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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