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차별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던 해방 직후 일본 땅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보듬고 민족교육의 기틀을 세운 선구자가 있습니다.
"기술과 교육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는 신념으로 사재까지 털어 학교를 세운 故 조규훈 재일민단 중앙단장이 주인공인데요.
4월, 이달의 재외동포에서 그의 숭고한 생애를 조명합니다.
1923년, 17세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간 조규훈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1944년 가와사키 제철소에 방치된 조선인 징용공들의 참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비축해 놓은 쌀이 있으니 저녁에 우리 공장으로 오게.
그의 공장은 어느덧 징용공들의 식당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조규훈과 징용자 대표 60여 명은 민족의 결속을 다짐하는 '백두동지회'를 결성한다.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조국을 위해 힘쓰자.
[조 규 훈 / 前 재일민단 중앙단장 : 일본이 전쟁에 졌지만,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 남아서 그 기술을 몸에 익혀 돌아가서 나라의 재건을 위해 힘쓰지 않겠는가, 라고 하며 청년들을 모았지.]
"체계적인 기술 습득을 위해서는 학교나 기술훈련소를 세워야 한다" 1946년 건국공업학교, 건국고등여학교 설립 조 단장은 초대 이사장을 맡아 사재를 쏟아부으며 학교 운영에 전력을 다한다.
[염 명 인 / 백두학원 선생님 : 조규훈 씨가 금전적인 것은 전부 자신이 부담할 테니까, 교육에만 전념해 달라고 하여 학교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 민단과 조총련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받아들인 학교
[염 명 인 / 백두학원 선생님 : 가르치는 선생님도 배우는 학생도 모두 열성적으로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의 시작인 주일대한민국대표부 창설에 1,000만 엔 지원 가와사키중공업 부속 건물을 매입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안식처를 만들고, 병든 이를 치료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무료 급식을 주었다.
[조 재 완 / 조규훈 선생 손자 · 성균관대 교수 : 누구나 학교를 만들 수 있죠. 누구나 교육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교육의 방향과 정신을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재일 징용공의 아버지이자 조국을 세우고자 했던 교육자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故조규훈(1906 – 2000) 前 재일민단 중앙단장
YTN 최가영 (weeping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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