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세월의 무게만큼 오랜 시간 손때 묻은 의상과 소품을 매만집니다.
고운 한복부터 부채까지 하나하나 살피는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합니다.
시드니에서 동포들에게 한국무용을 전수해온 송민선 씨입니다.
송 씨는 부채춤과 화관무 창시자인 김백봉 선생으로부터 대학 시절 춤을 배운 '한국 무용가'입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안녕하세요. 호주 시드니에서 40년간 한국 무용을 지도하고 있는 송민선입니다.]
낯선 타향에서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건, 우리 춤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확고한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무대로 시야를 넓혀준 스승들의 가르침이 첫걸음이었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한국 춤은 한국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다', 그 당시에도 '한국 것이 세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이 계셨어요. 대학에서도 그때 68년도에 멕시코 올림픽에서 김백봉 선생님이 부채춤을 그때 민속 예술단이 참가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거를 좀 많은 사람에게, 서양인들한테 좀 알려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호주의 무용 교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한국 무용에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고,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거의 9학년 10학년만 되면 떠나요. 그러면 사람이 또 없어요. 금세 배워서 금세 공연을 하고 하는 그게 아니잖아요. 예술이라는 거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시간이 걸려서 열매를 맺는 건데 그 일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힘든 순간마다 송 씨를 붙든 건 무용이 동포들의 한민족 정체성을 지켜줄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한국인의 뿌리를 지켜주는 그런 그 어떤 정신적인 지주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저는 한국 무용이라고 생각을 해요. 나도 한국인이고 소수 민족이지만 내가 당당하게 한국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이제 공연을 나가게 되면은 사람들이 굉장히 박수 쳐주죠. 부러워하죠.]
실제로 무용은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유 하 진 / 한글학교 무용 교실 수강생 : 조금 더 과감해진 것 같아요. 성격이. 다른 것도 새로운 것도 다시 더 많이 시도하게 된 것 같고 자신감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윤 채 원 / 한글학교 무용 교실 수강생 : 성격이 더 외향적으로도 바뀌고 또 이런 거를 더 즐기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40년 동안 거쳐 간 제자만 700여 명.
이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까지 함께하는 문화 공동체로 확장됐는데요.
한국무용이 단순한 교육을 넘어 정체성을 지키는 통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겁니다.
[김 영 희 / 성인 무용 교실 수강생 : 최고의 선생님인데 이렇게 그만두게 되면 이 호주에서는 아마 계속 한국무용이라는 게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많이 들거든요.]
[장 서 영 / 성인 무용 교실 수강생 : 시드니에서 한국무용 하면 송민선, 그렇게 얘기할 정도로 진짜 존경스럽고 제일 제가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 세계민속축제 무대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린 것을 시작으로, 제자들과 함께 크고 작은 공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첫 무대를) 오페라하우스에서 섰던 것이 잊을 수가 없죠. 그때가 제일 아이들한테도 굉장히 아주 흥분된 시간이었고 저희도 굉장히 기뻤죠. 잊을 수가 없는 그 시간이었어요.]
이런 값진 경험들이 쌓이면서 무용은 고단한 이민 생활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이민 생활에서 지금 고달프고 힘들고 그럴 때 뭔가 하나 돌파구를 좀 찾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무용 연습을 통해서 비전을 줘요. 우리나라 문화를, 이 소수민족의 탁월한 문화를 가진 우리가 보여줘야 한다….]
의상과 소품 수백 점을 직접 만들며 무대를 이어온 40년의 세월.
이제 송 씨에게 한국무용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한인 차세대의 뿌리를 잇는 사명이 됐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송 민 선 / 한국 무용가 : 이제 바람이 있다면은 우리 것을 갖고 있되 뿌리는 흔들지 말고 거기에 현대 거를 접목을 시켜서 우리 한국 것이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이제 차세대들이 좀 해줬으면 그런 바람이 많죠.]
스승이 자신에게 길을 열어 주었듯이 이제 송 씨는 호주 땅에서 차세대들의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 한국무용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YTN 강현정 (khj8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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