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나란히 앉아 오래된 사진첩을 한 장씩 넘겨봅니다.
사진 속에는 화목한 가정의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아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입양인 그웬돌린 씨의 어린 시절 모습입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입양인입니다. 이름은 그웬돌린입니다. 저는 두 살 반에 벨기에로 입양되어 이곳에 왔습니다. 프랑스어도 못했고 전혀 다른 문화에서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던 어린 시절의 막막함,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웬돌린 씨는 이제 자신과 닮은 소외를 겪는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이 됐습니다.
장애 학생들을 지원하는 보조교사로 일하며 아이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제가 하는 일은 제 정체성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제가 다른 형태의 장애를 경험했던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지금은 입양인으로서의 경험을 삶의 원동력 삼아 살아가고 있는 그웬돌린 씨.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온전히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때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으로 한국을 멀리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한국이 나를 버렸다면, 나도 한국을 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살 무렵, 학교 역사 과제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그때 제네바에 살고 있었는데, 제네바 한국 영사관에 연락해서 한국 관련 책이나 자료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 전쟁'에 관한 책을 보내주었고,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뿌리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던 그 시절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저는 거울을 오래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닮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생 닮은 얼굴 하나 없이 살아온 그웬돌린 씨에게 딸은 처음으로 마주한 '나를 닮은 존재'였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딸이 태어났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드디어 나와 닮은 사람이 있구나. 이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닮은 얼굴만큼, 마음도 꼭 닮은 두 사람.
그웬돌린 씨에게 딸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응원군입니다.
[엠마 드론 / 그웬돌린 씨의 딸 : 엄마가 입양이나 한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가족을 통해 채워진 그 온기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더욱 깊어졌습니다.
2003년, 입양인 단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한국 출신 입양인들을 만난 그웬돌린 씨는 최근, 입양된 여성의 권리를 위한 단체에서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입양 여성들의 초상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기록과 인터뷰도 함께 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입양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리자 보고스 / 프랑스 입양 동포·K-Women 프로젝트 협회장 : 우리는 한국인이면서도 동시에 프랑스인입니다. 두 문화 사이에서 늘 나뉘어 있듯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위로이자, 우리의 뿌리와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웬돌린 씨에게 한국은 여전히 채워가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놓쳐버린 시간 속 일상을 이제라도 하나씩 배워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저는 음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한국인들의 손동작이나 방식은 모릅니다. 이런 것들은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요리 수업과는 조금 다른,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함께 배우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웬돌린 드론 / 프랑스 입양 동포 : 그것은 제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YTN 강현정 (khj87@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