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아름다운 도시, 말라가에 자리한 한 대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라가 대학교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전공의 안토니오 도메넥 교수입니다.
30여 년 전부터 무속과 불교, 유교를 넘나들며 한국의 사상을 깊이 연구해 온 교수는,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을 스페인어로 번역해 16세기 조선 선비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데요.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 교수 : 16세기 책이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우리 학생들에게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 교수 : 제가 아까 읽었던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뭔가를 공부하고 싶을 때 처음에 결정해야 한다고, 보통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안토니오 교수의 이러한 헌신 덕분에 말라가 대학교는 스페인 최초로 정식 한국학 전공이 개설된 대학이 되었는데요.
학과의 기틀을 잡기 위해 도메넥 교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윈도우 온 코리아' 프로젝트를 유치했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사회과학도서관 내 한국자료실에는 4천5백여 권의 한국 관련 자료가 마련돼 학생들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말라가 대학교는 이제 매년 수많은 교환학생이 양국을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교류하는 한국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 교수 : (1년에) 80명 정도가 말라가 대학교에서 한국으로. 100명 이상의 한국 학생이 말라가 대학교로 와요.]
스페인에 한국학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도메넥 교수를 지켜봐 온 동료와 제자들은 그의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루이스 보테야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 부교수 : 이제 한국에 가는 것은 더 이상 낯선 경험이 아닙니다. 그분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인호아 로드리게즈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과 학생 : 교수님은 알고 계신 게 정말 많아서, 저희가 교수님께 배울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기회 같아요. 가르치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 게 느껴지고, 수업도 서로 소통하면서 역동적으로 흘러가거든요.]
그런 그의 곁에는 학문과 예술의 지평을 함께 넓혀가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있습니다.
말라가 대학교에서 14년째 강의를 이어오고 있는 강은경 교수입니다.
극작과 연출을 전공한 강 교수는 매년 11월 말라가 대학의 '한국주간' 축제에서 강연과 공연을 해왔는데요.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소설 [채식주의자]를 연극 무대로 직접 연출해 올리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수년 전, 한국의 어느 '굿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은경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과 조교수 : 저를 가르친 토마스 리치오라는 선생님이 서강대학교에 (도메넥) 선생님을 아신다 하고, 그분이 굿을 보러 가는데, 혼자 가기 싫어서 학생들을 데리고 간 거예요. 굿판에서 만났어요. 그러고 나서 그게 인연이 된 거죠.]
한국에서 만나 스페인 땅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
서로 다른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토론하는 시간은 두 사람이 교감하는 방식입니다.
[강은경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과 조교수 :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떤 얘기를 해야 가장 좋을까, 갑자기 안토니오 선생님께서 왜 바리데기 얘길 하지 않느냐, 그래서 제가 정말 그때 머리에서 별이 탁 떴어요.]
부부가 함께 일구어낸 스페인 한국학의 결실은 한국 정부로부터도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7년, 도메넥 교수는 양국 간의 문화 교류와 한국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과 교수 : 대통령한테 가서 이런 상 받으니까 진짜 뭐랄까, 말로 쉽지 않아요. 근데 그게 영광이었어요.]
[강은경 / 말라가대 동아시아학 한국학과 조교수 : 스페인에서 점점 한국학이라는 위상을 더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힘을 받지 않았을까.]
도메넥 교수는 요즘 율곡 이이의 사상 연구를 넘어 또 다른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기이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야담집 [천예록]을 스페인어로 옮기는 일입니다.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 대학 동아시아학 한국학 교수 : (양반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조선 시대 때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관심이 있습니다.]
부부의 목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강은경 / 말라가 대학 한국학과 조교수 : 제가 가진 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스페인 사람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저는 계속해서 나누고 싶어요.]
[안토니오 도메넥 / 말라가 대학 동아시아학 한국학 교수 : 스페인하고 이렇게 다리 만드는 사람. 이런 일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면 좋을 거 같아요.]
두 나라의 마음을 잇는 도메넥 교수의 여정은 든든한 동반자 강은경 교수와 함께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YTN 최가영(weeping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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