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정 엄홍길 대장의 인생 17좌

2019.01.18 오후 07:39
■ 진행 : 이광연 앵커
■ 출연 : 엄홍길 산악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입니다. 인생의 17좌로 나눔을 위해서 노력해 왔던 엄 대장이 네팔 오지로 학교 15개를 완공하며 또 다른 목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일단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인터뷰]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고.

[앵커]
지금 듣기로는 강원도 태백에서 지금 서울 상암동으로 오셨다고 들었는데 태백에서 뭐 하시다가 오시는 길인가요?

[인터뷰]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강북구 삼각산 자락에 살고 있는데요. 오이동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 관내에 한 13개 중학교가 있는데 거기 학생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선발을 해서 매달 산행을 하고 있는데 올해 동계캠프 2박 3일로 태백산 1567m 정상을 갔다가 그리고 오늘 내려와가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앵커]
2박 3일이면 그제 출발하셔서 이제 오늘 도착하셨는데 저는 그 기사 보면서 왜 중1도 아니고 중3도 아니고 초등생도 아니고 왜 중2일까 궁금했거든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보면 우리들이 사회에서 학교에서나 특히 부모님들이 가장 걱정하고 염려하는 나이, 세대 아닙니까? 이른바 중2병.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린다는 중2병들. 중2병을 앓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2학년들을 선발을 해서 남녀 학생들을 선발해서 매달 저희가 1년 가까이 동안 매달 두 번째 주 토요일날 산을 서울 근교 산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제 여름철에 또 2박 3일 하계캠프도 갔다 오고요.

[앵커]
그렇군요. 주로 아이들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산행을 하시는 건데 좀 등반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의미는 있습니다만.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뭐가 제일 힘드셨어요, 구체적으로?

[인터뷰]
첫 활동을 할 때마다, 제가 올해 6년째 하고 있는데요. 매번 기수별로 한 해에 한 기수씩 하고 있는데 할 때마다 학생들이 처음 첫 산행할 때하고 횟수가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 학생들이 체력이며 정신력이며 행동가짐, 마음가짐, 자세들이 언어들이 변화하는 게 쫙 보입니다. 너무 그게 확연하게.

[앵커]
산만 올라 갔다 와도?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정상 올라갔을 때 자신이 스스로 어쨌든 성취감도 느끼고 또 자신감도 갖게 되고 또 산을 오르면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겪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우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동료 의식도 갖게 되고 배려심, 양보심, 또 상대방의 이해심도 생기면서 굉장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앵커]
아이들은, 학생들은 공부가 어렵다고 하나요? 등산이 어렵다고 하나요?

[인터뷰]
둘 다 어렵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나요, 혹시?

[인터뷰]
포기하는 학생들은 없어요. 제가 끝까지 다 이렇게 케어를 해서 올라가거든요. 시간은 물론 많이 걸리지만 어쨌든 함께 하나가 되어 같이 올라간다는 그런 생각을 심어주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생각을 갖고서 함께 오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낙오자 없이 항상 저희가 마지막까지 다 챙겨서 같이 올라갑니다.

[앵커]
그럼 2007년 히말라야 등반 16좌 완등 이후에 계속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프라든지 이런 활동을 하고 계신 건가요? 또 어떤 일 하고 계세요?

[인터뷰]
이제 학생들, 중학생들은 그렇게 하고 여름철 되면 저희가 또 전국 남녀 대학생 한 100여 명씩을 선발해서 매년 여름철 7월달에 가장 더울 때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서쪽 임진각까지 휴전선 동에서 서로 150마일 되거든요. 약 한 350km가 되는데 그것을 15박 16일 동안 걷는 대장정을 합니다.

[앵커]
지금 DMZ 말씀하셨는데 그럼 최근의 남북관계의 어떤 훈풍이 불면서 어떤 또 다른 엄 대장님만의 프로젝트나 계획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에 쉽게 말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런 말들도 있고 한데 북한 관련해서 어떤 좀 계획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인터뷰]
맞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서로가 남측과 북측이 서로 협의가 잘 돼서 진짜 평화적으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게 된다면 저는 물론 분단된 어떤 철책선을 경계로 해서 동에서 서로 이렇게 횡단하고 있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뭐 그렇게 정오를 한다든가 횡오를 했는데 여태까지 정오를 한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백두산을 대학생들 데리고 산을 오른다든가 하여튼 북쪽에 있는.

[앵커]
종단을 하고 싶다?

[인터뷰]
그렇죠. 그래서 백두대간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앵커]
학생들과 함께? 특별한 자격이 있을까요?

[인터뷰]
우선 자격은 제가 할 때 아무나 선발하는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체력 테스트를 기본적으로 하고 그다음에 어쨌든 면접, 면접을 보면서 상대방이 얼마만큼 이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어떤 자신감을 갖고 있나 하는 부분을 하거든요. 그래서 선발하게 됩니다.

[앵커]
아까 영상에도 나가고 예전에 이제 영광스러웠던 어떤 그런 등정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 모습 보시면 최근에도 산에는 오르실 것 같아요. 북한산 기슭에 살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계속 산에 오르게 하는 어떤 힘이 있습니까, 남다른?

[인터뷰]
저는 어쨌든 운명적으로 제가 어떤 살아온 과정 삶 자체가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운명적 관계를 맺으면서 이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태어났던 것 같아요. 제가 3살 때부터 도봉산이라는 산골짜기에 살면서 산과의 어떤 운명이 시작돼가지고 산을 오르내리면서 40여 년 세월을 산에서 살면서 어쨌든 그 이후로 많은 산을 오르면서 또 제가 어쨌든 히말라야를 꿈을 꾸게 되고 히말라야 8000m에 도전하게 됐고 오늘날까지 어떤 산과 더불어 이렇게 인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앵커]
최근에는 오늘은 이번에는 태백산 갔다오신 거고 북한산 이렇게 국내 위주로 그러면 최근에는.

[인터뷰]
그렇죠. 최근 국내에서는 꾸준히 산행도 가고 가끔씩 행사를 해서 산행 가기도 하고 청소년 데리고 산에 가기도 하고 그러면 이제 네팔을 자주 나가게 됩니다.

[앵커]
말씀하신 김에 네팔에 자주 가는 이유 직접 소개해 주시죠.

[인터뷰]
제가 2007년도에 8000m 16좌를 성공하고 나서 산을 내려와서 그런 생각을 한 겁니다. 물론 그전부터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가졌지만 제가 16좌를 성공하고 산을 내려가서 살아가게 된다면 제가 꼭 히말라야가 저에게 도움을 주신 곳을 제가 나누면서 베풀면서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꿈을 이루고 살아서 산을 내려왔지 않습니까? 히말라야가 제가 꿈을 이루게 해 주고 제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신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2008년도에 5월 18일에 재단을 설립해서 제가 다녀왔던 히말라야 오지 그 산자락에서 산에서 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하고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자라는 어린이들을 볼 때 이들이 가난의 고리를 벗어나고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바로 배움만이 이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어떤 소망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학교를 짓기 시작한 겁니다, 2010년도부터. 교육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앵커]
지금 제가 듣기로는 16개 학교가 목표인데 이미 15개 학교는 지어진 상황인 건가요?

[인터뷰]
맞습니다. 2010년도서부터 제1학교를 건립을 하기 시작해서 현재 지금 15개 학교를 작년 12월달에 완공을 했고요. 또 제가 처음 히말라야 8000m 도전했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자락에 3450m에 마을 그쪽 셰르파족을 고산족인 셰르파족들의 고향인데 그쪽에 조그마한 병원도 하나 지었고 그렇습니다.

[앵커]
그럼 네팔인들은 우리 엄 대장님을 당연하겠습니다마는 다들 알고 계시겠네요.

[인터뷰]
아는 사람도 없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앵커]
뭐라고 부르나요? 현지에서?

[인터뷰]
네팔 현지에서는 엄 사부.

[앵커]
엄 사부님. 엄 사부로 불린다. 또 학교 얘기도 하셨지만 듣기로는 셰르파의 유가족들도 챙기는 것으로 많이 보살피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부분도 직접 말씀해 주세요.

[인터뷰]
제가 그동안 히말라야 8000m를 도전한 세월이 22년 걸렸고요. 38번을 제가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과정에 제가 10명이나 되는 동료를 히말라야에서 잃었거든요. 그중에 셰르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을 이렇게 동료들 생각할 때 제가 꼭 이렇게 성공을 하고 살아서 산을 내려가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내가 꼭 진짜 이 아이들을 위해서 이 자녀들을 위해서 이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뭔가 보탬이 되도록 꼭 일을 해야겠다.

그래서 이제 제가 이런 재단을 설립하면서 그런 셰르파들, 자녀들. 또 히말라야 등반 중에 꼭 저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등반 중에 외국팀이라든가 국내 한국팀 같이 등반을 하면서 운명을 달리한 셰르파들의 유가족이나 자녀들도 장학금이라든가 생활비 지원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면 지난해에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였던 김창호 대장, 이제 고인이 되셨는데 그분 돌아가셨을 때도 워낙에 또 우리 엄 대장님한테 인터뷰 요청도 많았고요. 또 남다른 인연도 있었을 것 같고 지금 다시 생각하면 또 어떻습니까? 고 김창호 대장.

[인터뷰]
진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고요. 너무 안타깝고 참 자신의 어떤 끊임없는 도전을 위해서 어떻든 큰 목표를 세우고서 도전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짧게 인생을 삶을 살고 간 것에 대해서 좀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앵커]
또 어려운 질문 드렸는데요. 안 드릴 수도 없는 질문이고 워낙 인연도 깊으시고 또 동료 한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동료도 잃기도 하고 때로는 등반에서 실패도 많이 겪으셨는데 엄 대장님에게 실패란 어떤 겁니까?

[인터뷰]
저는 제가 이렇게 8000m 38번 도전하고 16좌를 성공했는데 저는 성공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저는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이 있지 않나. 그럼이로 인해서 성공이 값지지 않나 생각하는 겁니다. 만약에 저 8000m 16좌를 성공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뜻하는 대로 순조롭게 잘 진행됐다고 하면 이런 성공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제가 솔직히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많은 실패와 좌절과 고통과 그런 어떤 시련의 시간들이 또 동료를 잃었을 때 그 너무나 피눈물 나는 고통의 시간들이 오히려 저에게 어쨌든 목표를 이루겠다는 신념을 더 불태우고 불굴의 어떤 도전정신을 갖게끔 하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더욱더 강인한 존재로 만드는 그런 에너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실패가.

[앵커]
그렇군요. 연이어서 좀 연결되는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얘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하다. 조금 더 부연설명해 주세요 직접 좀 듣고 싶은 말씀 중 하나인데.

[인터뷰]
맞습니다. 진짜 물론 올라가는 거 상당히 중요하죠. 정상에 올라섰다고 해서 그런데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결국에는 얼마큼 하산을 잘하냐, 잘 내려오느냐, 마무리를 잘 짓느냐가 진정한 성공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나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 자리가 영원한 거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내려올 때 잘 내려와야지만 그 성공의 가치도 높아지는 것이고 또 진정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산에 오를 때 보면 오히려 정상에 오를 때보다도 하산할 때 사고가 많이 납니다. 그만큼 순간적으로 긴장을 늦추게 되고 정말 순간적으로 체력도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다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훨씬 더 올라갈 때도 물론 힘들지만 하산할 때도 굉장히 위험하고 힘든 상황이 많이 발생됩니다.

[앵커]
지금 등산할 때, 하산할 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런 내용 포함하셔서 좀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국내의 등산학교 초대 교장으로 임무를 맡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기관인가요?

[인터뷰]
산림청 산하의 국립 국가에서 이제 그것을 지어가지고 산림청에서 지어서 운영 관리하는 국립등산학교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 산악인들의 염원이자 바람이었는데 그것이 작년 11월달에 개교를 했어요.

[앵커]
그럼 어떤 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건가요?

[인터뷰]
입학은 대한민국의 남녀노소 누구나.

[앵커]
저 같은 일반인도 갈 수 있는 건가요?

[인터뷰]
그럼요. 산을 좋아하시고 자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일반 초보에서부터 일반 초보적인 등산 교육서부터 일반 초급, 중급, 상급까지 해서 전문적인 어떤 교육까지 해가지고 청소년들 교육도 있고 일반인 대상도 있고 전문가들 대상도 있고 다양한 어떤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거의 끝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계산을 해 보니까 2007년에 히말라야까지 완등을 하시면서 로체샤르였나요? 거기 16좌 완등을 하신 이후에 시간을 따져봤더니 12년 정도 시간, 쉽게 말해 산 밑에서의 산 아래라고 해도 될까요, 표현이? 그 시간이 10여 년 됐는데 굳이 그 전과 2007년을 기점으로 이후를 비교한다면 삶을 어떻게 나누고 계신가요? 아니면 똑같다고 보시나요?

[인터뷰]
그때는 실질적으로 목숨을 걸고 8000m 16좌에 도전한 것이고요. 산을 내려와서 말씀하신 대로 제2의 인생 17좌를 도전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위험한 일은 아니거든요. 목숨을 걸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역시도 저도 제가 매번 학교 하나하나를 지을 때마다 또 엄홍길 희망 재단을 설립해서 이런 하고자 하는 일을, 네팔 지역의 교육사업이라든가 유가족지원사업이라든가 국내 청소년사업이라든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연을 통해서 산을 통해서 여러 가지 하는 일에 대해서 모든 부분들이 재단에서 여기서 많은 후원자분들이 성원해 주신 분들이 또 많은 도움을 주신 그런 분들의 힘이, 염원이, 기원이 함께 합쳐져서 그분들의 어쨌든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이 다 이렇게 모아져서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17좌 역시도 8000m 산을 오른다는 그런 오를 때의 마음가짐 자세를 가지고 또 신념을 가지고 제가 지금 도전하고 있습니다.

[앵커]
다시 오른다는 마음이 또 귀에 들어옵니다.

[인터뷰]
그렇죠. 맞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가 산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대담이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엄홍길 대장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장님.

[인터뷰]
감사합니다. 나마스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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