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10월 24일 (목)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이현태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때는 2011년 추석쯤이었을 겁니다. A 씨는 연휴를 맞아 홀로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나게 됐죠. A 씨는 필리핀 여행을 계획하던 중 여행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B씨를 알게 됐습니다. 필리핀 현지를 잘 안다는 B씨와 함께한다면 훨씬 더 재밌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죠. 이 두 남성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B 씨의 성격이 워낙 수더분하고 변죽이 좋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하죠. 그렇게 두 사람은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진 후 B 씨가 준비한 차량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친근하기만 했던 여행 메이트에서 순식간에 납치범으로 돌변해버린 B씨. B씨는 지금까지도 희대의 필리핀 악마로 불린다고 하는데 오늘 사건 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이현태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이현태: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이현태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예전에 저희 방송에서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현지인들이 저지르는 범죄 사건들 이야기 해봤는데 오늘 나눌 이야기는 한국인이 필리핀으로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을 표적으로 하는 그런 사건들인 거죠?
◇이현태: 네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2008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범인들이 총 19명을 납치하고 그중 5명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주범은 최세용, 김성곤, 김종석이라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최세용은 이 조직의 두목으로서 범행을 계획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김성곤은 부두목, 그리고 김종석은 행동대장으로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원화: 이 사람들 이름 저도 들어본 것 같거든요?
◇이현태: 이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최세용 일당은 필리핀 악마라고 일컬어지며 세간의 많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훗날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도 만들어지고 여러 미디어에서 소개가 됐을 만큼 많은 이슈가 됐었죠. 한동안 필리핀 한국인 납치 사건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바가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필리핀 조폭이 아니라 바로 한국인이었던 최세용 일당이 자리 잡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루기에 앞서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그 사건부터 짚고 넘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2007년 7월 9일에 벌어진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건인데요. 이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소재 오피스텔에 위치한 한 사설 환전소에서 25살의 여직원이 무참히 살해되고 금고에 있던 약 1억 8500만 원 상당의 돈이 강탈됐던 사건입니다. 이날 피해자는 평소처럼 아침 8시경에 출근했습니다. 그날 피해자가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오토바이 헬멧을 쓴 첫 번째 고객이 찾아왔고, 그 고객이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두 번째 고객이 들어옵니다. 그때 문이 닫히고는 갑자기 그 두 고객들이 순식간에 강도로 돌변해서 피해자를 제압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를 금고가 있는 사장실로 끌고 들어가서는 케이블타이로 손을 결박한 후 그 결박한 손을 금고 손잡이에 묶어 도망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금고를 열게 해서 그 안에 들어있던 돈을 모두 챙겼죠. 그리고는 피해자의 목을 칼로 그어 살해한 후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이후 평소보다 늦게 출근한 사장이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책상 밑에 쓰러져 있는 직원을 발견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원화: 환전소 사장님이 조금만 더 일찍 출근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
◇이현태: 근데 이게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였기 때문에 그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범인들은 범행 며칠 전부터 환전소 사장의 행적을 계속 미행하다가 사장의 차량을 확인하고 범행 전날 타이어에 펑크를 내서 출근을 지연시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침입 전에 CCTV 위치를 파악해 놓고 얼굴이 찍히지 않게 움직이는 듯 매우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망을 보는 공범도 있었던가 하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서로 시간차를 두었고, 오고 가는 루트도 서로 다르게 했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전히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이원화: 그냥 무턱대고 아무 환전소나 들어간 게 아니라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행이었던 거군요.
◇이현태: 그렇죠. 범행 장소로 환전소를 선택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 최세용과 김종석이 일본에서 재일교포 자산가 할머니에 대한 강도를 했고, 이때 10억 원 상당의 엔화를 들고 왔었는데 그때 이 안양환전소의 존재를 알게 되어서 표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범행 이후 최세용 일당은 필리핀으로 도주를 했고, 거기서 또 다른 범행을 계획하고 저지르게 되는데, 이 환전소 사건에서 취득한 돈이 앞으로 있을 범행의 종잣돈이 되었던 것이죠. 또 이들은 항상 한국인만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물론 그 이유는 한국인이 타깃으로 삼기 가장 쉬운 면도 있었지만 큰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이원화: 굉장히 지능적이다 싶은 게 필리핀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의 불안 심리 이런 걸 이용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이현태: 네 맞습니다. 이들의 납치 수법은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했습니다. 우선 필리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동행을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쪽지를 보내거나 동행을 구하는 관광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이후 현지에서 그 관광객을 만나 친근한 척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아는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술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라고 한 뒤 서로 술을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다지죠. 그리고 이 첫 번째 술자리가 끝난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며 차량을 태우는데 이 차량 안에서 본격적으로 납치가 시작됩니다. 차에 탄 즉시 ‘넌 납치됐다. 돈을 내든지 죽든지 선택해라’ 라고 협박하는 것이 최세용 일당의 주된 수법이었어요.
◆이원화: 필리핀이 총기 허용 국가다 보니까 총을 들고 협박을 하면 사실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라고 해도 섣불리 반항하기 힘들기 때문에 납치 건수가 더 많아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현태: 그렇죠. 실제로 납치 피해자 중에 덩치도 크고 힘에 자신 있던 사람도 있었는데 좁은 차 안에서 총을 꺼내드니 순순히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납치된 피해자들은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택가로 끌려가게 되는데, 여기서 피해자들은 손에는 수갑,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진 채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후 범인들은 피해자들한테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필리핀 현지 여성과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거나 마약을 강제로 투여하는 방법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이원화: 납치당한 게 아니라 필리핀 현지에서 문제가 생겨서 돈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돈을 뜯어냈던 거군요.
◇이현태: 그렇습니다. 이들은 필리핀 현지법상 간통이나 강간 등의 범죄가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간통죄는 징역 6년형에 처해질 수 있고, 성매매는 징역 20년, 그 대상이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무기징역까지 처해질 수 있도록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최세용 일당은 이런 필리핀의 법체계를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목적으로 사용했던 거죠. 한편 일부 피해자들 중에는 끝내 살해당하거나 여전히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운이 좋으면 풀려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풀어주면서 친한 형 행세를 하며 공항까지 데려다 줬는데 공항에서 ‘네 여동생 이쁘더라. 나중에 한국에서 같이 만나자, 너네 직장이 어딘지 다 알고 있다.’라면서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공포심을 주는 방법으로 입막음을 했습니다.
◆이원화: 말씀해 주신 대로라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신상까지 이 범죄자들이 다 알고 있었다는 건데 내통하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정보를 알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잖아요.
◇이현태: 생존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최세용에게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특정인의 전과 여부를 전화 한 통화로 조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노트북으로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손쉽게 알아내 신용불량자라는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하죠. 피해자들의 민감한 개인 정보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누군가와 내통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입니다. 하지만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이 정보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겁니다. 용의주도한 이 범인들의 특성상 신상조사 결과 납치한 피해자가 풀어줘서 안 될 것 같은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풀어주지 않고 그대로 살해했던 거죠. 실제로 생존한 피해자들을 보면 이 범인들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던 평범한 소시민들이거나 이미 수배 중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수배 중인 사람이 수사기관에 스스로 찾아가 신고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던 거죠. 반면 실종자들은 공군 소령 출신과 공무원 출신이었습니다. 범인들은 이들의 인맥을 고려했을 때 자칫 풀어줬을 경우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실종자들 중에는 항공사 직원의 가족도 있었습니다. 항공사와 연관된 피해자라면 위조 여권으로 돌아다니는 자신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원화: 이 사건들 같은 경우는 원한도 아니고 살인을 속된 말로 즐기는 경우도 아니었고, 정말 철저하게 돈만을 노린 범죄였잖아요. 그런데 왜 살인까지 가게 됐을까? 이 부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이현태: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안양 환전소 살인 사건 현장을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양 환전소 사건에서 피해자의 목에는 오른쪽 귀 밑에서부터 10cm가 넘는 상처가 남았고, 우측 경동맥 경정맥 기도가 완전히 절단되고 뼈까지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피해자를 앞에서 공격했다면 목에 그렇게 긴 상처가 남을 리는 없고, 뒤에서 공격했다면 목을 긋는 게 아니라 등을 찔렀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처는 범인들이 피해자를 책상에 엎어놓고 목에 칼을 힘껏 찔러 넣어서 당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를 보고 경찰은 범인이 자기 과실을 위해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처형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도주하려는 걸 막으려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처형을 했다는 거죠. 한편 이 안양환전소 사건으로 인해서 최세용 일당은 중요 국외도피 사범으로 공개수배가 됐고, 수사당국은 이들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원화: 아무래도 출국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쉽지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이현태: 실제로 안양 환전소 사건이 있던 때로부터 4년이 지난 2011년 가을이 되어서야 최세용이 태국에서 붙잡혔고, 이때까지도 이들의 범행은 계속됐습니다. 최세용이 태국으로 도망갔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태국 당국의 수사 협조를 부탁합니다. 이후 최세용의 아내가 태국을 여러 차례 입국했다는 것을 파악했고, 태국 검문소 이민국 직원들이 그 아내의 신원을 확인해 몰래 뒤를 밟게 됩니다. 드디어 태국 치앙마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서 최세용과 아내가 마주 앉았을 때 이민국 직원들이 최세용에게 수갑을 채웠습니다. 이렇게 두목 최세용이 붙잡히자 그 일당은 머지않아 차례대로 검거됐습니다.
◆이원화: 범죄자들이 한국인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고 심지어 체포도 해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궁금하긴 하거든요.
◇이현태: 태국에서 붙잡힌 최세용은 태국 법원으로부터 여권 및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9년 10개월을 선고받고 형을 살게 됩니다. 한편 김종석은 유치장에 있던 중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김성곤은 2011년 12월에 검거되고 한 차례 탈옥을 했으나 다시 체포돼서 다시 또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을 하게 됩니다.
◆이원화: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10건도 훌쩍 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이 정도면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현태: 최세용은 안양 환전소 사건에 대한 강도치사 혐의가 인정돼서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있었는데, 이후 항소심에서 필리핀 현지에서 벌어진 2건의 강도 살인과 수십 건의 납치 혐의가 병합이 돼서 무기징역이 선고됐습니다. 이는 2017년 9월 대법원에서 확정이 됐고요. 이 재판 이후 법무부 장관은 태국에 친서를 전달하는 등 태국 법무부와 긴밀히 협력을 해서 최세용을 임시 인도에서 한국에 최종 인도하는 것으로 변경을 했습니다. 태국으로 다시 송환될 필요 없이 국내 교도소에서 계속 형을 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은 최세용이 안양 환전소 사건에 대한 혐의가 강도 살인이 아닌 강도 치사로 인정됐다는 것입니다. 강도 살인죄가 인정되려면 살인의 고의가 입증돼야 하는데, 재판부는 최세용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강도 살인죄 대신에 강도치사죄를 적용했던 겁니다. 칼을 들고 환전소에 들어간 건 김성곤이었고, 그 당시 최세용은 환전소 밖에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애초 범행을 모의할 때도 여직원을 죽이려는 의도까지는 없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연쇄 납치 살인 사건 살펴봤습니다. 정말 황당한 것이요. 이 일당들 필리핀 현지에서 주말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음식을 나눠주는 등 아주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하죠.이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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