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폐를 앓는 성인 자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KBS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화재 보험사가 발달장애인 A(25) 씨의 부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부모가 공동으로 약 4억 3천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사건은 지난 2023년 10월, 자폐성 장애가 있는 A 씨가 서울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종이상자에 불을 지르면서 시작했다. 이 불로 분리수거장이 전소되고 아파트 외벽이 그을렸으며, 일부 주민이 연기를 마셔 다치는 피해가 발생했다.
형사 재판에서 법원은 A 씨가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도, "성인 자폐인을 돌보는 책임을 부모에게만 지울 수 없으며 국가와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민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성인 발달장애인 부모를 정신건강복지법상 '보호의무자'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감독 의무 위반의 책임이 있는지였다. 부모 측은 발달장애가 정신질환과 구분되는 개념이며 성인 자녀의 행위를 부모가 연좌제처럼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발달장애인 역시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에 해당하며, 따라서 부모는 법적 보호의무자로서 자녀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사건 발생 전 A 씨가 이미 쓰레기에 불을 붙이려 하거나 흉기를 들고 배회해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부모가 자녀의 범죄 위험성을 알고도 감독을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부모가 자녀의 돌발 행동을 24시간 내내 완벽히 제지하기는 어렵다는 점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도 있다는 점을 참작해, 전체 손해액의 30% 수준으로 배상 책임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산출된 배상액은 약 4억 3천만 원이다.
당사자인 부모 김상현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발달장애는 입원한다고 치료되는 병이 아닌데 결국 영원히 가둬두라는 뜻이냐"며 막막함을 토로했다. 장애인 단체들 역시 이번 판결을 두고 "2026년 대한민국에 돌아온 현대판 연좌제"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김 씨 측과 보험사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이번 사건은 2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성인 자녀의 삶과 부모의 책임,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상급심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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