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응급실 갔다" 쪽지 남기고 잠적...본사 직원의 상습 '배달 먹튀범' 추적기[와이파일]

2026.05.12 오후 05:40
치킨 주문자 잡아라…배달기사로 위장한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
응급실 간다더니…문 앞에 쪽지 남기고 사라진 '배달 먹튀범'
피해 점주들이 모여 만든 '배달 거지방'
'만나서 결제' 노렸다…주소까지 속인 치밀한 수법
"소액이라 어렵다?"…더딘 경찰 수사의 현실
수배 중에 '배달 먹튀'…대담한 범행
■치킨 주문자 잡아라…배달 기사로 위장한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

지난달 29일, 경기 화성시 병점동에 있는 오피스텔 복도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 최형준 씨는 배달 기사인 척, 한 손에 치킨을 든 채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답은 없었고, 최 씨는 현관문 앞에 치킨을 내려놓은 뒤 근처에 몸을 숨긴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일단 용기 내 찾아오긴 했는데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솔직히 배달 기사님이 아니라 제가 기다리고 있는 걸 눈치채고 흉기 들고나오면 어떡하나 두려웠어요. 저 결혼식 며칠 앞둔 새신랑이란 말이에요."
- ○○치킨 본사 직원 최형준 씨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현관문이 열린 순간, 최 씨는 다급하게 문틈으로 발을 집어넣어 남성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최 씨와 대면한 남성의 태도는 황당했습니다.

치킨과 사이드 메뉴, 1.5ℓ 콜라까지 4만 원 넘는 이번 주문뿐 아니라, 이전에 계산하지 않은 것까지 다 지불하라는 요구에 돈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겁니다.

"지금 당장 가진 돈이 5만 원밖에 없어요,"
"전세 사기를 당해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 피의자 A 씨

그런데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이 직접 잠복까지 하며 주문자를 붙잡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응급실 간다더니…문 앞에 쪽지 남기고 사라진 '배달 먹튀범'


오피스텔 앞에 붙여진 메모 (시청자 제공)

최 씨가 붙잡은 남성은 다름 아닌 상습 '배달 먹튀범'이었습니다.

피해는 수년 전부터 이어졌는데, 특히 지난 3월부터 본격화했습니다.

경기 수원 등 경기 남부 일대 매장에서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는 주문이 반복됐습니다.

음식을 직접 받고 결제하겠다는 주문에 배달을 가보면 현관문 앞에는 늘 비슷한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급히 응급실에 가셔서 저도 가봐야 하는 상황이라 쪽지 남깁니다. 계좌번호 주시면 문자 드릴게요."

배달 기사들은 번번이 문 앞에 치킨을 두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건 수신 대기음뿐, 점주들은 끝끝내 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피해 점주들이 모여 만든 '배달 거지방'


피해 점주들 SNS 단체 대화방 사진 (시청자 제공)

"수도 없이 주문이 들어오고 찾아가도 답이 없어요."

"쪽지에 있는 전화번호에 연락해도 관계없다는 사람이라는 답변만 받았어요."

"이젠 자사 앱 주문만 들어와도 가슴이 덜컹ㅜㅜ 노이로제 걸릴 듯합니다."
- 피해 점주 SNS 단체 대화방 내용 중

본사 직원 최형준 씨가 피해 점주들을 모아 만든 SNS 단체 대화방, 이른바 '배달 거지방'에는 답답함과 분통이 담긴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올라왔습니다.

음식값을 떼인 치킨집은 경기 화성, 동탄, 수원 등 경기 남부 일대에서만 9곳.

지난 1년간 확인된 피해액만 150만 원에 달했습니다.

그제는 다른 지점이 당하고, 어제는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지점이 또 피해를 입었습니다.

취재진은 직접 이 대화방을 들여다보며 왜 점주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만나서 결제' 노렸다…주소까지 속인 치밀한 수법


범인이 주문했던 영수증 사진 (시청자 제공)

남성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결제 기능이 사라진 일반 배달 플랫폼 대신, '만나서 결제'가 가능한 프랜차이즈 자사 앱만 골라 주문했습니다.

특히 주문이 몰려 정신이 없는 저녁 시간대를 노렸습니다.

"바쁠 때 소스 (바르는 작업이) 밀려 있어서 소스 바르다가 주문 들어오면 받으러 가는데, 그 잠깐 시간 동안 받을 때까지 주문 넣어요. 네다섯 번씩. 돌아버려요."
- ○○치킨 점주 A 씨

"오늘은 바쁜 시간에 들어와서 모르고 배달해 줬네요. 그런 때에는 진짜 안 보여서 수락을 누르게 된단 말이에요."
- ○○치킨 점주 B 씨

반복되는 범행에 인근 매장에서 주문을 막기 시작하자 수법은 더 교묘해졌습니다.

"[현금 후불/40,500원] [요청사항/○○오피스텔 ○○호로 배달 바람. 추가 비용 지불]"

자신이 사는 곳과는 차로 20분 넘게 떨어진 다른 지역 매장에 가짜 주소로 주문을 넣은 뒤, 요청 사항에 추가 배달비를 낼 테니 자신의 집으로 가져다 달라며 실제 주소를 적어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점주 중에는 주문 과정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연락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6천, 7천 원을 더 주면서 배달해 달라는 게 이상하니까 전화했는데 아예 안 받았던 거죠. 근데 이렇게 따지면 모든 손님을 다 의심해야 하니까 일단 음식을 보내 드린 건데 이런 사달이 났어요."
- ○○치킨 점주 C 씨

하지만 주문자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점주들은 모든 손님을 일일이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음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액이라 어렵다?"…더딘 경찰 수사의 현실

본사 직원이 직접 범인 추적에 나선 데에는 반복된 피해에도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한 현실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한 건 한 건은 금액이 적다 보니 피해를 모아서 한꺼번에 신고했으면 하는 분위기였어요."
- ○○치킨 점주 A 씨

실제로 경찰에 피해를 신고한 건 피해 업소 9곳 가운데 3곳뿐이었습니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 금액 역시 10만 원 남짓에 그쳤습니다.

생업에 바쁜 점주들이 일일이 신고와 대응에 매달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수사 과정의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습니다.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갈 순 없다고 하더라고요."
- ○○치킨 점주 C 씨

실제로 경찰에 확인해 보니,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수사 과정에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건 강제수사잖아요. 강제수사를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영장이 필요한데, 이 경우에는 현행범이라든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한다든가 그 판단에 속하지 않으니까…."
- 경기 화성동탄경찰서
■수배 중에 '배달 먹튀'…대담한 범행

"그놈 누군지 특정됩니다. 제가 2년 전인가 사기로 신고해서 벌금 맞았던 놈입니다."
- ○○치킨 점주 B 씨

본사 직원의 잠복 끝에 검거된 남성은, 알고 보니 지난 2023년에도 같은 수법의 범행으로 벌금 100만 원 약식 명령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또, 벌금을 내지 않아 수배 중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대담하게 '배달 먹튀'를 이어갔고, 햄버거와 떡볶이 등 다른 배달 음식점을 상대로도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저희 매장 옆 햄버거 프랜차이즈 사장님도 오늘 당하셨습니다."
- ○○치킨 점주 D 씨

"집 앞에 가보니까 우리 브랜드만 있는 게 아니에요. 햄버거, 떡볶이 배달 음식 비닐봉지가 한가득 쌓여있었어요."
- 본사 직원 최형준 씨

점주들이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민사소송까지 제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배달 한 건 허투루 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을 노린 '상습 먹튀', 피해는 오롯이 점주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이수빈[sppnii2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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