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제, 8월 4일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은 커녕 오히려 이 고노 담화를 '자학사관'으로 폄하하며 수정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위안부의 참상을 알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미국 글렌데일시에 세워져 화제입니다.
위안부 소녀상, 일명 '평화의 소녀상'의 미국 글렌데일시 건립을 직접 추진하신 분입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대표 스튜디오에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직접 제막식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일본 정부측에서는 계속 왜 미국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느냐, 그건 한국과 일본의 문제라고 계속 국제여론을 방해하는 활동을 해 왔어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에 평화비가 세워진다는 것 자체는 위안부 문제가 중요한 무시할 수 없는 여성인권 문제라든 것, 그리고 어느 누구가 생각을 해도 이 위안부 문제는 꼭 청산해야 될 그런 중요한 문제다라는 것을 미국사회조차 인정한 것이라는 그런 감회를 느꼈었습니다.
[앵커]
제막식에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직접 참석을 하셨었는데 보기만 해도 뭉클하더라고요.
어떠셨나요?
[인터뷰]
할머니께서 끝나고 이렇게 숙소로 돌아오시면서 내 동생을 저곳에 두고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이상하게 너무 아프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현직 기자들이 질문하는 인터뷰에 대해서도 너무나 기쁘다, 내가 잘 살아나왔다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반은 지금 한이 풀린 것 같다,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기억해 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는그런 의지가 담겨있는 것 같아서 더 기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앵커]
글렌데일시에 이런 소녀상이 설립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미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1992년부터였어요.
저희 동포들이 시작을 해서 위안부 문제를 알려왔고 그리고 특히 2007년에 우리가 다 알고 있다시피 미국 하원에서 7월 30일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서 재발방지에 힘쓰라는 결의가 채택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거죠.
사실 1년 전에는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에서 의회를 개최해서 7월 30일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선포를 했었습니다.
굉장히 의미있는 날이었죠.
그 선포한 다음 1년인 7월 30일에 평화비를 제막한 거죠.
[앵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추진된 지 약 2년 만에 제막식이 이루어진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일본의 반대가 심했죠?
[인터뷰]
글렌데일시 한 의원은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하루에 300통의 메일을 받았다고, 일본의 LA총영사가 의회를 방문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시의회에서 평화비 디자인을 선택하는 회의가 열릴 때는 정부측에서 적극적으로 조직해서 약 100명의 일본인들이 그 시의회 작은 의회 회의실에 참석할 정도로 일본측에서 굉장히 반대가 심했었죠.
[앵커]
반대한 이유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위안부 문제는 그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죠.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제가 아니었다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미 일본 정부가 사죄도 했고 배상도 다 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렇게 세우느냐, 미국에 세워질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런데 그에 대해서 사실 글렌데일 시의원들이 굉장히 피해자들 입장에서 인권 옹호를 하는 그런 발언들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 사실을 지켜보면서 김복동 할머니가 굉장히 감명을 받았고요.
특별히 어떻게 역사를 모르는 것을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미국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겠다는 기억하겠다라는 이런 행동들에 대해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반대를 할 수 있느냐라는 오히려 일본의 역사인식에 몰역사에 대한 그런 비판과 규탄이 높았던 그 의회였다라고 지역에 있는 한인들이 저희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앵커]
그런데 일본의 반대를 하는 행동들이 미국 글렌데일시 의회뿐 아니라 정대협 사무실에도 많은 전화가 왔었다면서요?
[인터뷰]
저희 수요일마다 전화오는 것은 그냥 평상시처럼 하는 일이고요.
전화를 해서 한국을 우리는 증오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박물관에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팻말을 꽂아놓고 가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떤 때는 그냥 하얀 종이에 팩스로 너희들이 일본에 오는 순간 목숨을 각오하라는 그런 항의문이 오기도 하고 제가 실제로 일본에 집회를 가게 되면 바로 앞에서 위안부는 단지 그런 매춘부일 뿐이었다는 발언들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욕설을 해요.
그러니까 그게 지금 일본과 위안부 피해자드리마주서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지금 어떤 제2, 제3의 그런 가해를 당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보죠.
[앵커]
싱가포르에도 이 소녀상을 세우려다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인터뷰]
참 안타까운 일인데요.
독일에 대해서 너희들 잘못하고 있다,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하고 있나요.
그건 독일이 과거 잘못했던 역사에 대해서 인정하고 사죄하고 지금도 총리가 되면 늘 그런 과거 역사에 대한 잘못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일본도 그렇게 한다면 참 사이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데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역사를 막으려고 하는 아까 처음에 말씀하셨듯이 고노담화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마치 자학적인 것처럼 그렇게 국민들에게 비치니까 역사가 거꾸로가고 또 관계는 평화를 위협하는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고 그러는 거죠.
[앵커]
어쨌든 미국 글렌데일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국외에 세워진 첫 위안부상 아니겠습니까?
더 의미가 있을 텐데 현지 반응은어떻던가요?
[인터뷰]
그날 사실 한인들 중심으로 참석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일 저녁에 미국의 주요TV 방송에서 다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만큼 그동안 미국사회 기림비가 세워진 건 다 아시죠?
그런데 이번에 평화비가 세워졌잖아요.
그 평화비가 세워졌다는 것 자체는 그냥 어떤 추모하는 의미를 넘어서서 할머니들의, 일본군 위안부들의 역사가 옮겨진 거잖아요.
13세에 끌려갔을때그때부터 그리고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현지의 보도도 뜨거웠고요.
글렌데일시의 시민들이 정말 많이 참석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 평화비가 세워진 장소도 글렌데일시 중앙도서관 앞에 공원이에요.
너무나 햇볕도 잘 들고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더 반가운 건 평화비가 세워지자마자 그날 저녁부터 시민들이 찾아들기 시작하고 특히 한인동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교육시키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비처럼 또 다른 기적을 만드는, 희망을 만들어내는 그러한 장소로 벌써 활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고노담화까지 재검토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사실은 그렇게 일본 정부가 역사를 부인하려고 하고 세계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여론을 막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게 역사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 뿐만 아니고 그런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 일본 국민조차 굉장히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라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고 책임질 것 다 책임지면서 배상하는 것, 그게 일본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앵커]
앞으로 평화의 소녀상 해외건립과 관련해서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요?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곳, 그리고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곳 그런 지역에 계속해서 평화비를 건립하는 운동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우선 캐나다라든가 유럽지역이라든가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끌려갔던 곳 싱가폴은 아직 못했지만 여성들이 끌려갔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런 여러 지역에도 평화비를 계속해서 세우려고 하는 그런 활동이 지금 추진중에 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와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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