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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영화 '내 이름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폭력의 굴레를 그리다

2026.04.03 오후 03:07
영화 '내 이름은' 포스터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1949년 제주,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엔 이름조차 잃어버린 채 침묵을 선택한 이들이 남았다. 그로부터 49년이 흐른 1998년의 교실, 이곳에서도 권력에 복종하며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는 소년들이 존재한다.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내 이름은'은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폭력의 메커니즘’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투 트랙의 서사를 취한다. 아홉 살 이후의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어머니 정순(염혜란 분)이 잃어버린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과, 그녀의 아들 영옥(신우빈 분)이 학급 내 권력자 ‘경태’(박지빈 분)에게 복종하며 친구 민수(최준우 분)와의 갈등을 빚는 학교생활이 교차된다.

정지영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국가나 일반 사회나 마찬가지”라며, 4.3이라는 거대 담론을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적으로 풀어냈음을 밝혔다. 특히 영옥이 권력이 두려워 진실 앞에 눈을 감아버리는 모습은, 과거 정순이 겪어야 했던 국가 폭력 앞에서의 무력함과 묘한 기시감을 형성한다. 감독은 이 지점을 통해 폭력이 어떻게 세습되고 일상화되는지를 영리하게 파고든다.

극 전체를 지탱하는 힘은 단연 염혜란이다. 그녀는 4.3의 비극을 온몸으로 견뎌낸 강인한 어머니이자, 동시에 생존을 위해 가해자가 되기도 했던 다층적인 인물 ‘정순’을 대사보다 깊은 눈빛과 표정으로 그려냈다. 염혜란이 실제 4.3 증언집의 언어들을 참고해 연기에 임했다고 밝혔듯, 그의 진정성은 관객들에게 비극의 실체를 더욱 가깝게 체감시킨다.


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그러나 의미 있는 소재와 배우의 열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이 눈에 띈다. 영화는 후반부의 감정적 폭발을 끌어내기 위해 초중반부에 너무 많은 곁가지를 심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서사는 늘어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특히 카메라 워킹과 편집 등 기술적 측면에서의 투박함은 영화의 몰입을 수시로 방해한다. 청소년 역할의 배우들 연기 또한 다소 경직되어 있어, 매끄러운 상업 영화의 문법을 기대한 관객에겐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 2년간 시나리오를 고쳤다는 감독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만듦새가 투박하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 이름은'이 2026년 현재 우리에게 유효하게 작용한다. 영화는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한 4.3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묻는다.

영화는 과거의 비극을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비록 기술적 완성도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은 그 자체로 유의미한 역사적 기록이다.

영화 '내 이름은'. 정지영 감독 연출. 배우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 등 출연.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2026년 4월 15일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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