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죽어야 끝납니까? 그게 해결입니까?"
2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여성 단체들이 "가정폭력은 가정 안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이라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를 비롯해 총 690여 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번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여성폭력 피해자를 추모하고 가정폭력 현실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가정폭력은 부부싸움, 집안일이 아니다", "신고를 해도 가해자 검거도, 격리조치도, 기소도, 처벌도 안 하는데 피해자가 어떻게 해야 하나", "1.9일에 한 명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허순임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가정폭력 피해 당사자의 발언과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사건 피해자 지인의 발언, 여성단체와 변호사의 발언도 이어졌다.
허순임 상임대표는 "최근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가정폭력이 얼마나 흉포한지 절실히 보여준다"면서 "가정폭력이 피해자가 탈출해도, 이혼해도 끝나지 않고 죽어야 끝난다"는 현실을 고발했다.
남편으로부터 "정신이 이상하다"는 지속적인 세뇌를 당하고, 폭력과 살해위협을 당했던 A 씨도 발언을 이어갔다.
"온갖 폭력에도 불구하고 전남편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판결이 나왔다"고 말하며 "피해자를 더욱 가혹하게 한 주체는 검찰 경찰 법원이며 모두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만 가해자 말만 경청했다"고 발언했다.
김명진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 상담소 연대 준비위원회 위원은 "자정폭력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는 피해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느냐?"며 "가정폭력 가해자 99%가 풀려나고 기소율은 8.5%에 그치고, 구속률은 채 0.8%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접근 금지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되고, 상담소에 가서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를 해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가해자) 김 씨와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정폭력은 피해자인 아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던 피해자 B 씨의 발언도 이어졌다.
B 씨는 가해자인 아버지와 분리해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게 되냐"면서 방관하고 가해자와는 농담까지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지만,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창이 되고, 칼이 되어 돌아온다"면서 "지금도 어디선가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겪을 아이와 여자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가정폭력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강서구 등촌동 주차장 살인사건의 피해자 친구도 이 자리에서 발언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이 얼마나 심각한 위협에 시달렸는지 호소하며 "가해자가 출소하면 남은 가족들은 지난 4년간 고인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사법부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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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민경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될 수 있도록 제도를 즉각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정폭력 범죄 처벌법이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 보호보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회복,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목적에 치우쳐 피해자 인권 보호 의무를 경시하는 풍조를 낳고 있다"면서 이혼 과정에서 가정폭력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큰 피해를 겪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어서 "14개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협의 이혼 시 의무 면담 제도는 대표적으로 가정 폭력의 특수성을 도외시하고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특히 "가정폭력을 겪고 어렵게 협의이혼에 다다른 피해자에게 의문면담을 실시하게 하고, 혼인회복을 위한 부부상담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이를 거절하는 피해자를 가해자가 비난하게 하거나 이혼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 변호사는 "협의이혼 신청이 이루어진 부부에 대한 의무면담 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자녀면담교섭권을 폭넓게 줘서 피해자와 그의 자녀가 또다시 가정폭력의 위협에 노출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면접이 안전한 것으로 확인된 것만 인정해야 할 것인데, 법원의 목적이 가정의 회복이 목적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전하고 확실하게 가해자로부터 분리되도록 최선을 다해 조력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발언자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고미경 대표는 "국가가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에게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는 사이 또 하나의 여성을 잃었다"면서 "피해자와 가족들이 가정폭력을 호소할 때 경찰이, 국가가 제대로 된 조치만 했어도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지금쯤 국가가 말하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경찰의 인식은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내에서 해결한다는 것이 57%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비율이 35%다. 경찰의 이런 인식은 피해자가 최초로 만나는 공권력인 경찰이 가정폭력을 외면하거나 방조하는 사이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가해 남성에게 죽어간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쉼터에 들이닥쳤을 때도 경찰은 '집 나간 엄마와 아들을 찾는 아버지'로 문제를 규정했다"면서 "가정폭력 가해 남성의 처지를 대변했다"고 고발했다.
"직무를 내버려 두고 무성의 무대응 무조치로 일관한 경찰을 징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가정폭력 처벌법의 목적 조항을 비롯한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 폐지, 체포우선주의 도입을 요구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이번 기자회견이 끝나고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의 '가해자 엄벌 촉구 및 사법 정의 실현 촉구'를 위한 서명 부스가 열렸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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