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게 야당 인사청문위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뭐였는지 물었습니다. 이동관 후보자는 제일 먼저 이렇게 답했습니다. “에토 다카미 총무청 장관의 식민지 미화 발언을 특종보도하여 낙마시켰습니다.” 후보자가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일 때 썼던 기사를 ‘인생 특종’으로 내세운 겁니다. 어떤 기사일까요?
이동관 후보자 "가장 기억 남는 취재는 <日 장관 식민지 미화 발언 특종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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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회고록 <도전의 날들>
이동관 후보자가 쓴 회고록 ‘도전의 날들’ 233페이지를 보면 자세한 취재기가 나옵니다. 1995년 10월 에토 다카미 일본 총무청 장관이 일본 기자들 앞에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는 망언’을 했는데, 이 발언을 제보받은 후보자가 기사를 써서 일본의 현직 장관을 사퇴시켰다는 것. 후보자는 당시 어떻게 취재했는지를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후보자의 언론관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합니다. 에토 장관의 발언 내용을 제보받기는 했는데 실제 그 발언이 있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고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주요 신문 기자들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동관 특파원 "동아일보와 日 공산당 기관지 동시 기사화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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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회고록 <도전의 날들> '내가 본 일본과 일본인'
그러던 차에 나타난 ‘귀인’이 바로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Y기자였습니다. ‘Y기자는 당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방송기자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내가 받은 제보 속 에토 장관의 발언 내용은 정확한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일본 주류 언론들이 ‘오프 더 레코드’라는 이유로 확인해 주지 않았던 어려운 취재를 공산당 기관지 기자의 도움으로 기사화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기자와 동아일보 기자의 ‘콜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동관 후보자는 ‘제보내용을 확인해 준 신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혼자 기사를 썼을 때 짊어져야 할 엄청난 부담도 의식됐기 때문에 <아카하타> 측에 두 신문이 동시에 기사화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후보자는 ‘평소 한국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아카하타> 기자를 알게 된 것이 ’에토 망언‘ 특종기사를 발굴한 결정적 기회가 됐다’면서 ‘취재를 할 때 사각지대 없이 여러 분야에 취재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취재담을 소개했습니다.
이동관 후보자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은 언론 아닌 기관지"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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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회고록 <도전의 날들> '내가 본 일본과 일본인'
이 회고록에 담긴 공산당 기관지와의 공동 취재기가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지난 1일 청문준비단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날 논란이 됐던 후보자의 발언 때문입니다. “과거 선전 선동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이나 진실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주장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관지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국내 일부 언론을 공산당 기관지에 비유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 ‘공산당 기관지’ 같은 언론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국민들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알 것”이라며 발언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으로 볼 수 없다면서 그 상징처럼 꼽은 ‘공산당 기관지’가 과거 후보자의 '인생 특종'을 만들어준 취재원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청문회를 목전에 두고 후보자는 청문위원들의 관련 질의에 ‘공산당 기관지’ 발언이 특정 언론을 염두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내일(18일) 인사청문회 때도 질문이 나올텐데 어떤 입장을 밝힐지 궁금합니다.
YTN 신호 (sino@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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