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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갸날'을 아시나요?...한글날 100년의 기록

2026.10.09 오전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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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 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한글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모태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으로 시작된 '가갸날'이었는데요.

100년 전 첫발을 뗀 '한글날'의 역사를 강진원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라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억압 수위를 높여가던 1926년 11월 4일.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조선어연구회' 소속 학자와 지식인들이 경성 식도원에 모였습니다.

'음력'으로는 그해 9월의 끝날, 29일이었습니다.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이 이뤄졌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글날의 효시, '가갸날'을 만든 겁니다.

가, 갸, 거, 겨, 고, 교….

우리 글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던 음절에서 이름을 딴 '가갸날'은 단순한 '문자 기념일'이 아니었습니다.

[윤지현 /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 :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또 한글을 보급하고, 이런 활동이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시고….]

한(韓)나라, 즉 우리나라 글이란 뜻 등을 지닌 '한글'이란 명칭은 1927년 조선어연구회가 잡지 [한글]을 펴낸 뒤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1928년부터는 '가갸날'의 이름도 '한글날'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던 일제 강점기, 한글날은 우리글 보급과 연구, 그리고 문맹 퇴치 운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진 이후 더 거세진 일제의 탄압에 1937년부턴 기념식조차 열지 못했습니다.

[김주원 / 한글학회 회장 : 창씨개명을 통해 조선 민족의 씨를 없애겠다랄까, 이런 게 본격적으로 시작됐거든요.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들던 그 학자들, 사전 편찬원들이 다 감옥에 잡혀갔어요.]

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빛을 본 한글날은 이보다 5년 앞서, 지금과 같은 10월 9일로 바뀌었습니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 작성 시점이 '정통 11년 9월 상한', 그러니까 '세종 28년 9월 상한'으로 적힌 게 근거가 됐습니다.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1446년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훈민정음 반포일'로 본 겁니다.


이후 지난 2005년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승격된 한글날은, 2013년 공휴일 지위까지 되찾으며 100년의 발자취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YTN 강진원입니다.

영상기자 : 이동규
영상편집 : 김유영

YTN 강진원 (jin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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