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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2026.10.21 오후 03:06
영화 룩 백│2026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주연 : 데구치 나츠키, 마키타 아쥬, 나나세 후리, 오카다 로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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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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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 영화 <룩 백> 포스터


영화 ‘룩 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체인소 맨’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을 실사화 한 작품이다. ‘체인소 맨’이 자극적인 이미지와 서사로 점철되어 있다면 ‘룩 백’은 인물들의 내면과 정서적 측면에 집중하는 작품으로, 사뭇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체인소 맨’의 ‘덴지’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에 충실하듯 ‘룩 백’의 ‘후지노’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삶을 추동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립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닮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함과 동시에 위험에 빠졌던 덴지처럼 후지노 또한 ‘쿄모토’와 남다른 우정을 쌓은 후, 커다란 상실과 후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실재적 움직임과 공간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스크린 위에 새겨 넣었다. 애니메이션보다 긴 호흡으로 그려낸 두 사람의 만화 작업, 미묘한 갈등을 드러내는 새로운 신들이 실사화에 충분한 의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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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 영화 <룩 백> 스틸컷


고레에다의 ‘룩 백’은 후지노와 쿄모토가 그림 그리는 장면들을 길게, 자주 배치하며 이들의 작업을 현실적인 노동의 영역으로 가시화한다. 침묵 속에서 선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에는 창작가의 숭고한 열정이 깃들어있고, 점점 능숙해지는 펜촉의 사각거림에서는 소녀들의 성장이 느껴진다. 미동도 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의 등은 이들이 신체적 피로와 시간의 중력을 견뎌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심리적, 물질적 보상을 얻게 됨을 예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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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 영화 <룩 백> 스틸컷


그러나 이처럼 인고의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균열을 내포하고 있었다. 후지노는 본래 인정욕구가 강하고 어떤 관계에서든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쿄모토의 뛰어난 작화 실력을 마주했을 때 느낀 것은 동경이 아닌 박탈감과 열등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쿄모토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후지노는 아예 그림을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쿄모토가 자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 후지노의 열등감은 우월감으로 돌변한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쿄모토를 방 밖으로 끌어내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자신이 이 관계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후지노가 상석에 앉아 쿄모토에게 지시를 내리고, 쿄모토의 배경 작업이 자신의 인물 작화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과 그에 대한 쿄모토의 씁쓸한 반응을 삽입시키는 등 이들의 미래에 대한 복선을 깔아준다. 결국 이 비대칭적 권력관계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쿄모토의 선언으로 파국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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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 영화 <룩 백> 스틸컷


그러나 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비극은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영영 다시 함께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룩 백’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후지노의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 즉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평행세계적 상상은 먼저, 그녀를 죄책감과 후회의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비극의 원인을 과거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에서 찾는 것 또한 후지노의 통제 강박에서 비롯된 행위다. 다만, 이제 후지노는 이 불확실하고 폭력적인 현실에서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깨닫는다. 쿄모토의 죽음을 통해서야 타인의 삶을 책임지거나 구원할 수 없다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체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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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청춘의 등 뒤에 남겨진 것들, ‘룩 백’
​▲ 영화 <룩 백> 포스터


후지노가 쿄모토의 방에서 나와 다시 책상 앞에서 펜을 쥐는 마지막 신은 그래서 처연하고도 아름답다. 카메라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인 채 이제는 스스로 통제 가능한 창작의 세계에 집중하는 후지노의 등을 오랫동안 비춘다. 이것은 만화를 매개로 함께 성장했던 쿄모토를 향해 후지노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애도이자 쿄모토가 후지노의 삶에 남긴 흔적을 일상에서 계속 응시하며 나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창작의 고단함, 관계의 불균형, 애도의 의미가 중첩된 멋진 에필로그가 필름의 질감 속에 더욱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YTN 브랜드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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