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6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국군 유해 64구 봉환식

2018.10.01 오전 10:03
■ 진행 : 이재윤 앵커 / 이승민 앵커
■ 출연 :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제7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미국에서 송환된 국군 유해에 대한 봉환식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부는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신뢰 관계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그리고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함께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국군 유해 봉환식은 지금 현재 진행이 되고 있는데요. 잠시 뒤에 성남공항을 연결하겠습니다.

지금 성남공항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군 유해 64구에 대한 봉환식이 현재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전 9시 30분부터 시작이 됐는데요.

잠시 뒤에 저희가 봉환행사 그리고 헌화 부분이 진행이 될 때 현장을 연결해서 자세하게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현재는 유해 하기 및 운구 행사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공식 봉환 행사는 9시 45분쯤으로 예정이 돼 있습니다.

그 전에 진주만의 히컴기지에서 봉환이 된 64구의 우리 국군 유해가 운구가 되고 지금 봉환식장에 안치가 되어 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봉환되는 유해 64구는 1990년대 북한에서 함경남도 장진 그리고 평안남도 개천 지역에서 발견된 유해 208구 가운데 일부입니다.

북한은 이를 미국으로 보냈었고요. 그리고 유전자 감식 결과 유해 중 일부가 미군이 아니것으로 판명이 되면서 우리 국방부에 한국군일지도 모른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군의 감식팀이 지난 8월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모두 64구를 우리 국군의 유해로 판명해서 오늘 봉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국군 유해 64구에 대한 봉환식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해서 시작이 됐습니다.

[현장 진행자]
용사자께 대하여 받들어 총.

[앵커]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서 호국 영령에 대한 경례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늘 봉환행사는 제7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서 열리는 기념행사가 되겠습니다.

서울공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군 유해 64구에 대한 봉환식은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에 걸려서 북한에서 발굴된 우리 국군 유해에 대해서 미국 쪽에 인계가 됐다가 국군 전사자로 밝혀지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미 지난 27일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유해 인수를 위해서 하와이에 갔다 왔고요.

하지만 지금 64구의 봉환식에 같이 돌아오게 되는 유해는 64구인데 인적사항은 아직 확인이 되지 않은 유해들입니다.

[앵커]
그래서 오늘 봉환식에 참석하는 유가족은 없는 상황입니다. 김주환 기자, 오늘 유해 봉환식의 의미, 어떻게 분석을 해야 될까요?

[기자]
일단은 오늘 국군의 날 70주년 행사의 굉장히 뜻깊은 유해 봉환행사인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원을 모르죠.

이제 오늘 행사 끝나면 우리 동작동 국립현충원 안에 우리 국군유해감식단이 있습니다.

거기서 헌병단 보위 하에 인송을 해서 거기서 정밀감식을 해서 한국전쟁 참전자 가족들에 대한 DNA 검사가 되어 있거든요.

대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큰 틀에서 동양계냐, 서양계냐 이 정도의 분석만 하고 지난 10년 동안 했던 걸 그래서 여기서 다시 정밀감식에 들어가서 가족이 있으면 가족들한테 유해를 인도하는 그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앞서 2012년, 2016년, 2018년 거쳐서 28구의 유해가 지금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인도된 적이 있었고 28구의 유해 중에서 5구가 가족 품에, 후손들한테 전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국군 유해 발굴 감식단에서 또 정밀 DNA 검사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 겁니다.

[앵커]
그러면 28구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게 5구에 불과한 거군요?

[기자]
그러니까 저기가 전쟁 지역이 지금의 평안북도, 과거에 개천, 중공군들이 개입을 함으로써 그때 초기 전투 상황이 많이 벌어진 곳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미군 그다음에 한국군 그다음에 카투사라고 그러죠. 그런 병력들이 혼전해서 격전이 벌어진 곳이어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05년까지 실질적으로는 북한 측이 그 즈음에 그 당시에 많이 발굴했던 걸 감식을 해서 10년 동안 미국에서 하와이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미군 전문으로 감식하는 유타주에 델라웨어주에 그런 시설들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또 이송을 해서 정밀감식을 했고. 그런데 동양계로 또 보인다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8월에 우리 전문 감식단들이 가서 확인을 했고요.

400여 구 중에서 또 엄선을 해서 64구에서 국군 유해 같다, 그래서 서주석 차관이 단장으로 해서 갔다가 C-130 수송기로 운송을 해서 어제 오후에 C-130 수송기가 성남서울공항에 도착을 해서 오늘 유해 봉환 행사를 갖는 겁니다.

[앵커]
김 교수님, 지금 미국이 그동안 우리나라에 넘겼던 유해 송환분 가운데 최대 규모 아니겠습니까? 64구가 넘어오게 되는데요. 특별한 의미를 분석을 해 주시죠.

[인터뷰]
지금 우리 김주환 기자께서 잘 말씀을 하셨지만 그 전에도 사실상 몇 번에 걸쳐서 공동감식을 통해서 유해가 우리 한국으로 넘어왔거든요.

사실상 미국이 6.25 전쟁 때 참전에서 크게 희생을 많이 당했는데 그때 당시에 뒤로 발굴하는 작업은 크게 네 번에 걸쳐서 발굴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은 미군 유해를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춰죠. 그런데 여기에 한국군이 들어 있느냐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미군에 소속되어 있던 우리의 카투사, 주로. 지금도 카투사는 있잖아요. 그래서 그 병력들이 일부가 있고요.

두 번째는 그 4번의 발굴 중에서 1번, 소위 말해서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있었던 운산 온정리전투라고 하는데요.

여기서는 우리 국군 1사단도 미기병 1사단하고 같이 전투를 했거든요.

그래서 아마 지난번에 왔던 28구들 대부분은 아마 이쪽에서 전투했던 그런 우리 국군들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고요.

이번 같은 경우도 어찌됐든 지난번에 네 번에 걸쳐서 간 걸 계속해서 정밀감식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DNA라고 하는 그런 과학적인 그런 기법이 없으면 이게 도대체 미군인지 한국군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인데 어찌됐든 그런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군으로 구분이 된 거죠.

그래서 그 유해들 일부가 돌아오고 있다고 보고요. 이제 아마 시청자분들께서 조금 궁금스러워하는 것은 지난번에 55구, 미군 유해 송환된 것, 그중에서도 우리 한국군이 있느냐.

그건 아직까지 정밀감식이 안 끝났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도 우리 한국군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은 만일 또 뒤에 정밀감식을 해서 한국군으로 판정이 되면 다시 우리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앵커]
그러니까 지난 7월에 있었죠. 55구의 유해 송환이 있었는데 미국으로 갔습니다마는 그 가운데 한국군도 포함될 수 있을 가능성도 지금 얼마든지 있는 거죠?

[인터뷰]
충분히 있죠. 그래서 거기에서 감식을 하면 이번처럼 다시 감식 결과 한국군은 다시 오늘처럼 송환되는 그런 절차를 거치게 되죠. 대신에 저기 온 것은 아까 김 기자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동양계잖아요.

동양계인데 우리 쪽에서 미군들하고 같이 발굴을 했으니까 여기에 북한군은 없겠죠. 없지만 우리가 지난번에 28구 송환된 것 중에서 5구만 신원 확인이 돼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잖아요.

이번에 온 것 중에서 64구 중에서 정말 정밀감식을 통해서 몇 구가 가족의 품에 돌아갈지는 모르겠어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닐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이때 미군과 같이 싸웠던 한국군의 유해가 끝까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라고 하는 그 자체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거고 또 정부로 봐서는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 이 사람들을 끝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그런 것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거거든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그런 행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기자]
우리 국방부 산하에 유해발굴전담부대가 있습니다.

365일 계속 폭염이나 이런 데서도 유해발굴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작년, 재작년까지만 해도 포천 지역에서도 중공군하고 전투가 격전이 벌어졌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유해발굴 감식을 해 보니까 과거 중공군, 과거는 중국 인민해방지원군이라고 하는데 그 자격으로 우리가 당시 비록 적성국가였지만 이렇게 해서 유해 전달을 한 사례도 몇 차례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활동을 계속 하고 있죠.

[앵커]
지금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64구의 국군 유해에 일일이 하나씩 기장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10월의 첫날,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를 국군 유해 봉환식으로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해 위에 기장을 올려놓고 묵념을 가볍게 하면서 한 구, 한 구 뜻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DMZ의 평화지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H자 형태로 신경제구상의 하나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DMZ에서의 지뢰 제거와 함께 유해발굴이 있거든요.

저 유해발굴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상 오늘부터 당장은 지뢰 제거 작업이 있는 곳이 JSA하고 철원 지역에 있는 화살고지하고 두 군데서 시작이 되잖아요.

사실상 이쪽, JSA에서는 지뢰 발굴에 초점이 있지만 이쪽, 철원 지역에서의 화살고지는 그쪽은 6.25 때 정말 고지전투가 활발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벌어진 지역이거든요.

그쪽에 아마 가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철원평양을 서로 빼앗고 빼앗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이 치러졌는데요.

그래서 그쪽에는 사실상 어마무시한 우리 국군의 유해가 그 속에 있을 거고 여기에 미군, 프랑스군 또 북한은 북한대로, 중공군은 중공군대로 유해가 많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 인간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만 중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돌아가셔서도 끝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속이든지 간에 자기 조국의 품으로, 자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결국은 DMZ 지뢰제거와 유해 공동발굴이 동시에 이뤄지는 거기 때문에 앞으로 아마 철원 지역에서는 대단히 많은 유해들이 DMZ에 대한 지뢰작업을 하게 되면 발굴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정부가 정말 조국을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 한 분, 한 분에 대해서 책임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죠.

[기자]
지금 문 대통령께서 하나하나 올려놓는 기장은 공식 명칭이 6.25참전기장 또 다른 명칭은 종군기장이라고 하는데 근거가 6.25전쟁에 참전했음을 표시하는 기장입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오늘 64구의 국군 유해에 대해서는 전사자로 우리가 간주를 해서 예우를 할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6.25 참전기장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168만여 개가 수여됐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중간에 과정이 있었습니다마는 오늘 또 추가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64구에 대한 6.25참전기장을 유해 위에 하나하나 수여하는 그런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이죠.

[앵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수여하고 있는 기장이 종군기장이다, 이렇게 보면 되겠군요.

64구의 국군 유해 6.25 참전기간 중에 우리가 거두어들이지 못했던 유해들입니다.

선열의 유해를 오늘 우리가 전달받고 그 위에 종군의 또 나라 사랑의,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영령에게 종군기장이 수여되고 있습니다.

이 유해들이 모두 우리나라로 오기 전에 미국 하와이에서 지난달 27일 송환식이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때는 우리 정부에 인도를 하는 거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8월에 우리 유해발굴전문단이 가서 최종확인에 걸쳐서 또 준비기간을 거쳐서 지난달 말에 서주석 국방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우리 수송기가 갔습니다.

C-130 수송기가 하와이 히컴기지까지 날아가서 거기 일일이 한 구, 한 구 저렇게 태극기 인도를 받아서 태극기로 다 덮어씌우고 그래서 앞서 하기이라는 표현을 나왔습니다마는 의장병들이 운구병들이 비행기에서 한 구, 한 구 내려서 봉환을 해서 그 다음 일정순으로 대통령께서 저렇게 기장 수여를 하고 추후 묵념이라든지 여러 가지 하면 저 64구의 운구들이 지금 뒤에 헌병단 사이카 부대가 보이지 않습니까?

운구 호위하에 동작동 국립묘지 내에 있는 국군유해감식단으로 운송이 돼서 거기서 다시 정밀감식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앵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장을 한 구, 한 구 운구 위에 수여를 하고 그리고 묵념을 하면서 감사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마 우리 유해발굴감식단에서도 오늘 송환되는 64구에 대해서 단 한 분이라도 가족의 DNA가 일치하는지 그걸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아주 또 더 뜻깊은 그런 행사가 될 수도 있고 의미 있는 게 될 수 있는데 저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조금 더 정밀감식을 통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유해가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그렇다면 저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DNA 확인작업을 거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6.25전쟁에 참전했었던 전몰 장병 가족들에 대한 DNA가 그만큼 또 확보가 돼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기자]
평소에 저희도 저런 유해발굴 감식 노력을 십수년 이상 계속 해 왔기 때문에 가족 중에 지금 말씀하신 6.25전쟁에 참전했다면 그 DNA 검사, 그러니까 혈액을 통해서 한다거나 주로 혈액을 통해서 한다 그러거든요.

그런 동의 하에서 굉장히 많은 이른바 샘플을 가지고 있다라고 합니다.

[인터뷰]
유해발굴감식단들이 보면 우리 전사자 명단들이 있잖아요.

전사자 명단들이 있고 그때 주소가 있으니까 그분들한테 일일이 전부 다 연락을 했어요.

계속 연락을 해서 혹시 유해가 발굴되면 이걸 일치 여부도 알아야 되고 그래야 되니까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하면 다 그거 우리 데이터로 가지고 있는 거죠.

[앵커]
DNA 샘플을 가지고 있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유해가 저렇게 발굴이 됐을 때 저렇게 발굴된 유해 중에서도 정말 DNA를 검출하고 하는 데도 엄청난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그래서 거기에서 일치만 되면 바로 연락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미군들로부터 돌려받은 우리 국군유해 26구 중에서 5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미리 다 그런 것들이 우리 DB에, 데이터베이스로 다 저장이 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지금 아마 대부분은 저게 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이 돼 있으리라고 저는 봅니다.

저도 삼촌이 육군 중위로 원산지구에서 전사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국립묘지에 계신데 지금은 한 계급 더 올라가셔서 대위죠. 대위인데 우리 집안에서도 DNA 아마 수년 전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 유해 봉환이 이번이 네 번째인데 이렇게 국군의 날 행사에 맞춰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또 더 의미가 깊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그렇죠. 과거에는 한 구, 두 구 그런 걸 했는데 사실은 시대 상황이라는 것이 올해 특히 70주년 행사고 굉장히 당장 오늘부터 남과 북이 공동유해발굴이라는 지뢰, 폭발물 제거작업도 하지 않습니까?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오늘 국군 유해 봉환 행사를 기점으로 해서 그런 앞으로 일정들이 추후 순조롭게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앵커]
6.25전쟁 중에 우리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호국영령들의 유해 64구에 대한 봉환식이 지금 현재 거행이 되고 있습니다.

64구 일일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기장을 수여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고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미국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국군 유해 64구는 앞서서 6.25 전쟁 당시에 장진호 전투 그리고 또 운산의 온정리 전투 현장에서 수습된 유해 가운데 미군 전사자를 제외한 우리 국군 장병들의 유해인 거죠?

[인터뷰]
그렇죠. 지금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7일부터 11월 11일,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 미 해병1사단이 거의 뭐 사실상 전멸하다시피 그래서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마 미국의 전투 역사상 가장 희생이 많이 난 그런 전투 중 하나가.

[앵커]
장진호 전투에서 철수하는 것 자체가 작전이었죠?

[인터뷰]
그렇죠. 그래서 새로운 방향으로의 진격이라는 명칭을 내린 거죠. 그때 중공군들한테 포위가 돼 있었기 때문에 그 포위를 뚫고 나오는 과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동사해서 전사하신 분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 어찌됐든 그때도 우리 카투사들은 거기에 배속이 돼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 배속됐던 인원들, 그다음에 2004년부터 2007년도에는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여기는 운산지구 전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 국군 6사단, 중공군 44단 해서 이거는 1950년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 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그런 전투죠.

또 50년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도 있었고.

이때는 국군1사단이 미 기병1사단하고 같이 전투를 했던 지역인데 여기에는 우리 국군 1사단이 참여했기 때문에 카투사도 있겠지만 국군 1사단 요원들도 여기 64구의 유해 중에서 일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합니다.

[기자]
당시 국군 1사단장이 잘 아시는 백성엽 장군이 1사단이고 중공군 포로를 잡았는데 대규모 2만여 명의 이상의 병력이 있다.

그런데 미군 수뇌부가 당시에 안 믿었다고 하죠.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미국에서는 초산전투라고 하는데 장진호 전투나 운산지구에서 중공군들이 대규모로 밀려오기 때문에 그게 이른바 여러분들이 많이 아는 1. 4후퇴인데 1월 4일날 다시 수도 서울이 함락되거든요.

그래서 동해안 지역에서는 흥남 지역, 원산 지역에서 철수 작전이 있었고 흥남 지역 철수 때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 부모님도 후속 수송선을 타고 거제도로 내려오는.

그래서 우리가 그걸 통칭해서 1.4후퇴라고 하는 겁니다.

[앵커]
오늘이 건군 70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오늘 70년 기념식과 함께 봉환행사가 지금 성남서울공항에서 거행되고 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 64구의 국군 유해에 일일이 기장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오늘 봉환되는 6.25 전사자 64구는 68년 만에 조국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아마 지금 아직까지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전사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오늘 이 행사가 좀 남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저기 가족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겠죠. 부모님들, 저 전사자의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다 떠나셨고 남아 있는 분들은 다 이제는 친척 또는 조카 그 정도 급이잖아요.

저도 삼촌이 돌아가셨지만 다 우리는 조카급들이란 말이죠. 조카급들도 이미 실제로 나이는 좀 많이 든 상태고. 아마 저걸 그쪽 지역에 전투했을 거다.

왜 그러냐면 전사자 명단에 보면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전투, 어느 전선에서 사망했다라고 하는 게 딱 떠요.

물론 그것도 100% 다 맞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그때 어디에서 전사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때 지금의 저 모습을 바라보는 친척, 친지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게 지금 어느 전투에서 우리 그때 삼촌이 이렇게 돌아가셨으니까 혹시 저쪽에서 우리 삼촌이 오지 않을까, 왜 그 생각을 안 하겠어요.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마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으로 저걸 보고 있을 겁니다.

[앵커]
앞서 말씀드린 게 장진호 전투와 운산의 온정리전투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미군 유해를 제외한 한국군 유해를 저희가 모셔왔다고 했는데요. 이게 장진호 전투가 1950년 12월달에 있었던 전투죠?

[인터뷰]
그렇죠. 50년 11월 27일부터 아주 12월 11일까지, 소위 말해서 중공군이 10월 중군에 들어오는데요.

들어와서 이 들어온 것을 아까 김 기자께서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쪽에서는 인지를 못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북쪽으로 공격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바로 장진호 전투라고 볼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올라가고 있는 미군들에 대해서 중공군들이 완전히 포위를 하게 되죠.

그래서 거기에 지금 겨울 날씨하고 그때 당시의 겨울 날씨하고는 굉장히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그때는 동상으로 그 장진호전투의 동영상 또는 스틸사진들을 보면 정말 미 해병1사단이 걸어가는 모습 또는 후퇴하는 모습, 새로운 방향의 진격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지만 그 모습들 속에서 보면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좀 이게 적절한 방송에서의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오줌을 누면 그게 나오자마자 바로 어는 정도로, 그 정도의 혹한과의 싸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공군들이 포위를 해서 계속해서 압박이 들어오니까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이 난 거죠.

[앵커]
또 운산의 온정리전투는 그해 그러니까 1950년 10월 말에 있었던 전투였어요.

그러니까 지금 돌아온 우리 호국영령들은 이제 68년 만에 고국을 찾게 된 것입니다.

[기자]
운선지역 전투도 사실은 김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장진호 미 해병대, 미1기병사단, 미육군인데 기록에 보면 한 600여 명의 1개 대대가 포위를 당했는데 결국은 미군이 2차대전 때도 그런 전례가...

자기네 600여 명을 포기하고 후퇴해야 하는. 그래서 운산지구에도 미군 유해가 많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부터 몇 군데 지명을 찍어서 북한 당국하고 그 당시에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운산지구 전투는 크게 보면 온정리전투가 있고 구음리전투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크게 구음리전투를 많이 얘기를 하는데, 운산전투로. 이게 1950년 11월 3일까지 있었고 여기에는 국군 1사단과 미 1기병사단이 있었는데 이때는 중공군 39구군하고 전투가 있었던 거고요.

온정리전투는 비슷한 시기입니다, 10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있었는데 국군 6사단과 중공군 40군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장진호 전투 같은 경우는 중공군이 3개군, 중공군 20군, 26군, 27군. 우리로 얘기하면 군단급이에요.

그러니까 10여만 명의 중공군이 해병1사단을 포위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엄청난 피해가 거기서 발생을 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우리 국군 유해 64구에 대한 봉환식이 열리고 있는 서울공항의 상황을 함께 보셨습니다.

이제 68년 만에 우리 고국의 품으로 온 국군유해 64구.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기장을 수여했습니다마는 우리 고국의 품에서 영면하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그리고 김주환 YTN 정치안보전문기자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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