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탁 치니 억' 고문기술자에 훈장 13개...경찰, 포상 7만개 전수조사

2026.03.30 오전 08:30
(왼쪽부터) 박처원, 이근안 ⓒ연합뉴스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고문과 간첩 조작의 공로로 포상을 받은 수사 관계자들의 서훈에 대한 첫 전수조사가 착수됐다.

29일 경찰청은 이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래 경찰관들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7만여개의 공적 사유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 공권력을 불합리하게 행사한 사례들이 취소 대상"이라며 "그간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신군부 협력자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공권력 남용과 관련해서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훈·포장을 취소할 수 있다. 2017년부터는 정부표창규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국무총리·기관장 표창도 박탈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조사 후 서훈·표창 취소 대상자를 국무총리실에 보고할 계획이다. 이후 심의위원회를 열고 당사자 소명을 들은 뒤 행정안전부에 취소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는 2018년부터 경찰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이상 국가정보원 전신)에 몸담으며 간첩 조작에 가담한 74명의 서훈을 취소했지만, 가해자 상당수가 여전히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5일 사망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생전 16개의 상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씨로부터 받은 옥조근정훈장이 박탈됐지만, 전두환 정권 출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건 이후 '수사업무'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국무총리 표창은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소속이었던 이근안은 신군부의 검열에 맞서 제작 거부를 선언한 언론인들에게 전기고문과 고춧가루 물 먹이기 등 각종 고문을 자행했다.

1985년 이근안과 함께 고(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문해 실형이 확정된 백모·김모 전 경감 등도 전두환 정권에서 여러 훈·포장을 받았으나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 당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연합뉴스

남영동 대공분실의 총책임자였던 박처원(1927∼2008)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치안감)은 상훈 기록에서 공개된 포상만 무려 13개에 달한다. '대공 경찰의 대부'로 꼽히는 박 전 치안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이근안의 이름과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자 11년간의 도피를 지시하고 자금을 지원했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기도 했다.

박 전 치안감은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2개를 비롯해 근정훈장 2개, 무공훈장 1개, 무공포장 2개, 대통령 표창 4개, 국무총리 표창 2개를 받았다. 보국훈장 수훈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돼 교육 지원과 취업 가점 등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기관장급 표창 등을 더하면 박 전 치안감이 실제 받은 포상은 4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전수조사를 계기로 국가가 주는 최고의 영예인 서훈에서마저 뒤집힌 가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1980년 '계엄 수사 공로'를 인정받은 표창 수훈자에는 이근안 등 경찰 8명 외에도 국군보안사령부(방첩사령부 전신) 수사관 58명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의자에 앉혀 지하로 떨어뜨리는 '엘리베이터 고문'으로 악명을 떨치며 '보안사의 이근안'이라 불리는 고병천도 포함됐다.

경찰이 국무총리 표창을 기준으로 제시하며 기관장 표창 등은 전수조사 대상에서 배제한 건 한계로 지적된다. 이 기준에 따라 이근안이 1981년 '서울대 무림 사건' 조작 공로로 받은 내무부 장관 표창 등 상당수가 박탈될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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