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프로야구의 한 유망주 투수가 제구 난조로 볼넷을 연발하며 경기가 뒤집히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해당 팀 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일각에서는 냉정한 비판 대신 “우리 선수 기 죽이지 마라”, “아직 어린 선수한테 왜 그러느냐”는 식의 무조건적인 비호도 쏟아졌다.
성적과 실력이 전부인 프로의 세계에서조차 비판을 거부하는 ‘기 살리기’ 여론이 만들어지는 풍경은 비단 야구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예계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최근 팬덤은 스타의 단순한 서포터 역할을 넘어, 스타의 도덕적 결함마저 세탁하는 방패이자 국가 행정력마저 곤란하게 만드는 압력 단체로 진화했다. 이 과잉 보호가 정작 아티스트를 고립시키는 ‘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된 가장 독특한 사례는 지난 2월에 발생한 그룹 엔하이픈(ENHYPEN) 팬덤의 국민연금공단(NPS) 상대 집단 민원 사태다. 특정 멤버의 팀 탈퇴 및 솔로 활동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해외 팬들의 화살은 엉뚱하게 국민연금으로 향했다.
이에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까지 나서 수습에 나섰다. 직접 SNS에 “국제연금지원센터로 해외 항의 전화가 폭주해 상담 업무가 일시적으로 마비됐고, 이메일도 2시간 동안 약 1,500통이나 쏟아졌다”며 당혹감을 표했다.
팬덤은 국민연금이 소속사의 모기업인 하이브(HYBE)의 주요 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연금 공단을 압박하면 멤버의 탈퇴를 막거나 경영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기적인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개별 기업의 경영이나 인사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이 해프닝은 팬심을 드러내기 위해 국가 행정력을 소모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2024년 5월 발생한 음주 뺑소니 및 운전자 바꿔치기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의 사례는 팬덤의 과잉 보호가 어떻게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건 초기부터 명백한 거짓말과 증거 인멸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김호중의 팬덤은 사실관계보다는 ‘아티스트의 안위’만을 우선시했다.
팬들은 김호중을 향해 “얼마나 지쳐 있으면 그랬겠느냐”, “재능이 아까워서라도 넘어가 주자”는 반응부터, “정치적 목적에 의해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의견 등을 쏟아냈다. 또한 김호중의 지난 기부 실적을 면죄부로 활용하려는 태도는 대중의 거센 역풍을 불렀다.
재판부에 제출된 수많은 선처 탄원서는 반성 없는 아티스트를 향한 ‘맹목적 방패’가 되어, 스타가 자신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반성할 기회마저 박탈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극성 팬덤의 ‘금쪽이 양산’식 떼쓰기는 필연적으로 부수적인 피해를 입는 아티스트를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월, 홍콩에서 열린 지드래곤(GD)의 솔로 월드투어 ‘위버맨쉬(Ubermensch)’ 현장에서 발생했다. 지드래곤이 무대를 이어가던 중, 한 관객이 ‘버닝썬 게이트’로 실형을 살았던 전 멤버를 언급하며 “승리는 데려와”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LED 플래카드를 펼쳐 보인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윤리 의식과 법적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팬덤이라는 닫힌 세계 안에서 스타의 잘못을 ‘시련’으로, 대중의 비판을 ‘억까(억지로 까기)’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스타는 자연스레 대중과 멀어지는 ‘연예계 금쪽이’가 된다.
이 같은 과잉 보호의 이면에는 스타의 사생활과 커리어를 직접 통제하려는 기괴한 보상심리가 깔려 있다. 이에 한 유명 걸그룹의 멤버는 분노한 팬들의 트럭 시위에 밀려 자필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또한, 한 유명 장수 보이그룹의 멤버는 결혼 소식을 전한 뒤 이를 ‘팬에 대한 기만’으로 규정한 일부 팬덤의 거센 퇴출 요구와 보이콧에 직면하며 사실상 오랜 기간 그룹 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즉, 팬덤은 스타를 지키는 방패인 동시에 언제든 스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돌아선 팬이 극성 안티보다 무섭다’는 업계의 말은 팬덤이라는 집단의 모순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건강한 팬덤은 스타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어야 한다. 스타의 눈과 귀를 막는 간신(奸臣)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스타를 팬덤의 소유물로 만들기 위한 맹목적 지지 뒤에 남는 것은 대중의 냉소뿐이다.
스타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사회적 인격체여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가장 아끼는 방법은 무조건적인 ‘오냐오냐’ 식의 방어막을 걷어내고, 그가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공적 존재로 진화하도록 돕는 데 있다. 잘못에는 따끔한 지적을, 성취에는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건강한 거리가 유지될 때 스타는 비로소 아티스트로 바로 설 수 있다.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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