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요즘 영화나 소설에는 '팩션'이라는 장르가 자리잡은 것 같죠?
사실을 뜻하는 팩트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의 합성어라고 하는데요.
최근 한국 영화계에 '팩션 사극'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팩션 사극들의 흥행 성적은 어떨까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데요,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팩션 사극, 잘만 만들면 참 흥미로운 분야가 아닌가 싶은데, 한국영화계에는 유난히 팩션 사극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답변]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고증해서 보여주는 것은, 사실 TV 사극의 영역으로 고착화된 분위기이고요.
영화란, 상상력을 최대화해서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팩션 사극이 자주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팩션 사극이란, 말씀하신대로, 역사적 사실 위에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법을 적용시켜 보는 걸 말하는대요.
지난 2005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죠, 연산군대를 배경으로 한 '왕의 남자'가 대표적인 팩션 사극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질문]
그런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팩션 사극들을 보면, 부침도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땠나요?
[답변]
그렇습니다.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느냐, 또 어떤 가정법, 그러니까 허구를 얹고 있느냐에 따라 흥행에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지난 2008년 개봉한 '신기전'이라는 영화는, 세종대왕대에 만들어진 신기전이라는 다연발 화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요.
신기전이라는 무기는 실제로 있었습니다만, 이게 실제로 전투에 사용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법적 허구를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가정법적 허구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시키는 경우인데요,
'신기전'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조선이 조공을 바치고 있던 명나라와 한판 전쟁을 펼쳐서 이긴다, 하는 설정을 담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약소국 콤플렉스를 해소시키는 굉장히 유치한 설정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그런지 대박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질문]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를 가미하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 곤란하다, 이 말씀인데, 그런 경우가 많은가요?
[답변]
지난 2009년에 개봉해서 흥행에서도 고배를 마셨던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미명 하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대표적인 경우죠.
이 영화는 명성황후와 그녀를 사랑하는 호위 무사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원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영화 자체는 구한말의 시대상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임오군란을 묘사한 장면이 대표적인데요, 조승우 씨가 연기한 호위 무사가 임오군란에 홀로 맞서서 명성황후를 지키는 걸로 묘사가 돼 있죠.
실은 임오군란에 맞선 것은 명성황후의 배후에 있던 청나라 세력이었는데, 이걸 극적으로 묘사하려다 보니까, 역사를 마음대로 바꿔 버린 셈이 됐습니다.
또 상상력이 너무 지나쳐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요, 지난 여름에 개봉해서 역시 흥행 실패한 주지훈 씨 주연의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세종 대왕이 되기 전의 충녕 대군이 왕이 되기 싫어서 궁궐 밖으로 도망치고, 대신 그와 똑같이 생긴 노비가 궐 안으로 들어와 세자 노릇을 한다는 얘기인데요, 당연히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대상이 너무 유명한 세종대왕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사례입니다.
[질문]
이번주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가짜 왕이라는 설정에선 좀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나요?
[답변]
비슷하긴 합니다만, 또 다릅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코미디의 호흡이라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정극의 호흡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의 요소들을 적절히 뒤섞은 영화인데요.
이병헌 씨가 광해군과 가짜 광해군, 1인 2역을 소화했고요, 류승룡 씨가 도승지 허균으로 나와 중량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기존의 한국 팩션 사극이 자주 저질렀던 오류,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버리는 우를 솜씨좋게 비껴가고 있는데요.
실제로 광해군 시절, 15일간의 승정원 일기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그걸 모티브 삼아서, 그 15일 동안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을 얹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득력을 안겨주고 있죠.
게다가 가짜 광해군으로 나선 광대 출신의 하선이라는 인물이 진짜 왕보다 더 선정을 베푸는 과정을 통해서 대선을 앞두고 있는 관객들의 정치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지점이 흥행적으로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질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개봉일을 갑자기 일주일 앞당겨서 또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요.
[답변]
이 영화는 올 추석 시즌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언론 시사회 이후에 반응이 워낙 좋다 보니까, 좀더 일찍 풀어서 기선을 제압하자, 이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한 영화가 갑자기 예정된 배급 일정을 바꿔 버리면 다른 영화의 배급 일정에 큰 혼선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당장,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 일정을 앞당기자, 27일에 개봉할 예정이었던 '간첩'이라는 작품도 개봉일을 일주일 앞당겼고요, 이번주 개봉할 예정이었던 조니 뎁 주연의 영화 '럼 다이어리'는 다음주로 개봉을 연기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배급사는 CJ입니다.
올해 들어 유난히 실적이 부진해서 이런 변칙을 쓰는 것 같은데, 국내 영화 시장을 이끄는 선도 배급사로 할 상도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