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속 '아버지' 모습은?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앵커]

영화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가 부모 자식간의 얘기인데요.

그 가운데 한국영화 속에서는 유난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 속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최근 나온 작품들에서 그려지는 아버지의 얼굴, 최광희 영화 평론가와 함께 만나 봅니다.

모성애만큼이나 부성애를 담은 작품들이 한국영화 속에서 많은 이유,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기자]

일단 가장 단순한 이유는 많은 영화 감독들이 아버지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영화의 소재나 스토리로 삼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휴먼 드라마의 틀에서 아버지는 그야말로 부성애를 지닌 인간으로 등장하는데요,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의 법이나 사회 제도를 상징하는 장치로 아버지라는 캐릭터가 활용되기도 하죠.

이런 경우에는 주로 아버지가 아들 세대와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이 묘사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최근의 한국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대체로 무기력한 모습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주로 험악한 세상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혹은 그런 와중에 좌절하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처지에 대한 감독들의 문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앵커]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버지, 하니까 지난해 개봉한 '연가시'라는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기자]

'연가시'에서 주연을 맡은 김명민 씨가 바로 가족과 자식들을 치명적인 살인기생충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로 등장하죠.

김명민 씨가 그 이전에 주연한 작품이죠, 2010년에 개봉했던 '파괴된 사나이'라는 작품에서도 대동소이한 맥락의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주영수라는 이름의 목사인데요.

자신의 다섯 살난 딸이 유괴되면서 목사로서의 그의 삶 역시 파괴되고 맙니다.

8년이 지난 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영수는 딸을 구해내기 위해 마지막 사투를 벌이게 되죠.

역시 지난 2010년에 나왔던 설경구 씨 주연의 스릴러 영화 '용서는 없다' 역시 부검의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납치된 딸을 살려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막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잡혀온 남자가, 주인공의 딸을 납치했으니, 딸의 목숨을 구하려면 자신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라는 협박을 하게 됩니다.

법을 지켜야 하는 법의학자가 자신의 딸을 위해 법을 어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거죠.

영화는 법과 원칙과 부성애를 충돌시키는 이런 설정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부성애가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앵커]

주로 범죄 스릴러 영화 속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참 가련한데, 최근 영화에서도 아버지들의 초상이 계속 그려지고 있죠?

[기자]

최근 개봉한 영화 가운데 '관상'이라는 작품 역시 본질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을 통과하면서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는데요.

조선 초기의 권력 암투에 휘말리게 된 한 관상가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결국 시류를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근시안이 아들을 망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강호가 맡은 내경이라는 인물은 어머니 없이 자란 진형이라는 아들이 있죠.

입신양명을 꿈꾸는 아들을 내경은 만류하지만, 끝내 아들은 벼슬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죠.

이와 함께 내경도 수양대군과 김종서 사이의 왕권을 둘러싼 다툼에 휘말려 들고, 이것이 결국 아들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오죠.

"나는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진 못했다"는 내경의 독백입니다.

그렇게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아버지들의 행태가 결국 고스란히 아들 세대의 아픔과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앵커]

'관상'을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니까 새롭게 곱씹을만한 구석이 있군요.

아버지에 대한 영화, 또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기자]

바로 다음주 개봉하는 영화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이라는 작품인데요.

소재가 일부 관객들에겐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비극을 맞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 드라마로 삼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아동 성폭행이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응징의 드라마라기보다, 여덟 살 딸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려는 아버지의 고군분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설경구 씨가 영화 속의 아버지 동훈 역을 맡았는데요.

딸인 소원이가 사건 이후에 성인 남성들을 모두 무서워하게 되면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딸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인 코코몽 캐릭터로 변장을 해서 계속해서 딸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려고 노력하게 되죠.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가서 싸우기 보다, 자기 자식들을 먼저 보살피라는 메시지를,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스릴러 영화 속의 아버지들이 자식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무기력에 휩싸여 있는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면, 영화 '소원'은 가족 휴먼 드라마의 틀 안에서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따뜻한 아버지의 상을 복원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최근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부성애의 풍경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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